가끔 신랑과 옛날이야기를 할 때가 있다. 옛날 사람 둘이서 그땐 그랬지 하며 ' 라떼 ' 이야기로 행복해한다. 그러다 불쑥 신랑이 하는 말.
" 그러고 보면, 진짜 우리는 축복받은 세대야 "
" 왜? "
" 우리는 아날로그와 디지털을 모두 겪었잖아 "
신랑의 말을 듣고 보니 그랬다.
10대, 성인과 아이의 모호한 중간에서는 모든 것이 위태롭고 불안정한 시간이다. 그런 시간들을 지탱하는 힘은 공부보다는 역시 사랑 그리고 음악이다.
집 전화, 삐삐, 핸드폰까지 우리는 다양한 방식으로 사랑을 속삭였다. 하늘색 공중전화박스에서 제발 그 사람이 받기를 기도하며 신호음을 기다리다가 그의 부모님이 받으면 '툭' 하고 말없이 전화를 끊었다. 그때는 몇 십 원 아깝게 쓴 동전 보다 사랑하는 이의 목소리를 듣지 못하는 아쉬움이 더 컸다.
엄마 몰래 친구와 함께 쓰던 노란색 삐삐도 기억난다. 수업이 시작됨과 동시에 온 남자친구의 메시지를 들을 마음에 수업 시간 내내 몸을 배배 꼬다, 종료 종이 울리자마자 공중전화로 달려가 메시지를 확인했었다. ' 1개의 메시지가 있습니다. 메시지 청취는 1번, 음성 녹음은 2번 (...) 첫 번째 메시지입니다 '그때 들었던 012 성우분의 목소리는 아직도 귓가에 선명하다.
마이마이, CD 플레이어, MP3까지 음악도 다양한 방법으로 들었다. 리믹스 가요 테이프는 왜 1위 후보곡을 나눠 놓았는지,많지 않은 용돈으로 테이프 2개는 살 수 없었던 나는. 라디오에서 그 노래가 나오길 기다렸다가 녹음해서 듣기도 했다.
신랑의 말대로 고작 10년인데 공중전화에서 핸드폰으로, 카세트 테이프에서 MP3로 바뀌었다. 그런데 그 모든 것을 겪어봤지만, 가장 불편했던 시절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 불편함 속에는 언제나 기다림의 시간이 있었고, 기다림의 시간은 늘 설레고 행복했다.
그런데 요즘은 도통 기다릴 일이 없다. 메시지를 바로 보내는 것도 모자라, 상대가 읽었는지 안 읽었는지 확인도 가능한 시대다. 지구 반대편에서 일어나고 있는 톱스타의 기사를 실시간으로 확인할 수 있고, 구글 어스 거리뷰로 전 세계 골목골목을 볼 수 있다. 세상은 빠르게 넓어졌다. 이제는 지구도 모자라 우주까지 가려고 하니 말이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인간이 느끼는 행복감은 기술의 발달과는 반비례하는 듯하다.
아이를 키우는 부모로서 우리 아이들은 어떻게 보면 참 안됐다. 인간도 결국 동물인지라 살 부비고 눈 마주치고 사는 것이 중요한데 기술의 발달로 그럴 기회나 필요성이 많이 줄었다. 그렇다 보니 우리 아이들은 자연스럽게 메타버스 같은 가상 공간에 모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런데 이 가상은 반쪽뿐인 관계라 온전한 인간관계의 욕구를 충족시켜 주는데 어려움이 있다. 모든 것이 풍요롭기 때문에 그 속에서의 외로움은 더욱 부각되고, 가상과 현실의 격차가 커질수록 행복감은 줄어든다.
이런 시대를 살아내야 되는 아이들에게 중요한 공부는 자신만의 속도를 찾는 일 인것 같다. 자고 일어나면 매일 새 것으로 바뀌어 있는 세상에서는 너무 쉽게 헌것이 된다. 그 속도에 맞추어 사는 것은 소모적이고 불행한 삶일 것이다.
이제는 기다림이 주는 행복을 빼앗아 버린 어른들이 기다림의 행복을 아이들에게 알려 줘야 할 시간이다.조금 느려도 괜찮다고, 중요한건속도보다 방향성이라는 당부와 함께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