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rack 13. 강산에 [거꾸로 강을 거슬러 오르는

13. 네가 문학소녀를 자처할 때

by 밍구


“이제 불 끄고 자자. 벌써 아홉 시야. 내일 일찍 일어나려면 어서 자야지.”

자유 시간을 조금이라도 더 벌어볼 심산으로 거실에서 뭉그적거리는 아이들을 채근하는 내 목소리는 점점 거칠어진다.

“이거 한 권만 더 읽고, 응? 오늘 책 안 읽었잖아. 한 번도 안 읽은 책으로 고르면 엄마가 읽어줘, 응?”

큰 아이의 말에 작은 아이도 벌떡 일어나 책장 앞에서 자신이 좋아하는 책을 골라 온다.

“아니 왜 꼭 책을 자기 전에 읽으려고 해? 아까 낮에 유튜브 볼 시간에 책 읽으면 좀 좋아? 너무 많이는 안 돼. 딱 한 권씩만 꺼내 와.”

나는 책을 읽겠다는 아이들을 혼낼 수 없어 하릴없이 소파에 앉고 만다. 그러면 질리지도 않는지 아이들은 매번 똑같은 책을 골라와 양 무릎에 앉아 자신의 책을 먼저 읽어 달라고 한다.

“낮에 읽는 거는 재미없어. 자기 전에 밖이 캄캄할 때 엄마가 읽어주는 게 제일 좋아!”

나는 어린 사기꾼의 말에 슬쩍 입꼬리를 올리며 못 이기는 척 책장을 펼쳤다.


아파트 상가 지하 떡집 맞은편에는 책 대여점이 자리했다. 책이라는 빨간 글씨가 꽉 찬 동그란 스티커가 붙은 미닫이문을 드르륵 열면 사방이 책으로 둘러싸인 작은 공간이 펼쳐졌다. 마치 콩트를 촬영하는 간이세트장처럼 조성된 책 대여점은 책장 또한 미닫이 형태로 앞의 책꽂이를 옆으로 밀면 뒤편 책꽂이가 또 다른 테마로 가지런히 꽂혀 있었다. 우리 가족은 모두 오빠 이름으로 책을 대여했다. 당시 나를 제외하고 부모님과 오빠는 대여한 책을 경쟁하듯 돌려 읽었다. 60권으로 이루어진 요코야마 미쯔테루 작가의 <전략 삼국지>를 다 읽자 그들은 <항우와 유방> 21권 전집을, 10권짜리 <수호지>를 차례로 섭렵했다. 아직 그 장단에 맞추지 못했던 어린 나는 그들이 대여점에서 책을 열 권 단위로 대여하고 반납하는 동안 미닫이문을 열고 나와 그 앞 떡집에서 꿀떡을 골랐다. 그러다가 그들의 반열에 끼고 싶어 그들의 책 맨 위에 불쑥 <도라에몽> 만화책을 올려놓았다. 집에 오기가 무섭게 그들은 또다시 독서 릴레이를 시작했고, 나는 꿀떡을 먹으며 홀로 도라에몽 빵을 먹는 도라에몽과 진구를 만났다. 세 시리즈를 모두 완독한 이후로 부모님은 각자의 독서 취향을 넓혔고, 오빠와 나는 한 팀이 되어 <소년탐정 김전일>을 읽으며 매일 밤 할아버지의 명예를 걸고 범인을 잡는 그를 뒤쫓았다. 그때 나는 비로소 혼자 책 내용을 알지 못하던 소외감이 사라졌고, 함께 읽는 독서의 유대성과 재미를 배웠다. 1박 2일 동안 우리 집에 머무는 책들로 하여금 우리 가족의 마음 곳간은 날로 풍성해졌다.

만화책에서 그림이 빠진 책으로 전환된 계기는 친척 중 내가 가장 잘 따랐던 열 살 위 민수 오빠의 책 선물이었다. 대학생이던 그는 내게 헤르만 헤세의 『잃어버린 나를 찾아서』와 안도현의 『연어』를 선물해줬다. 전자는 어려우면서도 와닿은 문장을 다이어리에 옮겨 적으며 번역 투의 문장이 주는 낯선 느낌을 이해하기 위 몇 번이고 곱씹어 읽었다. 그에 반해 후자는 술술 읽혔고, 그 책을 읽은 이후로 강산에 노래가 라디오에서 이따금 나올 때면 나는 책 표지의 힘찬 연어를 떠올렸다. 그 시절 명문대에 재학 중인 오빠가 선물해 준 두 권의 책을 학교에 갖고 다니며 폼도 잡아보고, 어떻게든 내용을 이해하고 싶어 밤을 새워서 읽고 또 읽었다. 그 밤이 좋아 새벽 독서를 시작했다. 어려운 수학 문제집을 책상 한편으로 치우고, 창문을 열어 밤공기를 맡으며 책을 읽노라면 나는 문학소녀가 되어 조금 멋져지는 것 같은 착각에 빠졌다. 그리고 그 착각의 늪은 헤어 나올 수 없이 깊었고, 나는 자주 대여점을 드나들었다.

본격적으로 소설을 탐독하게 된 것은 전적으로 중학교 삼 학년 국어 선생님 덕분이다. 그녀가 내준 여름방학 숙제는 장편소설 한 권 읽기였다. 자신의 장편소설을 결정하는 방법은 제비뽑기였고, 내가 뽑은 제비에는 [은희경『새의 선물』]이 적혀 있었다. 자신의 방학과제가 된 책을 서점에서 처음 봤을 때의 느낌을 책 첫 장에 쓰는 것부터 숙제의 시작이었다. 그리고 소설을 다 읽은 후에는 등장인물과 주된 배경이 되는 곳을 그려야 했으며 소설 속 주인공에게 편지를 쓰거나 혹은 마지막 결말을 바꾸어 스스로 써보는 것이 과제의 핵심이었다. 나는 그 방학과제를 하며 여태껏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창작의 희열을 느꼈다. 그 숙제를 계기로 나는 소설에 완전히 매료되었고, 대여점을 끊고 서점을 전전했다. 첫 장에 그 책을 처음 만났을 때의 느낌을 적는 것은 내가 책에 건네는 첫인사가 되었다. 그리고 나는 번외로 책을 다 읽고 한 줄 후기로 작별인사를 적는 것도 덧붙였다. 나의 방은 떡집 앞 조그마한 책 대여점을 점점 닮아가고 있었다.


***

나경아, 눈치챘을지 모르겠지만 엄마는 너희와의 놀이 중 가장 좋아하는 게 함께 책을 읽는 거야. 책 그림을 그리거나 종이 접기나 클레이로 책 속 주인공을 만드는 독후활동도 물론 빼먹을 수 없는 즐거움이지. 엄마가 네 오빠에게 ‘연어’ 자연관찰 책을 읽다가 엉엉 울던 날 시우는 눈이 댕그래져서 내게 왜 우느냐고 물었지. 엄마 연어가 새끼 연어들이 태어나는 걸 보지 못하고 죽는 게 너무 안타까워서 운다는 말에 시우는 고개를 갸우뚱했지. 비록 새끼 연어들이 처음 세상에 나올 때 어미가 곁에 있어주지는 못하지만 육십 일간 알을 키워준 강의 일부가 되어 자신의 아기를 키워내는 연어의 일생이 엄마가 되어 다시 읽으니 아연 눈물이 나고 말았지. 그래서 연어에게 강은 모천(母川)인 것이고, 죽을 각오를 하고라도 삶의 전반을 지배하는 그 강의 냄새가 여정의 시작과 끝이 되어버린다는 걸 열네 살의 엄마가 깨닫기에는 너무나 숭고했던 것이지. 엄마가 그 책을 어른이 되어 다시 읽고 엄마의 버킷리스트에 캐나다 골드스트림 국립공원(Goldstream national park)에서 회귀연어를 본 후 숙소로 돌아오는 길에 이 노래를 무한 반복 청취하기를 적었어. 마찬가지로 네가 독서의 즐거움을 알아갈 때 엄마는 엄마의 손때 묻은 『연어』와 『새의 선물』 책을 선물해 주고 싶다. 네가 책의 마지막 장을 덮었을 때 이 노래를 들으며 책의 여운을 몇 번이고 되새김질하는 문학소녀가 되길 바라며.


Track 13.

강산에 [거꾸로 강을 거슬러 오르는 저 힘찬 연어들처럼]

작사·작곡 강산에


흐르는 강물을 거꾸로 거슬러 오르는 연어들의

도무지 알 수 없는 그들만의 신비한 이유처럼

그 언제서부터인가 걸어 걸어 걸어오는 이 길

앞으로 얼마나 더 많이 가야만 하는지

여러 갈래길 중 만약에 이 길이 내가 걸어가고 있는

돌아서 갈 수밖에 없는 꼬부라진 길 일지라도

딱딱 해지는 발바닥 걸어 걸어 걸어가다 보면 저 넓은

꽃밭에 누워서 난 쉴 수 있겠지

여러 갈래길 중 만약에 이 길이 내가 걸어가고 있는

막막한 어둠으로 별빛조차 없는 길 일지라도

포기할 순 없는 거야 걸어 걸어 걸어가다 보면 뜨겁게

날 위해 부서진 햇살을 보겠지

그래도 나에겐 너무나도 많은 축복이란 걸 알아

수없이 많은 걸어 가야할 내 앞길이 있지 않나

그래 다시 가다보면 걸어 걸어 걸어가다 보면

어느 날 그 모든 일들을 감사해 하겠지

보이지도 않는 끝 지친 어깨 떨구고 한숨짓는

그대 두려워 말아요 거꾸로 강을 거슬러 오르는

저 힘찬 연어들처럼 걸어가다 보면 걸어가다 보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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