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8. 네가 겉멋이 들 때
거울을 한참 들여다보던 딸아이가 오빠에게 쪼르르 달려가 이렇게 묻는다.
“시우야, 나 예뻐?”
“아니, 안 예뻐. 이상해, 괴물 같아. 하늘색 리본만 해야지. 세 개나 하니까 도둑 같아.”
시우의 독설 덕분에 내 말은 지독하게 안 듣던 딸이 울상이 되어 나머지 두 개의 리본을 빼 달라고 한다.
“시우야, 나 예뻐?”
나경은 다시 거울 앞을 한 번 거쳐서 시우 앞으로 가서 묻는다.
“응, 이제 예뻐. 공주 같아.”
시우의 말 한마디에 함박웃음을 터트리는 딸은 요즘 오빠의 조언이 곧 뼈대인 미학을 세워나가고 있다.
“만두 먹을래?”
열다섯의 가을날이었다. 거실 소파에 앉아 드라마를 시청하고 있을 때 부엌 쪽에서 엄마가 물었다. 프라이팬에 노릇하게 구워 한입 베면 뜨거운 당면이 삐죽이 튀어나오는 군만두를 엄마와 나는 좋아했다. 프라이팬 채 먹어야 그 열이 오래간다며 엄마는 텔레비전 앞 작은 교자상 위에 프라이팬을 올려놓았다. 텔레비전에 한 눈이 팔린 나는 프라이팬을 내 앞에 바짝 두고 먹을 심산에 교자상을 내 앞으로 힘껏 당겼으나 그것은 돌이킬 수 없는 실수였다. 상을 끌어당김과 동시에 달궈진 프라이팬이 플라스틱 받침대를 미끄럼 삼아 나의 오른쪽 종아리 위로 미끄러져 떨어졌다. 그날의 지글거리는 소리와 타는 냄새를 잊을 수 없다. 그리고 닭똥 같은 눈물을 뚝뚝 흘리며 빨간색 주방 가위로 팬에 붙은 내 종아리 살을 잘라내던 엄마의 떨리던 손까지. 그 모든 정황이 내 마음에 재난 영화 속 한 장면처럼 남아 있다. 결국 나는 3도 화상을 입었다. 딸의 종아리에 어린아이 주먹 크기의 흉이 진 것에 대해 엄마는 그 누구보다도 가장 많이 속상해하였다. 그 일이 있고 나는 매일 점심시간이면 외출증을 끊어 학교 후문에서 엄마를 만나 피부과에 갔다. 가을볕에 화상 부위가 더욱 검게 남을까 봐 엄마는 매일 아침 나의 오른쪽 종아리에 하얀 압박 붕대를 칭칭 감아 주었다.
열다섯. 친구들은 매일 아침 아이참 테이프로 쌍꺼풀을 만들고, 주말의 지하상가를 찾아 귀를 뚫기 시작했다. 우정 반지나 팔찌도 맞춰하고 손거울과 각종 화장품을 담은 파우치가 가방에 자리 잡기 시작했다. 그러나 나의 가방에는 커다란 식염수 통과 압박붕대, 수시로 발라 줘야 하는 약과 거즈, 반창고가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었다. 화상 부위에 흑갈색의 딱지가 거북이 등가죽처럼 쩍쩍 갈라져 그 사이로 고름과 같은 분비액이 흘러 온통 다리에만 신경 쓰던 열다섯의 나였다.
“어른이 되면 내 엉덩잇살을 떼어서 네 종아리 화상 자국을 수술하자. 그리고 붕대 감은 네 모습도 멋있어, 정말이야.”
사랑과 우정 사이를 넘나들던 친구가 내게 건넨 이 말은 지금까지도 다리의 선명한 화상 자국처럼 내 마음에 찐득하니 붙어 있다. 매일 저녁 누런 고름이 묻은 거즈를 떼어 식염수로 소독하며 눈물 흘리던 나는 더는 울지 않았다. 그리고 붕대를 나의 심벌로 삼기로 마음먹었다. 나는 일부러 일 년을 더 붕대 감고 다녔다. 처음에는 잘 아물기 위해서 감아야 했고, 해가 바뀌고 봄이 되었을 때는 화상 부위를 감추고 싶어 붕대를 감았다. 그리고 여름에는 양말을 신듯 으레 나의 트레이드 마크가 된 붕대를 당연하게 감았다. 졸업앨범을 찍을 때도 나는 나의 붕대 감은 다리를 바위 위에 턱 올리고 찍었다. 붕대는 이제 나의 상처와 슬픔이 아니라 천여 명의 전교생 중 나만 두를 수 있는 특별한 스타킹이었다. 돌이켜 보니 그때의 나는 깊은 밤에 붕대를 감으며 방황하는 불빛을 잡던 ‘중2병’을 앓는 시기를 관통하고 있었다.
나경아, 벌써 일 년 전 일이 되었구나. 작년 가을, 네 생일을 일주일 앞두고 네가 아파트 뒤뜰 돌계단에서 굴러 떨어져 미간에 크고 깊은 상처가 났었지. 피가 철철 흐르는 너를 가슴에 안고 집으로 올라오며 엄마는 이십 년 전의 나와 엄마를 생각했단다. 나의 강한 엄마가 부들부들 떨리는 손으로 프라이팬 뒤에 붙은 내 살을 가위로 자를 때 나는 엄마도 무서워하고 있다는 걸 느꼈어. 네 빨간 상처를 소독하며 나는 울지 않으려 안간힘을 썼지. 어안이 벙벙한 네 입에 네가 가장 좋아하는 박하사탕을 하나 넣어주고 말이지. 그리고 몇 달에 걸쳐 네 상처 부위의 습윤밴드를 갈아주며 깨끗이 상처가 사라지길 간절히 바라고 또 바랐지. 엄마는 그 기간 동안 얼굴 정중앙에 붙인 밴드를 한 번도 떼지 않은 네게 고마우면서도 미안했지. 나의 부주의함에 예쁜 내 딸 얼굴에 평생 흉이 지면 어쩌나 하고, 습윤밴드 붙인 네 모습을 사진 찍을 때면 너무 속이 상해 어느 순간 사진 찍는 횟수가 대폭 줄고 말았지. 그러던 어느 날 네가 손가락으로 미간에 붙은 밴드를 만지며 뽀로로 밴드는 없느냐고 내게 물었지. 나는 네 물음에 아연 눈물이 나고 말았지. 그리고 화상 부위를 감은 붕대 위에 매직으로 시답지 않은 명언을 쓰기도 하고, 캐릭터 그림을 그리기도 했던 이십 년 전의 날 떠올렸어. 어쩌면 너의 마음이 그때의 나와 같은 건지도 모르겠구나 싶었어.
사랑하는 나의 딸, 네가 조금 더 자라 사춘기 소녀가 되어 겉멋이 들고, 남들과는 조금 다른 특별한 나의 표식을 갖고 싶어 하는 시기를 맞이하면 이 노래를 들어줬으면 좋겠어. 그때의 엄마는 이 달큼한 분위기의 노래가 어쩐지 마음에 들어 노래방에 가면 퇴실이 다가올 때 친구들과 의자 위에 올라가 고래고래 이 노래를 불렀지. 술 대신 콜라를 마시며 새벽 거리를 배회할 수 없는 우리에게 깊은 밤은 고작 열한 시쯤이었던 것 같은데 말이야. 어른이 되어 돌아보면 겉멋, 똥폼으로 보이지만, 그때는 가장 예쁘고 멋지다 여겨질 너의 한껏 꾸민 모습을 엄마가 백만 장 사진 찍어 놓을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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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ck 08.
크라잉넛 [밤이 깊었네] 작사·작곡 캡틴락
밤이 깊었네-! 방황하며 춤을 추는 불빛들
이 밤에 취해(술에 취해) 흔들리고 있네요
벌써 새벽인데 아직도 혼자네요
이 기분이 나쁘지는 않네요
항상 당신 곁에 머물고 싶지만
이 밤에 취해 (술에 취해) 떠나고만 싶네요
이 슬픔을 알랑가 모르것어요
나의 구두여 너만은 떠나지마오 워~
하나둘 피워오는 어린시절 동화같은 별을 보면서
오늘밤 술에 취한 마차타고 지친 달을 따러가야지
밤이 깊었네 방황하며 노래하는 그 불빛들
이 밤에 취해 (술에 취해) 흔들리고 있네요
가지마라 가지마라 나를 두고 떠나지마라
오늘밤 새빨간 꽃잎처럼 그대 발에 머물고 싶어
딱 한번만이라도 (가지마라)
날 위해 웃어준다면 (나를 두고)
거짓말이었대도 (가지마라)
저 별을 따다 줄텐데 (나를 두고)
아침이 밝아오면 (가지마라)
저 별이 사라질텐데 (나를 두고)
나는 나는 어쩌나 (가지마라)
차라리 떠나가주오 워~
하나둘 피어오는 어린시절 동화같은 별을 보면서
오늘밤 술에 취한 마차타고 지친 달을 따러 가야지
가지마라 가지마라 나를 두고 떠나지마라
오늘밤 새빨간 꽃잎처럼 그대 발에 머물고 싶어
날 안아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