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아이의 교육받을 기회를 박탈하고 있다는 것도 아세요?
짜증이 난다는 듯 한숨을 팍 쉬며, 문을 '쿵' 닫고 나간 아이의 잔상이 보건실 안에 오래 남는다.
환자가 너무 많아서 나가서 주의를 줄 새도 없었다.
억울함인지, 분노인지, 무력감인지 모를 감정이 복잡하게 내 속에서 올라온다.
아이에게 따끔하게 훈계를 하고 싶지만,
동시에 괜히 내 감정이나 에너지를 써가며 훈계나 지도가 무의미하다는 생각이 든다.
어떤 말을 해도 바뀌지 않을 것 같고, 오히려 불필요하게 엮이게 될까 피하고 싶어진다.
두려움이 아니라 일종의 포기와 같다.
정당한 훈육조차 효과가 없을 것이라는 체념 속에서,
나는 자조섞인 한숨으로 이 상황을 넘기고 있다.
나는 왜 이토록 회의적인 자세로 그 아이를 마주하고 있는 걸까.
그 아이 뒤엔 언제든 학교를 뒤흔들 수 있는
민원 폭풍이 따라온다는 것을 이미 알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훈육이라는 말이 무색하게 느껴질 만큼, 교육적 개입이 무기력하고 무의미하게 느껴진다.
나는 그 아이를 외면한 것이 아니라, 엮이고 싶지 않은 마음에 물러서고 있다.
개학 첫 날 등교시간 이었다.
그 아이가 보건실 문을 열고 들어와서는 눈도 마주치지 않고 가방을 내려놓더니,
"파스 네 장 주세요. 그리고 생리대 도요."
마치 맡겨놓은 물건 찾으러 온 듯 무례하고 예의없는 태도였지만,
개학 첫날 부터 잔소리 하기 싫어서 최대한 사무적으로 대했다.
"파스는 수량이 부족해서 한 장만 줄 수 있어요. 더 필요하면 자율 처치대에 뿌리는 파스와 바르는 파스가
있으니 사용하도록 해요. 생리대도 저쪽에 같이 있어요."
그 아이는 짜증이 난 다는 듯 한숨을 팍 쉬더니 인사도 없이 휙 나가버렸다.
그 후로도 가끔 들러 비슷한 태도로 이것저것 요구했지만,
나 또한 똑같이 만만치 않은 기세로 보건실의 룰을 그대로 적용하며 최대한 사무적으로 대했다.
하루는 체육수업이 있는 날에 찾아와 보건실에 눕혀달라고 했다.
"수업을 빠질 경우 병결로 처리돼요. 교과선생님께 허락 받고 오세요."
생활기록부로 대학을 가는 인문계 고등학교에서는 출결에 학교 구성원 모두가 매우 민감하다.
누구는 병결, 누구는 출석인정을 해주면 말 그래도 불공정하다고 난리가 나기 때문에
공정한 규정의 적용은 너무나 중요하다.
나의 설명을 듣던 아이는 정색을 하면서
"왜 출석인정이 안 되죠? 아픈데요?"
마치 억울하다는 듯 따지는 말투였지만,
내가 정한 규정도 아니기 때문에 단호하게 규정만을 반복할 수밖에 없었다.
체육대회 날에도 그 아이는 찾아와 누워 있겠다고 했다.
그래서 담임교사에게 허락을 받고 오고, 보건일지에 이름을 적은 다음에 침대에 누우라고 안내했더니
또 한숨을 팍 쉬며 문을 쾅 닫고 나가버렸다.
자신이 원하는 무언가가 그대로 해결되지 않으면 늘 같은 방식으로 반응했다.
심지어 보건실에서 자신이 바를 보습크림을 찾으면서도 없다는 나의 대답을 듣더니
똑같은 반응으로 나가버렸다. 그 어떤 순간에도 자신의 불만을 표출하지 않고는 그냥 넘어가지 않았다.
마치 중학생 같은 미성숙한 태도에 심리적으로 무슨 문제가 있나 싶어서
담임교사와 이 학생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다.
"어머 선생님.. 걔가 거기서도 그랬어요? 걔가 공부를 좀 잘해요. 그런데 공부 잘한다는 것으로
다른 애들 무시도 많이 하구요. 엄청 자기중심적이예요."
담임교사도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말했다.
"그런데 문제는 그 엄마는 더하다는 거예요.
제가 진짜 그 엄마 때문에 휴직하고 싶다니까요.
아.. 진짜 너무 힘들어요. 원하는게 너무 많은데, 그걸 일일히 다 전화해서 요구를 해요.
학교라는게 단체생활이니까 한 아이를 지나치게 배려하다보면 다른 학생들이 피해보게 마련이잖아요.
그런데 다른 아이 피해는 안중에도 없고, 자기 아이한테 조금이라도 불편함이 생기면 바로 민원이에요.
목 근육쪽이 자주 뭉치고 아프다고 맨 앞자리에 고정으로 앉혀달라고 하질 않나,
체육시간에 계속 보건실에서 쉬게 해달라고 하구요. 병결과 처리 된다니까 왜 출석인정을 안해주냐고
막 따지더니, 급기야는 체육시간에 앉아 있을 의자를 갖다놓으라고 요구를 하지 뭐예요.
아니 그리고 이번 중간고사 때 과학에서 걔가 뭘 하나 틀렸는데, 학원강사 통해서 구구절절 이의제기하는 서류를 만들어서는 맞은걸로 해달라고 생떼를 쓰는데...정말 미치는 줄 알았어요."
담임교사는 쌓인 게 많았는지, 말투부터 지쳐 있었고 표정엔 고단함이 묻어났다.
마치 몇 번이고 되풀이된 그 엄마와의 전화를 떠올리는 듯한 얼굴로,
'선생님... 진짜 너무 힘들어요' 라는 말을 중간중간 계속 반복했다.
그 아이의 특징을 극단적으로 드러내는 사건이 하나 있었는데,
교과시간에 다른 반 친구가 교통사고로 입원했다는 말을 듣더니
"경쟁자 하나 줄었네." 라며 좋아했다고 한다.
'말을 해봤자 엄마가 뒤흔든다',
'괜히 훈육하려다 나만 피곤해진다'는 회의감 속에서 그렇게, 점점 나를 포함한 교사들은 아이에게 손을 떼고 있었다. 훈육이 멈춘 자리에는 거리두기가 자리 잡을 수밖에 없다.
나 역시 방어적인 사람이 되어가고 있다.
이 아이에게 섣불리 잘못 지적했다가, 피곤한 학부모에게 엮이게 될 것 같아
말하면 뭐하겠어 라는 생각이 먼저 든다.
그 순간, 나는 교육자이기보다는 살아남기 위한 직업인이 되어버리는 것 같아 씁쓸하기도 하다.
학교는 물리적 공간을 넘어,
아이가 다른 학교 구성원들과 함께 지내며 자기 감정을 연습하고,
타인을 마주하고, 경계와 권리를 배워가는 작은 사회다.
그러나 그 공간조차 학부모가 과도한 개입을 하게되면 시스템의 허약함 속에서,
모두가 몸을 사리며 아이를 번외로 취급하게 된다.
아이를 위한다는 명목으로 지속되는 학부모의 과도한 개입은 오히려 아이를 누구의 말도 듣지 않는 존재로 만든 다는 것을 그 엄마도 알았으면 좋겠다.
그저 내 아이의 편의만, 그저 내 아이의 성적만을 부르짓는 학부모로 인해,
교사들의 훈육을 받고 바르게 자랄 기회를 박탈당한 채
오늘도 천상천하 유아독존으로 온갖 짜증을 내고 다니는 그 아이를 떠올리니 가슴이 답답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