객관을 위한 점

by 호림

조르주 쇠라는 정교한 점묘화로 알려져 있다. 쇠라의 그림은 가까이서 보면 형상을 잘 알아보기 힘들거나 묘미를 잘 몰라보지만 멀리서 보면 정교한 기법에 놀라게 된다.

우리 삶도 가까이서 보고 늘 같은 일상에서 맴돌면 스스로를 객관화시키지 못할 수 있다. 그럴 때는 한 발 물러서 보아야만 잘 보인다.


소용돌이치는 한가운데에서는 일의 본질을 잘 느끼지 못할 수도 있다. 한 발짝 떨어져 볼 때 전체를 잘 볼 수가 있고 자신을 객관화시킬 수 있다. 그렇지만 늘 일상은 분주하고 완전한 객관화는 어렵다. 개인들과 조직 사이에서는 종종 편견과 선입견으로 뒤덮인 시선들이 서로 충돌한다.

사안이 복잡할 때는 멀찍이 서서 한 번 돌아볼 필요가 있다. 유튜브의 알고리즘은 늘 유사한 콘텐츠를 추천하고 친구도 늘 유사한 부류와 어울리기 십상이기에. 나와 색깔이 다른 부류에 의견에 대한 경청의 미덕은 객관화를 돕기에 언제나 빛난다.


여행과 점심은 통한다. 점심은 하루의 여정에서 쉼표와도 같다. '점심'의 한자 의미는 마음에 점을 찍는다는 의미다. 하루에 점심에 있듯이 인생에도 가끔 마음에 점을 찍는 휴식이나 여행은 필요하다.

객관화는 스스로의 삶에 대한 관객이 될 수 있는 힘이 아닐까. 마음에 점을 찍듯이 캔버스에 수도 없이 많은 점을 수작업으로 찍었던 화가가 조르주 쇠라다. 쇠라는 점묘화를 위해 보통 유화 화가들이 쏟는 몇 배의 공력을 들였다고 한다. 그림의 완성을 위해 그만큼 물리적인 시간이 많이 걸렸다.


도심의 광장과 매스컴에는 충돌하는 세력들이 평행선을 그리며 분노의 언어를 쏟아내고 있다. 쇠라가 점 하나를 찍듯이 언어와 정책을 정교하게 구사하는 쪽은 스스로를 객관화해 국민의 마음을 비춰볼 것이고 개인은 물론 어떤 조직이나 세력도 객관화하는 힘이 센 쪽이 이길 것이다.

주말 어딘가로 떠난 길에서 점심과 객관, 쇠라의 점을 생각했다. 걷고 달리기만 했다면 일상에서 스스로를 돌아보는 쉼표는 생명의 양식이기도 하다.

(134) HAUSER - Panis Angelicus - YouTub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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