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건실을 긴장시킨 심실조기수축

지능형 동료와 함께 더욱 빛나는 전문성

by 정은

“선생님, 혈압 좀 재봐주실 수 있을까요?”

창백한 얼굴에 어딘가 초조해보이는 50대 중반의 여교사가 보건실 문을 열고 들어섰다.

그녀의 말투는 평정심을 유지하려는 듯 단단했지만,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다.


나는 얼른 앉을 자리를 권하고 자동혈압계로 그녀의 팔을 감고 측정 버튼을 눌렀다.

140에 90.

숫자는 그렇게 높지 않지만, 그녀의 얼굴빛과 묘한 불균형을 이루었다.

“선생님 혈압이 약간 높기는 한데 많이 높은 편이 아니시거든요.

혹시 어디 불편하세요?”


그녀는 입을 열기까지 잠시 숨을 골랐다.

“토요일에… 뒷골이 터질 것처럼 아팠어요.

심장이 막 뒷골에서 뛰는 것 같더라고요.

오늘은 좀 낫긴 한데, 지금도 약간 묵직해요.”


나는 뭔가 직감적으로 평범한 증상이 아니라는 생각이 스쳤다.

다시 수동혈압계를 꺼내 팔에 압박을 가하고,

청진기로 소리를 들으며 조용히 다시 혈압을 측정했는데

다행히 110/70으로 정상범위로 떨어져 있었다.


“혹시 심장 관련 진단 받으신 적 있으세요?”

“네… 예전에 심실성 빈맥이었는데,

지금은 서맥으로 바뀌었다고 하더라고요. 약 먹고 있어요.”



그 말을 들은 순간, 나는 주저하지 않고 간이 심전도기를 꺼냈다.

이 기기는 손가락과 다리에 접촉시키면 심전도를 측정할 수 있고,

스마트폰 앱과 연동되어 실시간으로 파형을 확인하고 AI 판독까지 제공해주는 간편한 장비다.

보건실에는 중증환자보다는 경증환자들이 많아서 큰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다가

공황증상을 호소하는 학생들이 너무 많아서 궁리끝에 구입하게 되었었다.

공황장애 환자들이 흉통을 호소하며 불안해할 때,

"너의 심장은 정상"이라는 걸 시각적으로 보여주기 위해 구입했고,

실제로도 본인이 직접 정상임을 확인하면

증상이 확연히 줄어들어서 아주 유용하게 사용하고 있다.

처음에는 정신질환과 심장질환을 구분하려는 목적이었지만,

예상외로 부정맥 환자를 조기 발견하는 데도 큰 도움이 되고 있다.





여교사의 심전도를 측정하기 시작 하고 몇 초 후, 불규칙한 파형과 함께 꺼림칙한 문자가 떴다.

"심실조기수축"

심실조기수축.jpg

그 판독결과를 보는 순간, 나는 다시 20년 전 응급실 근무시절로 돌아간 듯한 느낌에 휩싸였다.

심실조기수축은 단순히 불규칙한 파형이 아니다.

예고 없이 찾아오는 돌발적인 신호인데,

특히 이 경우처럼 기저 심장질환이 있고, 뚜렷한 증상까지 동반된 경우엔

더 심각한 부정맥으로 진행될 가능성도 있고 드물지만 심정지로 이어지는 경우도 있어,

병원 진료를 지체해서는 안 된다.

응급실에서라면 심전도 모니터에서 알람이 울리고, 의료진이 바삐 움직였을 상황이었다.



그녀는 내 눈치를 살피며, 불안한 눈빛으로 물었다.

“괜찮은 건가요?”

“선생님, 지금은 급한 상황은 아니지만,

기저질환도 있으시고 오늘처럼 증상이 있으실 땐

가급적 빨리 병원 진료를 보셔야 해요.”

심전도 판독을 보여드리고, 최대한 차분한 어조로 설명했다.


뒷골이 당기고 아팠기에 혈압문제라고 생각했던 여교사는

그제야 손끝이 살짝 떨리는 것이 보였다.

"그런데 심장 문제 때도 두통이 생기나요?"

"네, 심장에 문제가 생기면 뇌로 가는 혈류량이 일시적으로 줄어들 수 있어요.

그 때문에 두통이 발생하기도 해요."


나는 그녀의 심전도를 다운받아 메신저로 전송해드렸다.

“병원에 가셔서 이거 보여주시고 말씀하시면 좋을 것 같아요.”

그녀는 연신 감사인사를 하고는 수업 조정을 하고 병원을 가보겠다며 황급히 보건실을 나섰다.

제발 별일이 아니기를...




작년에 간이 심전도기를 들인 뒤로, 벌써 세 번째 부정맥 환자를 걸러냈다.

말로만 설명하는 것보다, 이렇게 데이터를 함께 보며 설명하니 환자도 나도 훨씬 수월하다.

무엇보다도 든든한 건, AI가 발달해서 판독까지 해주고 있다는 사실이다.
앱에서 실시간으로 심전도를 분석해주고,

나는 그 결과를 바탕으로 설명하고 판단을 보완할 수 있다.
게다가 환자를 보낸 뒤에도,

그 심전도를 다시 챗지피티에 전송해서 되짚어보며 공부까지 할 수 있으니,

이 얼마나 강력한 동료인가.


요즈음의 나는 AI를 적극 활용하며 보다 빠르고 정확한 판단을 할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예전보다 조금 더 깊고, 재미있게 업무에 대해서 공부도 하면서 일할 수 있어서 즐겁다.

보건실이라는 혼자 일하는 부담이 큰 공간에서,

나를 도울 수 있는 도구를 찾고, 방법을 고민해 압박감을 이겨내는 노력이

결국엔 나의 전문성을 높이고, 스스로에 대한 신뢰도 키워주는 걸 실감한다.

그렇게 높아진 자기 효능감은 다시 ‘더 잘하고 싶은 마음’으로 되돌아와,

오늘도 나는 한걸음 더 나아간다.


ChatGPT Image 2025년 6월 23일 오후 03_00_11.p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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