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심한 보건실
내가 근무하는 보건실은 누구에게나 열려 있다.
하지만 근무하는 사람은 보건교사인 나 혼자다.
나 혼자 문을 열고 닫고, 혼자 움직이고, 혼자 판단한다. 누구도 보건실은 오늘 어떤 하루였냐고 묻지 않는다. 그런 날들이 쌓여, 나는 어느새 부탁하는 법을 잊었다.
곧 1학년 출장검진이 있다.
교육청에 검진기관 완화신청서 공문을 발송하고, 검진기관을 선정하고, 명단을 준비하고, 검진장소를 정하고, 가정통신문을 작성하고, 검진기관 계약요청서를 작성하고, 지출비용 품의를 올리는 등 할일이 산더미다.
하지만 여기까지는 모두 혼자서 가능한 일이라 내 경력 쯤 이면 순식간에 끝낼 수 있다.
그러나 은근히 소심한 나에게 가장 어려운 일이 있으니,
검진장소로 쓰일 체육관에 책상 30개를 구해서 옮겨야 한다는 것이다.
올해 나는 낯선 학교로 발령을 받았기 때문에 익숙한 동료도 없고, 허물없는 관계도 없다.
조심스럽게 직속 부장에게 도움을 청해보지만 돌아오는 말은
"나도 잘 모르겠네요."
교무부장을 찾았지만 똑같다.
교감 선생님께까지 묻는 건 왠지 큰 민폐 같아진다.
결국, 나는 또 익숙한 길을 택한다.
혼자 알아보고,
혼자 해결하기.
행정실에 전화를 걸어 여분의 책상이 있는 곳을 찾았고,
그 곳을 관리하는 교사의 수업시간을 확인해서 다행히 책상을 써도 된다는 확인을 받았다.
그러나 30개나 되는 책상을 누구에게 부탁해서 옮긴단 말인가.
남편에게 밥 먹으면서 푸념을 하니 그런 일을 담당하는 부서에 요청을 하면 되는 것 아니냐고 반문을 한다.
그런데 학교에는 그런 일을 담당하는 부서가 없다는 게 함정이다.
예전에는 행정실 시설 주무관님께서 그 일을 하셨지만,
지금은 시설 주무관님이 점점 없어지는 추세이고, 새로온 학교는 시설 주무관님이 안계신다.
설령 계시다 하더라도 30개나 되는 책상을 혼자 옮겨달라고 부탁하는 것도 너무한 것이 사실이다.
1학년 건강검진이니 1학년 부장 선생님께 협조를 구하면 될 일이다.
하지만 소심한 나에게 그 '전화 한 통'은 생각보다 훨씬 버겁다.
수화기를 들기 전, 머릿속에서는 수 만가지 걱정이 떠올라 미루고 또 미룬다.
'혹시 귀찮게 여겨지지 않을까?'
'아...다들 바쁜데 너무 미안한데..'
나는 어릴 적부터 남에게 피해를 주지 말아야 한다, 항상 조심해야 한다는 말을 들으며 자랐다.
그래서일까. 나는 늘 부탁 앞에서 얼어붙는다.
누군가는 아무렇지 않게 요청하고, 당당히 말을 꺼내는데,
그런 모습이 부럽기도 하면서도 나와는 너무나 먼 세계처럼 느껴진다.
나에게 부탁이란, 늘 죄송함이라는 그림자를 끌고 다닌다.
이런 성향은 자기효능감의 결손과 관련 있다고 한다.
혼자 다 해내는 능력보다, 필요할 때 도움을 요청할 수 있는 유연함도 자기효능감인데
그 부분이 결손 된 것이다.
1학년 부장에게 전화를 하기전 나는 마음속으로 수십 번 되뇌었다.
"이건 내 일이 아니라 학교 전체의 일이고, 특히 1학년의 일이야. 나는 도움을 청할 자격이 있어."
결국 전화를 걸었고 정중하게 상황을 설명하고 도움을 요청했다.
"그럼요 선생님. 애들이랑 같이 옮기게 할게요."
수화기 너머의 1학년 부장은 당연하다는 듯 아주 흔쾌히 대답했다.
나는 아무 일도 아니라는 듯 감사하다고 인사를 하고는 대화를 마쳤지만,
전화를 끊고 나서 잠시 숨을 고르며 내 안의 어떤 흐름을 들여다보았다.
왜 나는 이토록 부탁이 어려운 사람으로 점점 바뀌고 있는 걸까?
예전보다 더 능숙하게 일을 처리하고 있음에도, 낯선 학교, 낯선 얼굴들 앞에서 나는 점점 더 말수가 줄고,
주저함이 많아진다.
보건실이라는 공간은 '열려 있으나 혼자인 곳'이다.
물리적으론 누구나 들어올 수 있지만, 같은 일을 나누는 동료로서는 함께 머물지 않는다.
교무실의 중심에서 떨어져 있는 그 위치 만큼이나,
나 또한 학교라는 조직의 맥락에서 고립되어 있다는 느낌을 자주 받고 있으며,
점차 자발적으로 부탁하는 능력도 줄어들고 있다.
고립된 공간에서 스스로 조용히 모든 일을 해결하려 하면서,
오히려 내 '자기효능감'은 점차 무뎌지고 있었던 것이다.
보건실은 여전히 혼자지만, 오늘 나는 내 안의 어떤 잘못된 신념을 조심스럽게 들여다보았다.
부탁이 힘든 나의 어려움은 단순한 성격 문제가 아니라, 오랜 시간에 걸쳐 내면화된 신념에서 비롯되었고,
혼자 일하는 보건실 이라는 환경이 한 층 더 그 신념을 강화시켜 주었다는 것을 조금씩 알아차리기 시작했다.
' 폐가 되면 안 된다.'
'부탁은 곧 부담이다.'
이러한 생각들은 어릴 적부터 내게 자연스럽게 새겨져 있었고,
그 신념은 나를 조심스럽고 배려 깊은 사람으로 만들었지만 동시에 타인과 연결되기 어렵게 만들었다.
오늘 내가 한 일은 용기를 내는 일이 아니라,
그 오래된 생각들을 잠시 멈추고 질문을 던지는 일이었다.
'꼭 이렇게까지 혼자 해야 하나?',
'내가 도움을 청해도 되는 상황 아닐까?'
오늘 나는 나를 조금 덜 몰아붙였고, 아주 조금 덜 조심했다.
그 하나만으로도 오늘은 충분히 의미 있는 날이다.
내가 요청하지 않으면, 상대도 나를 도울 기회를 갖지 못한다는 것을
마음이 힘든 아이들에게 내가 항상 얘기하듯이 오늘의 나에게도 위로의 말로 건네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