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상을 사수하라

누우려는 자 vs 보내려는 자

by 정은

보건실 문을 살짝 열며 민혁이 속으로 중얼거린다.

'됐어, 보건실에 애들이 별로 없구만, 오예! 지금 타이밍이면 가능성 있어.

나 요새 보건실 좀 덜 온 것 같은데...
어차피 수학시간은 나랑 안 맞는단 말이지… 그냥, 좀 눕고 싶다.
보건실은… 뭔가 딱 좋은 온도야. 포근한 저 침대... 나를 부르고 있잖아.
예전처럼 보건실에서 쉬는 게 출석 인정되면 얼마나 좋아

그래도 20분 이내로 쉬고 보건실 확인증 받아서 가면 되니까 20분 이라도 눕자.

최대한 아픈 척!!'



민혁이는 슬라이딩하듯 조심스럽게,

그러나 얼굴은 잔뜩 찡그려 '나 진짜 아파요'를 내뿜으며 들어온다.

고인물 보건샘은 얼굴만 봐도 다음 대사를 예상할 수 있다.

“쌤… 어지러운데, 좀 누워도 될까요…?”

목소리 톤은 2도 낮췄고, 눈빛은 3초 정직했다.

그간의 통계로 볼 때 이건 ‘침상 침투 시도’다.

나는 말없이 키보드에 민혁이를 검색했다.

이 자식! 이달 들어 벌써 네 번이나 20분씩 쉬고 갔다. 보건일지는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 계속 눕혀준게 패착이었어. 처음엔 진짜 같았고,

얼굴도 창백해 보여서 누워있게 해줬더니, 두 번, 세 번…
똑같은 시간에, 똑같은 목소리로, 똑같은 핑계를 반복하고 있어.

오늘은 단칼에 돌려보내겠어!'




워낙 애교도 많은 아이라 장화신은 고양이처럼 애처로운 눈빛을 보내는 민혁이 얼굴을 쳐다보면

어이없는 웃음이 나오면서 어느새 침상 안정을 허락하곤 했더니

조금만 피곤하면 보건실에서 눕는 게 습관이 되어버린 것 같다.

오늘은 최대한 얼굴을 쳐다보지 말고 단호하게 끊어내리라.

입꼬리가 올라가지 않게 앙다물고, 약장을 향해 몸을 돌리면서 아주 사무적으로 말했다.

"약 부터 먹어봐. 그래도 정 아프면 그때 다시 결정하자"

민혁이는 약간 실망했지만, 기필코 눕겠다는 신념으로 속으로 중얼거린다.

‘지금 아니면 안 돼. 수학시간 너무 길어.

아까 체육 뛰었고, 땀도 났고, 너무 졸립단 말이야.

그 정도면 충분히 눕는 사유지. 쌤은 잘 조르면 결국 허락해줬어. 오늘도 그 타이밍이야.’


민혁은 한 껏 더 힘없는 목소리와 특유의 애처로운 눈빛을 장착하고는

"쌤 저 진짜로 누워야 할 것 같아요. 어지러워요. 20분만 누우면 괜찮아 질 것 같아요"

보건실 침대에 진심인 이 아이는 나의 약한 마음을 집중 공략한다.




"민혁이, 이쪽으로 앉아봐요"

나는 민혁이의 혈압, 맥박, 체온, 산소포화도를 하나하나 정성스럽게 측정했다.

혈압, 심박수, 체온, 산소포화도 수치 모두가 교과서처럼 안정적이다.

'너의 바이탈은 교과서 수치' 임을 강조하며 최대한 흔들림 없는 표정으로

"민혁아, 지금 너는 아주 건강해 보여. 수치도 완벽하고, 특별한 이상은 없어.

지금보니 투약도 필요 없을 것 같네. 땀을 흘렸으니 생리식염 포도당 2정 먹고 교실로 올라가자."


그 순간, 민혁이의 눈빛이 잠시 흔들렸다.

그동안 몇 번의 간청 끝에 침상을 얻어낸 경험이 있었기에

이번에도 될 거라고 믿었던 눈빛이었지만,

보건샘의 단호한 말투에서 더는 여지가 없음을 느낀다.


'아...오늘은 쌤이 완전 방어모드네. 뭐... 어쩌겠어.

오늘은 그냥 포기해야겠다. 가서 그냥 수업이나 듣자.'


민혁은 포도당 정제를 하나 입에 넣고는 아무 말 없이 고개만 살짝 숙인 채 조용히 문을 열고 나갔다.

마치 나만의 아지트를 잃어버린 듯한 뒷모습으로.



보건실 침상은 단순한 휴식 공간이 아니라,

진짜 도움이 필요한 아이를 위한 '의료적 보호 공간'이다.

습관처럼 눕는 행동을 반복하는 아이들을 무방비로 받아주다보면,

보건실은 아픈 아이들을 위한 본래 기능을 잃고 만다.

단호함은 불친절이 아니라 책임이다. 오늘의 이 단호함이 민혁이에게도,

다음에 올 또 다른 아이에게도 진짜 필요한 보건실을 지켜내는 일이라는 것을 나는 알고 있다.

우울증, 공황장애, ADHD 등 침상 안정이 꼭 필요한 학생이 굉장히 많기 때문에,

보건교사는 침상 안정이 꼭 필요한 학생들이 쉬어갈 수 있는 환경을 만들기 위해 학기 내내 심리전을 치른다.


오늘도, 보건실은 교실 탈출을 꿈꾸는 아이들과 그것을 저지하려는 보건교사의 두뇌 싸움이 조용히 벌어지는 총성없는 전쟁터다.

"애들아 샘이 다 눕혀주지 못해서 미안해.
너희들 걱정하는 샘 마음 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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