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거나 말거나인데요.
2013년 선명한 꿈을 꾸었습니다. 스무 평이 조금 넘을 듯 그다지 크지 않은 집이었습니다. 13년도의 내 얼굴과는 많이 달라진 오히려 지금 내 모습과 비슷한 마흔 살 정도의 얼굴을 한 내가 편안한 트레이닝 복을 입은 채, 거실 한편 선반에 있던 차키를 주섬주섬 챙겨들며 나갈 채비를 합니다. 어떤 여성의 다급하면서도 힘찬 목소리가 들립니다.
-선이 아빠 선이랑 먼저 내려가 있어.
나는 내 이름으로 불리고 있지 않습니다.
-알겠어 천천히 내려와.
너무나도 당연하게 그녀의 말대로 한 아이를 한쪽 팔로 번쩍 안아 들고 아이의 자그마한 운동화를 챙겨 현관을 나섰습니다. 엘리베이터가 지상을 향해가는 동안 아이를 자세히 보았습니다.
미묘하게도 말입니다. 어디선가 본 듯 한 얼굴입니다. 사내아이가 재잘거립니다.
-아빠 오늘은 어린이집에서.. 밥을 먹었는데.. 놀다가..
포동포동한 팔뚝을 이리저리 휘두르며 온갖 손짓을 섞어 일상을 말하는 아이는 내 품이 당연한 듯
편안히 안겨 법석을 떱니다.
-선아 아빠랑 오늘 재밌게 놀까?
아이는 때 묻지 않은 환한 얼굴로 답해줍니다.
그리곤 꿈에서 깨버렸습니다.
내 이름은 이선이 아닙니다. 이 이름은 꿈에서 전해온 어떤 아이 이름입니다.
이름을 빌린 셈입니다. 내가 세상에 발을 내딛으며 나를 말하고 표현하는 곳에는 난 언제나 이선이라는 이름을 사용합니다. 난 이 이름을 가지고 쪽팔리게 살아갈 수 없습니다. 존재 여부조차 희미한 미래에서 가져온 빚입니다. 언젠가 그 아이를 실제로 만나 마주 앉는 날이 온다면, 너의 이름을 빌려 난 한치의 부끄럼도 없이 살았다 말하려 합니다. 그 이름이 아이에게 소중한 선물이 되도록 나는 오늘도 살아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