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에게도 그런 사람이 있나요?
하루에도 수없이 많은 생각을 합니다. 어떤 날은 그런 줄도 모르고 하염없이 지나가지만, 때론 한 상황에서 갑자기 깨닫기도 해요. 특히나 샤워할 때, 양치할 때, 걸을 때처럼 무언가에 집중하지 않으면서도 익숙하게 몸을 움직이고 있을 때 문득 그렇다는 걸 느끼게 되곤 합니다. 보통은 과거의 생각이 많이 떠오릅니다. 더 자세히 말하자면 과거에 만났던 사람들이요. 평소에 생각하지도 않던 사람이 불쑥 떠오를 때면 스쳐 지나간 사람이 꿈속에 등장한 것처럼 조금 당황스러울 때도 있지만, 그때와는 또 달라진 지금의 내가 이전에 만났던 사람들을 떠올리는 게 꽤 흥미로우면서도 신기한 일이라고 느껴집니다. 마치 그들이 지금 내 상황에 실마리를 가져다주러 온 것처럼요.
오늘은 특이하게도 예전에 짧게 다녔던 회사 직원 중 가장 까칠했던 분이 떠올랐습니다. 불쑥 찾아온 그분에 대해 생각해 보다가 까칠하다는 표현보다는 새침하다는 표현이 더 맞을까? 싶은 생각도 들었어요. 20대 초반에 다녔던 회사에서 가장 어렸고, 가장 어리바리한 신입이었던 저는 여기저기 물어볼 것투성이였습니다. 특히나 사수가 계시지 않는 날엔 연차가 가장 높은 그분께 질문할 일이 많았는데요. 그럴 때마다 귀찮다는 듯 노려보면서도, 하나하나 꼼꼼하게 알려주시던 모습이 기억납니다. 타인의 반응을 많이 고려하는 편인지라, 그분께 말을 거는 일은 용기 필요했어요. 사수와는 다르게 언제나 정석대로 가르쳐주시고, 그렇지 않으면 왜 정석대로 하지 않았는지에 대해 정확히 짚어 물어보셨죠. 배우고 나면 확실히 알게 되는 게 감사하기도 하고, 동시에 두렵기도 하고 매번 만감이 교차했어요.
일주일에 한 번, 모든 직원이 돌아가면서 나가야 했던 외근이 있었습니다. 그분과 둘이 갔던 날, 조금은 가까워지고 싶은 마음에 역시나 용기 내 한 발짝 다가가 보려 대화를 시도했습니다. 많은 대답은 대답이 아닌 "그게 왜요?", "그게 뭔데요?"같은 질문으로 다시 돌아왔습니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럴 만한 이유가 있었더라고요. 이 일은 왜 시작하게 되셨는지, 언제까지 이 일을 하고 싶으신 지, 이 일을 통해 느끼는 보람이 무엇인지.... 참 치기 어리기 짝이 없는 질문투성이였으니까요. 그때 전 그런 식으로 하는 대화밖에는 할 줄 몰랐습니다. 그분에겐 어떤 답이 있었을지라도 저에게 그런 내밀한 이야기를 들려줄 필요가 없었을 것입니다.
그분을 떠올리면 생각나는 장면이 몇 가지 있습니다. 제일 먼저 출근하는 사람, 출근 후 항상 키보드와 책상을 모두 닦고 정돈하는 모습, 하루도 빠짐없이 머리부터 발끝까지 단정한 차림, 언제나 왼손에 들려있던 도시락 가방. 언젠가 여쭤본 적이 있는데, 도시락은 매일 아침마다 직접 싸오는 거라고 하셨습니다. 가끔 조금 일찍 나온 날, 회사 근처에 접어들면 그분이 앞서 걷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어김없이 빳빳하고 단정한 옷차림새와 왼손에 들려있던 도시락 가방을요. 그분의 걸음걸이는 절도 있었어요. 출근하기 싫은 사람의 모습이 아닌 걸음 같았달까요.
그곳과는 매우 멀리, 오랜 시간 떨어져 온 지금 그분을 다시 떠올리게 될 줄은 몰랐습니다. 한참 떠올리다 보니, 그분은 자신만의 바운더리가 매우 중요하신 분이 아니었을까, 싶어요. 매일 반복되는 일상을 자신이 정한 루틴대로 지켜나가는 것이 자부심이었을 것 같다고도 감히 예상해 보게 됩니다. 정해진 규칙대로 일하는 모습, 거의 모든 일을 제한된 시간 안에 끝내던 모습, 그런 걸 매일같이 지켜내던 모습이 그분을 감싸고 있어요. 어찌 보면 한 가지를 꾸준히 해내는 것을 어려워하는 저에겐 그분 자체가 새로운 철학같이 보였던 것도 같습니다. 그래서 더 궁금한 게 많았었나 싶네요.
문득 떠오른 그분이 오늘도 자신의 루틴대로, 정해진 규칙대로, 그렇게 하기로 한 것을 지키며 살아가고 있을 거란 생각이 조금은 용기가 되는 것 같습니다. 그분의 어떤 반응이 때론 까칠하게 느껴질 수도 있지만, 그렇게 하루하루 자신을 지키고 있는 것이겠죠. 어떤 건 시간이 지나야만 마음에 와닿는다는 말이 생각납니다. 나와의 약속을 지키며 살아가는 사람의 견고함을 그분께 배우고 있었던 거네요. 또 언젠가 어떤 사람이 불쑥 머릿속을 가득 채울까요. 그때는 또 어떤 실마리를 마주하게 될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