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pends on~

by 마디


오늘은 왠지 반팔을 입어도 후회하지 않을 것 것 같았고, 예감은 적중했다. 끝내주게 화창한 날씨에 땀이 날 지경이었으니 말이다. 한결 가벼워진 옷차림에 덩달아 상쾌해진 마음은 걸음을 발랄하게 만들었다. 매일같이 가는 길은 날마다 다른 색으로 물든다.


요즘은 여러 권의 책을 이것저것 읽는 식의 독서를 한다. 의도한 것은 아니고, 독서모임 책, 사서 한 장만 읽어볼까 하다 계속 읽게 된 책 등 저마다의 역사가 생겨버려서다. 그러다 보니 원래 고수하던, 한 권을 다 끝내야만 새로운 책으로 넘어가는 독서에선 알 수 없었던 새로운 재미를 찾게 되었다. 책마다 그에 맞는 때와 속도가 있다는 점이다. 한 자리에서 반절을 쭉 읽어버릴 만큼 몰입하는 것이 효과적인 책이 있고(끊을 수 없이 재밌어서이기도 하다), 2~3장으로 짧게 이루어진 편이 여러 개 수록되어 있는 책은 몰입도 있게 읽던 걸 잠시 내려두고 환기할 때, 혹은 부담 없이 언제든 꺼내 읽기가 좋다. 책마다 가진 속성을 파악하고 그와 나의 적절한 방식을 터득해 읽게 되면 독서에 대한 조급함 같은 건 깔끔하게 잊혀진다. 길고 오래 음미해야 좋은 것들을 빠르게 끝낼 필요가 전혀 없기 때문이다.


무언가 상황에 따라 굉장히 달라질 수도 있다는 말을 좋아하게 되었다. 정해진대로 하는 것이 가장 안전하고 좋은 거라고 생각해 왔던 게 예상치 못한 변수를 만나 달라지게 될 때, 그렇게 맞닥뜨린 방식에서 완전히 새로움을 찾게 될 때, 진리라고 믿어온 것이 틀릴 수도 있다는 것이 묘한 쾌감으로 다가온다. 그런 변화를 아무런 의도도 의식도 없이 이미 행하고 있는 경우도 분명 있을 것이다. 뒤늦게 알아차렸을 때가 이미 그에 아무렇지 않게 적응해 버린 후라면, 사실 새로움은 그리 어렵지 않다는 걸 증명하는 셈이다.


마침표를 찍는 일에 대해 생각해 본다. 온점이 찍히는 순간이 꼭 필요하다지만 매 순간 그래야 할 필요가 있을까? 때로는 돌아갈 곳이 있다는 것이 안심할 구석이 되어주기도 한다. 일단 반점을 찍어두고, 언제든 다시 돌아와 이어갈 수 있다는 안도. 삶에도 그런 너른 기다림의 구석이 있다면 좋겠다. '언제든 돌아와! 나 마음 열고 기다리고 있어' 하는 안도.

글을 쓰고 책을 읽는 시간이 쌓여갈수록 그 시간이 내 몸에 베이는 걸 느낀다. 나와 나만이 아는 시간은 안도의 숨구멍이 되고, 숨을 크게 내쉬는 순간은 나만의 리듬이 된다. 하나씩 소거해 가는 딱딱한 계획이 아닌, 절로 부드럽게 움직여지는 부드러운 리듬으로 존재하는 것이다.

화, 토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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