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우리는 봄 나들이를 다녀왔어. 매년 이맘때면 언제나 서울 거리를 하염없이 걸으며 시간을 보내는 것 같아. 올해도 어김없어서 기뻐. 오늘은 다른 날보단 조금 흐렸어. 그럼에도 너의 이마에는 벌써 땀이 송골송골 맺혔어. 너는 웬일인지 손선풍기를 챙겨 오는 철저함을 보였지만 얼마 가지 않아 배터리가 다 되었다고 했어. 어쩐지 허술한 네 모습을 웃겨하는 게 좋아.
아까 본 전시는 어딘가 이상했어. 삶과 죽음에 대해 이야기한다는 그 작가는 실제로 죽어있는, 한때는 살아있던 어떤 생명체 그 자체를 작품으로 만들었어. 죽어있는 것들을 보기 위해 잔뜩 모인 사람들은 그 앞에 서서 사진을 찍기도 했어. 사람들은 그것을 얼마큼의 충격으로 느끼고 있었을까?
점심을 먹기엔 애매한 정도였는데 전시장에서 나오니 갑자기 마구 배고파졌어. 우리는 오 년 전에, 그러니까 우리가 만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 갔었던 그 경양식 돈가스 집에 갔어. 신기하게도 모든 게 그대로더라. 인테리어도, 음식의 모양도, 맛도. 그땐 너랑 조금이라도 더 붙어있고 싶어서, 그 장소가 우리를 조금 더 그렇게 만들어주는 게 좋았어. 지금 나는 네가 먹는 걸 얼마큼 좋아하는지 알고, 너는 내가 얼마큼 먹는지 알아서 서로 그만큼 나눠먹으며 편안한 식사를 했어. 긴장의 정도는 다르지만, 들어가고 나올 때 꼭 잡고 있는 손은 여전하다는 게 새삼 소중했어.
길을 잘 못 찾는 네가 우리가 지났던 거리를 다시 걸을 때마다 여기 거기구나, 저번에 왔던 곳이네 하면 나는 영락없이 신기해해. 너와 내가 함께한 기억만큼은 긴가민가해지지 않는 것 같아서. 지나는 길마다 생각나는 것들을 이야기하다 보니 카페 앞에 도착했어. 결이라는 이름의 카페로 들어가며 우리와 결이 맞을까? 너는 싱거운 농담을 던졌지. 너는 평소와 다르게 필터커피에 관심을 보였어. 아쉽게도 입맛에 맞지는 않았지만, 때론 새로움에 두려움 없이 맞서는 법을 네게 배워.
우리는 따사로운 빛 아래 흐르는 청계천을 따라 걸었어. 익숙한 도로를 지나 처음 걷는 골목에 접어드니 향하던 장소가 나왔어. 이중섭 화가의 전시를 보러 간 바로 그곳. 그리움과 사랑을 한 움큼 쥐고 선과 선을 이어 그렸을 그의 시간을 상상하면 도무지 헤아릴 수 없는 무언가가 눈앞을 가득 채우는 것만 같아. 그런 그의 그림과 글로 가득한 공간을 너와 함께 채워서 좋았어. 아고리와 아스파라거스군의 사랑을, 그리움을, 애틋함을 너도 느꼈다면 좋겠다.
우린 전시장 안에 마련된 작은 체험공간에서 그림을 그려 붙였어. 서로의 안위를 염원하며 다정하게 엉겨 붙어있는, 이중섭의 화풍을 빼닮은 그림들 사이에. 사랑을 보전하고 싶은 마음만큼은 그 무엇보다도 순수할 그들의 마음이 어찌나 어여쁘던지. 너는 내게 한 줄의 끈을 사이좋게 붙잡고 있는 아이들 그림이 담긴 공책을 선물했어. 나는 그 공책에 어떤 이야기를 적게 될까?
오늘 우리의 발걸음이 닿은 곳엔 마치 헨젤과 그레텔의 과자조각 같은 자욱들이 남아있어. 착한사람에게만 보인다는 농담처럼, 너와 내게만 보이는 잔상들. 우린 언젠가 다시 그 흔적을 따라 걷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