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 네가 김치를 맛있게 먹을 때
“엄마, 여기서는 무얼 해? 대포 쏴?”
붉은 광장을 둘러보던 시우가 내게 묻는다.
“대포? 아니. 이제 전쟁은 끝났지. 여기서는 특별한 날 많은 사람들이 모여서 커다란 행사를 하지.”
나는 코로나 때문에 한 층 한산해진 붉은 광장이 어색하면서도 쾌적하다는 생각을 하며 대답했다. 그리고 나는 내 나라의 광장, 광화문은 요즘 어떤 모습일까 새삼스레 궁금해졌다.
“너희는 88 서울 올림픽 못 봤겠다. 굴렁쇠 소년 몰라? 코리아나 손에 손잡고 노래도 들으면 모르려나?”
대학에 들어가서 학번을 얘기하면 고학번 선배나 이미 졸업을 한 까마득한 한 번의 사십대 선배는 꼭 이런 질문을 하곤 했다. 그리고는 우리가 서울 올림픽 개최 당시 이제 막 걷기 시작한 아기였다는 사실을 알고 나면 그들은 몹시 유감이라는 표정을 지었다.
“가만있어봐. 2000년대생이면 2002 한일 월드컵 모르려나? 대~한 민국! 이거는 알지? 오~ 필승 코리아! 이건 모르려나? 윤밴이 부른 건데.”
호돌이를 모른다고 애석해하던 그들과 다름없는 표정으로 나는 즈믄둥이 이후 세대를 만날 때면 꼭 한일월드컵으로 그들의 나이를 셈하고 통탄한 표정을 짓는다. 그리고 그 시절 광화문에서 붉은 함성을 외쳤던 여름을 떠올리며 그때를 함께 했던 친구들은 다들 어디에서 무엇을 하는지 자못 궁금해진다. 기성세대가 되었다는 것은 ‘라떼는 말이야’가 나도 모르게 불쑥 튀어나오는 사람이 되었음을 의미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아버지는 네덜란드에 5대 0으로 대패한 축구 중계를 보며 홀로 줄담배를 태우셨고, 득점이라도 할 때면 주먹을 불끈 쥐며 ‘그렇지!’하며 평소에는 듣기 힘든 큰 목소리로 잠든 가족을 깨우셨다. 한일월드컵을 맞기 전까지 축구에 대해서는 쥐뿔도 모르는 내게 월드컵은 태극마크를 가슴에 단 선수들의 운동경기는 새벽도 불사하고 모든 경기를 살뜰히 챙겨보시는 아버지의 전유물이었다. 그러나 2002년 월드컵은 한국과 일본에서 공동 주최하여 시차도 없었고, 익숙한 지명의 경기장에서 치르는 우리 대표팀의 경기에 눈길이 가기 시작했다.
때마침 나의 중학교 체육복은 탁한 붉은빛의 고추장 색이었다. 한국대표팀 경기가 있는 날이면 우리는 'The Red'라는 하얀색 글자가 적힌 빨간색 티셔츠에 고추장 바지를 입고, 커다란 태극기를 망토처럼 두른 채 태극마크를 그린 얼굴로 지하철을 탔다. 5호선으로 환승하기 위해 1호선 전동차에서 내리던 신길역은 유달리 환승구간이 길었다. 그곳에서부터 붉은 옷을 갖춰 입은 이들의 행렬은 시작되었다. 이미 만차였던 전동차가 신길역에 들어와 문을 열면 크고 작은 붉은 악마들이 몸을 구겨 그 안에 뿔을 더해 함께 광화문으로 향했다. 서울 지리를 잘 알지 못했던 열다섯의 나와 친구들은 붉은 대중에 한 데 섞여 커다란 전광판이 잘 보이는 곳을 찾아 쪼르르 바닥에 자리를 깔고 앉아 관전했다. 관전보다는 그곳에서 수많은 붉은 악마와 함께 응원하기 위해 광화문을 찾았다. 매 경기마다 한국 축구의 역사가 새로이 쓰였고, 꿈을 이루기 위해 너도나도 발바닥에 불이 날 무렵에는 전광판이 잘 보이는 자리를 선점하기 어려워서 화면이 잘 보이지 않는 곳에서도 빼곡히 앉아 응원하기 시작했다. 승리의 나날이었다. 골이라도 들어가면 우리는 자리에서 일어나 함께 온 친구도 얼싸안고, 옆자리에 앉은 모르는 이와도 어깨동무하고 기쁨을 나눴다.
2002년, 한국의 유월은 붉었다. 32에서 16으로, 16에서 8로, 4로 숫자가 반 토막 날수록 나라 전역이 끓었고, 축제는 점점 끝으로 향하고 있었다.
“얘들아, 나 오늘은 사진기 챙겨 왔어. 월드컵이 끝나면 우리가 언제 또 이렇게 시청에서 광화문까지 대로를 활보하겠어? 오늘 우리 많이 찍자. 우리의 2002년 광화문!”
그날의 경기도 태극전사는 이겼다. 우리는 응원하며 친해진 옆자리 오빠들과 얼싸안고 승리의 기쁨을 함께 나눴다. 특히 흥이 많은 꽹과리 오빠 무리와는 다음번에도 함께 응원하고 싶었다. 휴대폰도 없던 시절, 다음 경기 때도 이 자리에서 만나 함께 응원하자던 그도 월드컵을 추억하면 함께 했던 이름 모를 여중생 붉은 악마들을 기억할까. 마스크가 얼굴 일부가 되어 사회적 거리를 좁혀나갈 수 없는 오늘날, 나는 서글픈 라떼를 마시며 새하얀 치아를 모두 드러내고 모르는 이와 어깨동무를 한 채 끝도 없는 행진을 하는 붉은 악마의 낡은 사진 한 장을 바라본다.
***
나경아, 네게 엄마의 첫 광화문 입성기를 얘기하려고 2002년도 한일 월드컵을 떠올리는데 그 붉은 유월이 십 년이 아니라 이십 년 전이란 사실에 엄마는 격세지감을 느꼈어. 한국전이 있는 날에는 양 갈래 머리를 하고 태극기를 들고 축구 응원을 하겠다고 반 친구들과 전철에 몸을 실었지. 어디에서 어떻게 응원하는지 몰랐던 나는 광화문에 가서 어떡해야 할까 걱정했는데 그런 우려와 달리 이미 신길역에서부터 모든 이들이 우리와 같은 곳을 향했어. 너 나 할 것 없이 모두가 12번째 태극전사가 되었지. 그렇게 광화문은 엄마에게 축제의 광장으로 자리하였어. 그 이후로는 광화문에 갈 일이 없다가 대학생이 되어서 다시 광화문을 찾았지. 복개되었던 청계전이 다시 흐르고, 차도의 차들이 쉽 없이 오고 가고, 거리를 걷는 이들 모두 바삐 어딘가를 향하고 있었어.
네게는 당연히 광화문보다 붉은 광장이 더 익숙하겠구나. 한국에 간다 하여도 우리가 부러 광화문을 갈 일이 없으니 말이야. 그런 네게 한국의 언어와 문화, 역사, 식습관과 생활양식, 세시풍속 등을 엄마가 어떻게 가르쳐야 할지 솔직히 잘 모르겠어. 그럼에도 내가 가르치지 않아도 너희 스스로 한국을 체득하여 김치를 맛있게 먹는 날이 올까. 부엌에서 불내가 진동할 만큼 얼큰한 김치찌개를 우리 가족 넷이 전투적으로 먹는 날, 엄마는 이 노래들을 메들리로 엮어 무한 반복으로 틀어놓고 신나게 설거지를 할 테야. 그럼 노래가 말해주겠지. 이건 뭐라고 설명하기도, 표현하기도 어려운 그냥 한국인의 흥(興)이라고.
Track 10.
2002 한일 월드컵 응원가 메들리
[YB+Red Devil 대한민국+레이지본+Trans Fixion+버즈]
Red Devil 대한민국 (Intro The Arena)
Trans Fixion (승리의 함성)
레이지본 (Go West)
YB (오 필승코리아)
버즈 (Reds go to togethe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