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 친구를 가슴에 묻을 때
“엄마, 저 비행기에 주아가 타고 있을까? 주아는 한국에 잘 가고 있겠지?”
창문 옆에 달싹 붙어 밤하늘에 빨갛게 반짝거리는 비행기를 바라보며 시우가 말했다.
“그럼, 잘 가고 있지. 시우가 주아랑 정이 깊게 들은 모양이네. 방학 지나면 돌아올 거야. 영영 가는 거 아니니까 걱정 마.”
나는 뒤에서 아들을 꼭 안고 함께 밤하늘을 바라보며 말했다.
“떴다, 떴다, 비행기. 날아라 날아라 우리 비행기!”
철부지 딸은 옆에서 되똥되똥 춤을 추며 노래를 부른다.
“엄마, 내일 주아랑 영상 통화할 수 있어? 코로나 검사 잘하고 오라고 내가 용기 주게.”
나는 차마 거절하지 못하고 아들의 마음을 쓰다듬었다.
서른다섯. 오래전 멈춰버린 친구 나이의 곱절을 넘어섰다. 학창 시절 삼 년 남짓의 시간을 오누이처럼 지냈다. 시험기간에는 맹렬한 라이벌이 되어 앞자리에서 싸웠고, 오래달리기를 할 때는 일등인 친구가 꼴찌인 나를 위해 마지막 한 바퀴를 옆에서 다시 한번 뛰어 주었다. 한일 월드컵이 있던 그해에는 붉은 악마로 분하여 광화문으로 함께 향했고, 그러지 못하는 날에는 우리 집 거실에서 피자를 시켜 먹으며 열나게 응원했다. 둘 다 원하는 고등학교가 아닌 가장 끝자리에 적은 낯선 고등학교명 옆에 이름이 적힌 날은 함께 밤늦도록 공원에서 엉엉 울었다. 고등학생이 되어서는 낯선 교복을 입고 번갈아 가며 서로의 학교 정문에서 만나 하교하곤 했다. 서로의 부모님께도 익숙해진 이름이었고, 서로의 옷을 빌려 입을 정도로 열일곱의 우리는 서슴없는 친구였다. 김민종, ‘우정한다’는 다소 어색한 표현을 가장 어울리는 사람으로 만들어 준 사람.
친구는 십팔 년 전 8월 18일, 바다에서 하늘로 긴 여행을 떠났다. 한 줌의 재가 된 그는 어린 시절 자신이 살던 집이 내려다보이는 산으로 돌아와 깊이 잠들었다. 나는 해마다 팔월이면 그 산을 찾았다. 대개 친구의 아버지와 함께였다. 수험생이 되어 수시 면접을 보러 가기 전날에는 혼자 산에 올라 친구가 잠든 자그마한 돌무덤 앞에 앉아 주저리주저리 인터뷰 연습도 하고 울기도 하다가 손을 탁탁 털고 잘하고 오겠노라고 씩씩하게 내려왔었다. 그리고 성인이 된 나는 서서히 발길을 끊었다.
그렇지만 친구의 아버지와는 매해 빠짐없이 명절과 친구의 생일과 기일에 긴긴 전화를 이어나갔다. 축구를 잘했던 그는 자신의 아버지를 닮았다. 택시운전사인 그의 아버지는 시간이 날 때면 아들과 축구했던 곳에서 그리움을 삭히곤 하셨다. 친구가 떠난 지 십 년이 되던 해 겨울에는 동네 어귀에서 뜨끈한 칼국수를 먹으며 친구의 아버지께 청첩장을 드렸다. 그는 아무 말 없이 눈물을 닦으셨다. 그는 함께 추억하던 가족 아닌 유일한 사람이 나였기에 미국으로 당신의 딸이 시집갈 때보다 더 슬프다고 하셨다. 너무나 아파서 함께는 추억조차 할 수 없는 존재가 유가족이란 걸 어린 나는 차마 몰랐었다.
친구의 아버지를 마지막으로 본 날은 나의 결혼식장에서였다. 빨갛게 충혈된 눈으로 아버지는 축하한다고, 가서 잘 살라고 내 손을 꼭 잡아주셨다. 그리고 이듬해 8월 18일 나는 아들을 낳았다. 시우를 낳은 날 오후, 혼자 남겨진 산부인과 병실에서 결혼 후 처음으로 친구의 아버지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래, 그러마. 고맙구나, 정말 고마워요.”
앞으로 오늘을 다른 의미로 기억하자는 내 말에 그는 물기 어린 목소리로 답했다. 나는 비로소 그날에서야 민종의 이름을 달력에서 지우고, 가슴에 잘 묻어 주었다.
***
나경아, 우리는 이곳에 살면서 필연적으로 적지 않은 인연과 작별의 순간을 맞이해야 할 거야. ‘귀임’이라는 낯선 단어가 엄마는 서른이 넘어 삶에 들어왔는데 너희는 불과 다섯 살에 그 단어가 헤어짐의 또 다른 말이라고 받아들이게 되었지. 헤어짐은 아무리 많이 겪어도 참 쉽지 않은 일인 것 같아. 소중한 친구가 하늘에 별이 되던 그 여름 엄마는 무척이나 힘들었단다. 나는 처음 겪는 커다란 시련에 깊은 동굴에 들어가 오랜 시간 웅크리고 있었지. 그때 키다리 할머니는 단 한 번도 엄마가 동굴 밖으로 빨리 나오길 채근하지 않고, 오히려 동굴에 들어와 나와 함께 아픈 시간을 보내주었지. 아직도 기억 나. 이사한 지 얼마 되지 않아 낯선 내 방에 엄마와 내가 나란히 누워 이 노래를 들으며 하염없이 울던 여름밤을 말이야. 울다가도 엄마는 밥을 지었고, 따뜻한 밥을 쟁반에 받쳐 들고 와 나와 마주 앉아 숟가락을 들었지. 내 결혼식에 오신 민종이 아버지를 본 나와 엄마는 마음으로 펑펑 울고 말았지.
나도 네가 소중한 이를 가슴에 묻을 때 네가 되어 함께 울고, 함께 극복하고 싶구나. 가슴에 묻는다는 건 결코 죽음만을 의미하는 게 아냐, 나경아. 우리네 인생에는 크고 작은 이별의 순간이 있고, 이별 그 후를 정의해야 하는 시기가 올 거야. 비록 몸이 지척에 있지 않아도 마음이 서로 닿아있다면 그걸로 된 거야. 언제고 생각날 때 선뜻 연락할 수 있다면 언제고 너는 그이와 다시 웃으며 만날 수 있어. 그러나 눈에서 멀어지며 마음에서도 멀어졌다면 그 인연은 죽은 것과 다름없어. 그러한 인연은 네가 홀로 마음을 쏟지 말고 잘 묻어줘야 하는 거야. 네 가슴에는 멈춰버린 이를 묻어 줘야 하는 공간을 만들어둬야 할 거야. 설령 네 마음이 멈추지 않았다 하여도 말이지.
Track 16.
엠씨더맥스(M.C the MAX) [마지막 내 숨소리]
작사·작곡 김한철
그대는 듣고 있나요 마지막 내 거친 숨소리를
잠시 후 그 소리가 멈춰도 절대 후회하지 않아
이렇게 눈을 감으면 내게는 그저 그만이지만
그대는 이제 어떡하나요 이제 어떡할 건가요
우리의 지난 기억들과 함께 했던 시간 모두다 사라져가요
그대여 나 지금 이 순간 할 말이 있어요 사랑한다고
그대는 듣고 있나요 마지막 내 숨소리를
그대는 모르고 있겠죠 오늘 밤 나의 사고 소식을
영원히 모르는 게 낫겠죠 웃는 모습 그대로요
우리의 지난 기억들과 함께 했던 시간 모두다 사라져가요
그대여 나 지금 이 순간 할 말이 있어요 사랑한다고
그대는 듣고 있나요 마지막 내 거친 숨소리를
잠시 후 그 소리가 멈춰도 절대 후회하지 않아
절대 후회하지 않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