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타페, 뉴멕시코
미국의 여러 주를 다니면서 미국이 왜 다양한 문화가 섞여있는지 알게 되었다. 미국은 과거 스페인, 프랑스, 영국, 멕시코등의 여러 나라가 호시탐탐 노렸던 역사가 있다. 거기다 미국도 인디언들의 땅을 차지하게 되면서 여러 문화가 공존하는 모습을 보였다. 주에 따라 루이지애나는 프랑스와 스페인의 문화가 섞여있고 애리조나나 뉴 멕시코는 인디언과 멕시코의 문화가 강했다. 그중에서도 정말 여기가 미국이야? 싶은 곳이 바로 뉴 멕시코의 산타페이다.
산타페는 도시자체가 마치 미국이 아닌 외국에 온듯하다. 모든 건물이 어도비 양식으로만 지어야 한다. 찰흙 같은 색깔의 흙벽돌과 나무로 동글동글하게 마무리를 해놓은 건물들 때문에 마치 어느 멕시코마을에 온듯한 느낌을 준다. 그래서인지 많은 관광객들과 예술가들이 찾는 곳이기도 하다.
산타페는 뉴욕, 엘레이 다음으로 미국에서 3번째로 큰 미술시장을 가지고 있다. 세계적인 대도시인 뉴욕이나 엘레이에 비해 산타페는 인구나 경제력이 그리 크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예술가들이 많이 모이고 그림을 사고파는 곳으로 유명한 것은 무척 이례적인 곳이다. 그만큼 예술가들이 사랑하는 곳이다.
그런 예술의 도시 한가운데 화룡점정 세계적인 모던 여류화가 조지아 오키프(Georgia O'Keeffe)의 미술관이 있다. 뉴멕시코를 입성하면서 나의 목적은 단 두 개뿐이었다. 일 년에 한 번 앨버커키에서 하는 세계적인 열기구 축제를 참석하는 것과 오키프 미술관을 가보는 것이었다. 그녀에게 산타페는 고향은 아니지만 뉴멕시코를 사랑해서 40여 년 가까이 그곳에서 살다가 그녀의 유언대로 마지막 그녀의 유골까지 뿌린 곳이다. 때문에 그녀의 고향이 아닌 산타페에 그녀의 미술관이 있다. 그리고 그녀의 미술관은 산타페의 자랑이자 꽃이 되었다.
그림을 전공하고 그림을 그리는 여자에게 그녀의 작품과 그녀의 삶은 많은 것을 시사해 준다. 지금도 그렇지만 여류화가가 되는 것은 하늘에 별따기이다. 예술세계도 화려한 인맥과 든든한 서포터가 없으면 유명해지기 힘든 곳이다. 유명해지지 못하면 자신의 밥벌이도 힘든 곳이 바로 예술시장이다. 자신의 작품을 전시할 능력, 즉 돈이 있거나 그도 아니면 자신의 재능을 이끌어줄 유명한 화가나 큐레이터가 필요하다. 하지만 1900년대 미국에서 여성에게 그런 기회는 흔치 않다. 그 당시 미국도 여성에게 요구되는 것은 자유나 독립이 아니라 가족을 위한 희생과 헌신이었을 것이다. 그 와중에서도 그녀는 자신의 꿈을 일찍 깨달았고 그것을 위해 몰두했다. 그녀가 그림을 그릴 수 있는 방법은 오직 미술 선생님이 되는 것이었다.
그녀는 사실 운도 좋았다. 그녀가 이렇게 유명해진 것은 분명 남편의 도움이 있었다. 유명한 사진작가였던 남편, 알프레드 스티글리츠의 사진 속 모델로 자주 등장했다. 그녀는 남편의 뮤즈로 먼저 인지도를 쌓게 된다. 그 후 남편의 갤러리에서 그녀의 그림을 소개하기 시작하면서 그녀는 점점 유명세를 얻었다. 자신의 그림이 자식이라 여기며 남편과 사이에서 자녀도 포기하고 작품에 전념했다. 뉴욕에서 유명세를 떨치고 있을 때 오히려 그녀는 황량한 뉴 멕시코로 이주해 스스로를 고립시켰다. 남편이 죽기 전까지 뉴욕과 뉴멕시코를 왔다 갔다 하며 거의 99세까지 작품활동을 놓지 않았다.
마치 남편의 후광으로 인기와 유명세를 얻은 예술계의 반짝 스타처럼 등장했다. 하지만 그녀는 그것으로 만족하지 않았다. 유명해지고 싶었던 것이 아니라 진정한 예술가가 되고 싶었던 그녀였다. 그랬기에 그녀는 그림을 놓은 적이 없다. 노년에 눈이 안 보이게 되자 붓을 내려놓고 도자기를 통해서 자신의 작품세계를 이어갔다. 12살에 찾은 자신의 꿈을 99살까지 하고 싶은 그 열정이 어쩌면 그녀에게 가장 큰 복이 아닐까 싶다. 자녀도 제대로 된 결혼생활도 포기한 그녀는 오리지 그림만 사랑했다. 그 꾸준한 사랑과 열정이 지금의 그녀의 명성을 만들어 낸 것이라 믿는다.
대중들에게 가장 유명한 작품은 그녀의 꽃그림들이다. 하지만 언뜻 보아선 무슨 꽃인지 알 수 없을 때가 많다. 그건 그녀가 꽃을 무척 가까이서 관찰하고 그렸기 때문이다. 즉 사물을 자세히 심도 있게 드려다 보면 우리가 모르는 형태가 색깔, 구조등을 볼 수 있게 된다. 일반사람이 생각하는 백합의 이미지와 오키프처럼 자세히 들여다 보고 뜯어보고 관찰한 사람의 백합은 다를 수밖에 없다. 오키프는 그것을 말하고 싶었다. 자세히 들여다보면 다른 것들이 보인다고. 뉴멕시코로 이주한 이후의 그녀의 그림은 변하기 시작한다. 화려한 색감을 자랑하던 꽃에서 동물의 유골과 광활한 사막이 등장한다. 환경의 영향과 동시에 나이가 들면서 삶과 죽음에 대한 고찰도 하지 않았을까 싶다.
미술관 자체는 여느 곳처럼 크거나 화려하진 않았지만 미국에 있는 유일한 여성 독립 미술관이라는 것에 큰 의미가 있었다. 초창기 그녀의 작품부터 남편의 뮤즈로의 모습, 그리고 그 누구도 아닌 화가로서의 그녀의 작품들을 감상할 수 있는 곳이다.
https://www.okeeffemuseum.or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