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 일이야 많지만 낌새도 없고 쥐어짜도 나올 생각이 없다.
이따금 울고 싶은 날 노래 들으며 한 번씩 퍽퍽 쏟아져 개운했던 눈물이 참 서글프게도 그립다.
어떻게 울었더라. 어떻게 쏟아냈더라. 마음이 넝마가 된 요 몇 달 내내도 사랑하는 이에게 찢긴 마음에도
사실 눈물이 나지 않았다. 가슴팍에 칼자욱만 가득 남고 부디 쏟아졌으면 하는 곳은 굳게 잠겨있었다.
허무맹랑한 음모론이 아니라 정말로 두 차례 맞은 백신이 정말 초거대기업의 나노칩이라 조종당하며 그들의 기계가 되어버리는 와중에 감정을 제거당하고 있나. 백신 덕에 감정샘 배수관이 잠겼는지도 몰라.
나도 모르게 한 알 한 알 먹는 수면제. 신경안정제. 하늘색 수면제 두 알이 한 알이 되고 흰색 알약으로 그리고 심지어 그마저도 반이 되었는데, 저녁약도 이제 먹지 않는데, 나아가고 있는 게 아니라 죽임 당하고 있던 걸 지도 몰라. 이제 완벽한 기계가 되어가고 있는 와중일지도 몰라. 그것도 나쁘지 않다. 어차피 살아가며 앞으로 받을 칼날을 가늠해 보자면 고철덩이 되는 편이 속 편할 거다.
오늘 속이 괜스레 메스껍다. 여름도 아닌데 창문을 활짝 열어 놓고는 차디찬 땅바닥에 누워 요양을 했다.
식은땀도 나는 것이 왜 이럴까.
누워있는 것도 지겨워 이제 제법 넓어진 자취방 복층 계단에 비스듬히 기대앉아 열어 젖혀진 창문을 우두커니 바라봤다. 창 너머엔 주말이지만 늦은 시각이라 불 켜진 집들은 내 열손가락을 채울 수도 없다. 시커먼 빗물이 묻은 창문 너머는 IC로 통하는 길목 대로변이라 밤이지만 여전히 소란스럽다. 7평의 세계는 고요하다. 저기 저 너머 소리들만 우악스럽게 창을 타고 넘어온다.
그리고는 울었다. 아무 일도 없다. 그동안 울어버렸어야 할 일들에도 먹통인 배관이 이제야 터졌으려나.
슬픈 일 힘든 일 좋은 일 아무것도 없이 평안한 날이다. 그래서 울었다. 눈물이 콧물을 부르고 콧물이 다시 눈물을 부르고 너머 소리가 다시 날 울리고 넘어오는 바깥 소음을 핑계 삼아 한참을 엉망진창으로 울어버렸더니 티셔츠 가슴팍이 축축하다. 젖어드는 눈물이 한바탕이다.
입술 사이로 파고드는 것들이 짭짜름한 걸 보니 아직은 기계가 아닌가 보다.
아직은 사람. 여전히 사람. 눈물도 흘리고 그러면 됐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