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흔을 바라보는 아빠는 나이가 들었는지 부쩍 퇴근시간이면 전화를 건다.
한창 집중하고 있을 시간이지만 그 20분의 시간도 내주지 못하랴 싶어 시간을 내 받는다.
욕도 얼마나 잘하시는지, 욕을 뺀다면 아버지의 통화는 무성영화나 다를 바 없다.
퇴근길 트럭 안 적적함을 나로 때우려는 셈이다. 정치인, 수십 년 전 자신을 깔보았던 사람들, 또는 자신의 약력 읊기. 여전하다며 으스대는 듯한 말. 너무나도 똑같은 레퍼토리라 자동으로 다음 나올 말을 예상할 수 있지만 그래도 기력 없는 것보단 나으니 상스러운 말들과 함께 귓등으로 넘긴다. 이내 집 주자차장에 도착했는지 말소리가 사라지고 후진 경고음이 난다.
집 왔다 말한마디 하며 툭 하고 끊어졌어야 할 전화가 안 끊겼다.
닭다리를 뜯고 있었고. 손이 기름범벅이라 전화를 끊을 수 없다. 의도치 않게 도청이 시작됐다.
차 문이 쾅 닫히고는 경비아저씨 말소리가 들리고 측측 라이터 부싯질 소리가 들린다. 여전하게도 정을 품고 살아가는 그 시절 사람들이란 원래 그런 것인지 아버지는 경비아저씨들과 썩 잘 지낸다. 같이 담배를 피우기도, 가끔 시골에서 뭘 뜯어오면 주고받으며 그렇게 이웃처럼 지낸다.
그러더니 특정 정치세력을 신랄하게도 비판한다. 차마 글자로 옮길 수도 없을 흉측한 카더라 소식통이었다. 밖에서 그런 말 하면 안 된다, 극단적인 사람을 만난다면 큰일 날 수도 있다 신신당부했었는데 사실 아빠가 극단적인 사람 쪽인 것 같다.
어른들에겐 반대편 정치적 이야기를 빼면 도저히 대화주제가 생각나지 않는 걸까? 2030의 군대 얘기 같은 걸까. 그래도 생각의 결이 비슷한 사람과 얘기하니 다행이다. 이내 담배 한 까치를 다 피웠는지 실컷 욕을 다 끝내고는 처음으로 잠잠해졌다. 투벅투벅 엘리베이터를 향해간다.
홀로 남은 아버지가 한숨을 쉴지 어떤 주눅 든 소리를 내뱉을 까 마음이 조마조마했다. 다행히 침묵뿐이다. 층 알림 음성이 뜨고는 곧 소리가 뚝뚝 끊어진다. 삑삑삑삑. 옛 승용차 번호를 현관문 비밀번호를 하는 건 우리 집뿐일까. 옹알옹알 목소리가 들리다가 이제 엄마목소리까지 꺼지지 않은 전화기 너머로 들린다. 그러더니 주위 이웃이 다 들릴만큼 우렁차게 노래도 한다. 여긴 주택이 아니에요.
그 노랫소리는 나 아직 괜찮아라는 듯한 포효이자 힘들다 지겹다 부르짖는 투정일 테다.
몰래 전화를 들었고, 몰래 전화를 끊었다.
눈을 감은 채 아버지의 하루를 상상했다. 누가 일찍 가란 것도 아닌데 아침 6시면 출근길에 나선다. 한평생 번듯한 옷차림으로 출근 한 적 없다. 기름 떼 묻은 허름한 셔츠 옷을 입고 담배 물며 가는 운전길. 아빠와 함께한 출근길에서 아빠는 항상 라디오를 들었었다. 요즘 출근길도 라디오와 함께할까. 오늘 하루일을 생각하며 아예 듣지 않을까. 셔터문을 올리고 썰렁한 기계덩어리 사이로 들어가 전원을 켜면 털털털털 괴상망측한 기계음 소리와 함께 남들보다 이르게 아버지 하루는 시작된다.
콧구멍 가득 쌓이는 먼지. 매일 먹는 중국집, 지쳐 집에 돌아가 온종일 서있어 힘없는 새다리와 함께 이제 남은 하루는 누워 있는 채로 하루를 보낸다. 과거의 영광만 가진 야구팀 경기를 보며 욕을 하기도, 성질부터 내는 종편 진행자의 프로그램을 틀어놓은 채 나훈아의 노래를 듣기도, 그래도 다행히 자주 걸려오는 자식들이랑 전화를 하기도 한다. 호빵도 먹고, 맥스파이스 상하이버거도 먹고, 혼자사는 내 엄마는 식사는 옳게 잡수셨을까? 이젠 누구보다도 날개를 펼치고 있는 큰딸의 소식에 마음 한편을 놓이고 때론 그럼에도 걱정을 한다. 소식이 끊어진 작은 딸을 멍하니 마음속으로 그려보기도 한다. 도통 속을 알 수 없는 막내 생각을 해보기도 할 테다. 그렇게 보지도 않는 티브이를 틀어 놓은 채 좁은 소파에서 구겨져 스멀스멀 잠이 들고, 내일을 맞이할 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