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건교사의 직업적 숙명과 자아 지키기
도와주는 사람이 되는 데에는 두 가지 경로가 있다.
하나는 그 일을 좋아해서이고, 다른 하나는 그 일을 피할 수 없어서다.
보건교사는 그 두 가지가 겹쳐 있는 직업이다.
아이들을 좋아하고, 돌봄의 가치를 믿으며,
실제로 도움을 줄 수 있는 지식과 자격을 갖췄기 때문에 이 자리에 있지만,
동시에 이 자리는 끊임없이 누군가를 도와야 하는 책임의 자리이기도 하다.
“선생님, 얘가 갑자기 숨을 못 쉬어요!”
“이 학생 혹시 코로나일까요?”
“오늘은 배가 아파서 수업을 못 듣겠다는데요.”
“학부모님이 통화 원하세요.”
나는 하루에도 몇 번씩, 누군가의 요청에 반응한다.
요청은 대부분 도움이 필요하다는 말로 포장되어 있지만,
그 속엔 ‘지금 이걸 좀 대신 해결해줘’라는 무언의 부담이 들어 있다.
나는 그 부담에 익숙하다. 도와주는 사람이니까.
보건실에서 10년 넘게 일하면서 늘 남에게 내 에너지를 퍼 주는 것만 하는 것 같아서
소모되는 느낌을 받을 때가 많았다.
그럴때 마다 유투브에서 신부님 설교나 스님의 법문을 들으며 마음을 다스리곤 하는데,
법문을 듣다가 매일같이 반복되는 '남을 돕는 일'이
결국은 '나에게 좋은 영향력을 쌓아가는 일(긍정적 카르마)'이라는 것을 알게되었다.
매일같이 남을 도왔던 행동들이 결국은 내 삶에 따뜻한 결로 되돌아온다는 것이다.
무심히 흘려보낸 하루의 친절과 응답들이,
어느 날 예상치 못한 순간에 타인의 위로와 평온으로 되돌아오는 것처럼 말이다.
직업적으로 누군가를 돕는 것이지만, 그로 인해 내 삶은 늘 복을 짓는 (행하는)
따뜻한 복된 삶이라고 생각하니
소모되었던 마음이 많이 평온해지기도 한다.
그리고 어쩔 수 없이 해야 하는 일이라고 생각하는 것 보다는
'돕는 일을 좋아하는 나'로 스스로 생각하는 연습을 해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처음엔 억지로라도 작은 친절에 스스로 박수를 쳐줬다.
오늘도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었다는 사실을 짧게 메모해보거나,
내 행동이 가진 따뜻함을 조금 과장되게라도 되새겼다.
그렇게 나의 도움을 의미 있게 포장하고, 그 안에서 보람을 찾는 연습을 하다 보면,
어느 순간부터는 그 행위 자체를 내가 정말 좋아하게 되는 날도 오리라는 믿음이 조금씩 자라났고
실제로 내가 행한 돌봄으로 얼굴이 좋아져서 보건실을 나설때는
큰 보람을 느끼기도 하며 자기효능감을 뿜뿜 느끼기도 한다.
'남을 돕는 나' 못지않게 '나를 돌보는 나'도 함께 키워가야 한다는 것도 절실히 느끼게 된다.
아이들이 하교 후 차를 한 잔 따뜻하게 마시는 시간,
퇴근 후 조용히 산책을 하는 시간,
아무에게도 방해 받지 않으며 글을 쓰는 시간을 하루의 일부로 정해두었다.
누군가를 보살핀 손으로 내 어깨를 토닥이는 마음으로 말이다.
그렇게 하루의 작은 틈에서 나 자신에게도 '괜찮아, 오늘도 잘했어'라고 말해주는 것,
그것이 '돕는 것이 직업인 보건교사'로서 살아가는 내가 무너지지 않기 위해 꼭 필요한 연습임을 알게 되었다.
또하나 언제나 경계하는 것도 있다. 남을 도우는 것을 즐기되, 나 까지 던지지는 말자는 것이다.
불교에서는 자비를 '지혜로운 거리두기'로 설명하는데,
상대를 고통에서 벗어나게 하되, 그 고통에 함께 빠지지 말 것. 그것이 진짜 자비라는 말이다.
가끔 심리적으로 힘든 아이들과 이야기를 할 때,
나도 모르게 그 아이의 내면에 깊이 스며들어 마음이 무겁게 가라앉을 때가 있다.
마치 그 아이의 고통이 내 안으로 들어와, 함께 아파하고 함께 무너지는 듯한 기분.
바로 '감정적 전이'가 되는 것이다.
처음에는 내가 공감력이 높아서 라고 생각했지만, 그 감정이 나를 잠식하고 나서야
'심리적 거리두기'를 해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아이들의 고통에 공감하되, 그 고통을 내 것으로 만들지 말아야 한다.
동료의 피로에 귀 기울이되, 나의 피로를 잊지 말아야 한다.
'건강한 거리두기'란 차갑게 외면하는 것이 아니라,
서로의 고통을 인지하면서도 그것에 휩쓸리지 않는 마음의 경계를 세우는 일이다.
때론 '그건 나의 몫이 아니다'라고 속으로 말하며, 경계를 지키는 연습이 필요하다.
그렇게 할 때 오히려 더 오랫동안 따뜻한 마음으로 곁에 있을 수 있다.
보건교사 처럼 도와주는 사람으로 살아간다는 것은,
내 감정을 접어두는 일이 아니다.
오히려 내 감정을 더 정직하게 들여다보고, 더 조심스럽게 다루는 일이다.
그래야 오래도록, 무너지지 않고, 이 일을 이어갈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