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National World War 2 Museum, 뉴올리언스.
미술관을 소개하는 브런치북의 첫 글이 미술관이 아닌 것이 좀 우습기도 하지만 요즘 내가 자주 생각나는 작가의 작품이기에 첫 글로 선택했다. 바로 케테 콜베츠의 작품이다. 세계 여러 나라의 전쟁으로 불안한 요즘 나는 그녀의 작품이 자꾸 떠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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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달 전 나는 루이애지나주에 머물렸다. 재즈의 고향인 뉴올리언스에서 어쩌면 가장 유명한 박물관은 2차 세계대전 전쟁 박물관이었다. 미국에서 ‘National’이란 단어가 붙는 공원, 박물관, 보호구역은 모두 국가적으로 중요한 곳일 확률이 높다. 그만큼 또 멋있거나 중요한 의미를 지닌 곳이다.
나에게 루이지애나는 재즈와 태풍 카트리나가 가장 알려진 주였다. 특별히 국립공원이 유명한 곳도 없고 뉴올리언스 말고는 딱히 알려진 곳이 없는 조용하고도 심심한 주였다. 루이지애나에 도착했을 때 2월임에도 불구하고 하루 종일 스팀을 켜놓은 것 같은 날씨는 도무지 여름이 상상이 되지 않는 곳이었다.
루이지애나의 관광은 뉴올리언스에 몰려있었다. 그곳에 세계 2차 대전의 박물관이 있었다. 3개의 빌딩을 연결해서 만들 만큼 볼거리가 많고 교육적인 곳이다. 박물관을 다 보고 나오면 전쟁은 다시 일어나지 말아야 한다는 생각이 확고해진다.
그곳에서 2차 세계대전의 역사를 따라가면서 거의 끝날 때쯤 작은 미술관이 있었다. 전쟁은 피카소의 게르니카처럼 전쟁만으로도 미술작품에 큰 주제가 되기도 한다. 거기다 전쟁으로 인해 생긴 트라우마와 상처, 아픔을 미술로 표현하는 경우가 무척 많다. 슬픔과 분노, 참담함, 억울함과 화가 너무 크면 말로는 도무지 표현할 방법이 없을 때가 많다. 때문에 미술은 참전 군인들이나 전쟁 생존자들에게 쌓여있는 감정들 배출할 수 있는 치유의 도구로 여전히 이용되고 있다.
2차 세계대전 박물관에서 콜베츠의 작품을 만났다. 이곳에 그녀의 작품이 있을 것이라 예상하지 못했기에 그곳에서 그녀의 작품을 실제로 볼 수 있었던 것이 너무 반가웠다. 이런 예측하지 못한 작은 행운들이 미국여행을 하면서 나에게 주는 소소한 기쁨이다. 마치 길 가다가 공돈을 주운 것 같고 점심을 먹으러 간 중식당에서 서비스로 주는 군만두같이 반갑고 기쁘다.
미술관이 아닌 이곳에 그녀의 작품이 있는 것이 놀라웠지만 어쩌면 완벽한 곳에 그녀의 작품을 전시하고 있음을 알았다. 그녀는 2차 세계대전으로 인해 두 아들을 잃었다. 전쟁으로 인한 슬픔과 고통을 누구보다 깊게 느꼈다. 그녀는 자신이 가지고 있는 재능으로 전쟁의 참상과 자식과 가족을 잃은 아픔을 절절히 표현했다. 그녀에게 전쟁은 그런 것이었다.
누군가는 반드시 해야 하고 누군가는 어쩔 수 없다고 말할지 모르겠지만 전쟁은 분명히 개인에게 엄청한 상흔을 남긴다. 그것은 전쟁이 끝나도 절대로 사라지지 않는다. 자식을 잃고 남편을 잃고 가족을 잃은 그 아픔이 전쟁이 끝나고 평화를 찾는다고 사라질까? 나아가 전쟁으로 집을 잃고 직장을 잃고 삶의 터전을 잃어버린 사람들은 그 후로도 계속 가난과 트라우마속에 살아야 한다. 그런 그들의 삶의 전쟁은 그때부터 시작이다.
나는 전쟁을 경험한 세대가 아니다. 하지만 한국전쟁은 내게도 삶에 분명히 상처를 남겼다. 한국전쟁으로 인해 일어난 윗세대의 가난, 불안과 트라우마는 세대를 거쳐 나에게까지 미쳤음을 나는 몸으로 알고 있다. 따라서 지금 세계 곳곳에 일어나는 전쟁의 여파는 생각보다 길고 오래갈 것이고 그것이 마음이 참 아프다.
미국과 이란의 전쟁이지만 미국은 여전히 보기엔 평온하다. 하지만 나는 그녀의 그림을 통해 이름도 나이도 모르는 이란과 이스라엘 국민들의 얼굴이 겹쳐 보인다. 어떤 인종이든 어떤 모습이든 상관없이 가족을 잃은 사람의 모습은 분명 이러할 것이기 때문이다. 이것이 그녀가 우리에게 전달하고자 한 메시지이자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모습이 아닐까 싶다.
<박물관 웹사이트>
https://www.nationalww2museum.org/visit/plan-your-visi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