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rack 50. 양희은 [엄마가 딸에게]

50. 빛바랜 가족사진 속 부모님 얼굴이 너무 젊다고 느껴질 때

by 밍구


“엄마, 이거 나경이야? 나경이 아기 때야?”
나경은 피아노 위에 놓여진 가족사진 속 자신을 가리키며 묻는다.
“응, 나경이 첫돌 때 찍은 가족사진이야. 너가 봐도 귀엽지? 벌써 이렇게 컸어, 우리 딸.”
나는 가족사진 속 아기였던 딸에서 토끼처럼 껑충 커버린 딸에게로 시선을 돌리며 말한다.
“응, 나는 이제 온니야, 온니. 이거는 아가고, 아가.”
자신을 ‘온니’라고 힘있게 말하는 다섯 살 딸아이를 보면 까무룩 셋째 생각이 날 정도로 귀여워 죽겠다.


“오나똥, 여기서 뭐가 마음에 들어? 하나 잡아 봐.”
한복을 곱게 차려입은 우리 네 식구는 나경의 돌잡이가 무엇이 될지 무척 궁금하였다. 시우는 돌잡이를 해야 하는데 낮잠이 몰려왔더랬다. 그래서 꾸벅꾸벅 조는 아들을 쿡쿡 찔러 겨우겨우 나의 조작에 의해 판사봉을 잡아 올렸다. 그리고 사람들의 박수갈채에 잠이 벌컥 깬 시우의 어안이 벙벙한 표정이 사진으로 남겨졌다. 그러나 나경은 제 오빠와 달랐다.
“어머, 두 개를 잡았네요? 그래도 어떤 거를 먼저 잡았는지 어머니 보셨어요?”
노련한 사진기사는 붓과 활을 양손에 쥔 딸을 보며 내게 물었다.
“거의 동시에 잡았는데 하나만 잡아야 하나요? 나경아, 하나는 내려놓자. 하나 엄마 주세요.”
나는 양손에 힘을 꾹 쥔 딸아이를 구슬렸고, 아이는 생각보다 쉽게 활을 내게 주었다. 왼손에 남겨진 단 하나가 결정되었다. 딸의 돌잡이는 붓이었다. 붓, 붓이라니!


나는 고집불통인 데다가 제 마음에 들지 않으면 뒤로 벌러덩 눕는 통에 잠시도 눈을 떼면 안 되는 극성맞은 아기였다. 그에 반해 친정 오빠는 인형처럼 순한 아기였다고 한다.
“엄마, 얘는 도대체 왜 이래? 종일 울어. 아우, 꼴 보기 싫어.”
얼굴이 새빨개지도록 빽빽 우는 나를 나의 젊은 엄마가 침대에 던지며 말했다.
“너, 내가 얘 다 크면 이를 거다. 그럼 못 쓰는 거야.”
외할머니는 침대에 던져진 나를 끌어안고 어르며 자신의 어린 딸을 나무랐다.

김장철이면 할머니께서 집에 오셔서 이틀을 주무시다 가셨고, 그런 날이면 아빠는 꼭 시장에 들러 회 한사바리를 떠오셨다. 그날 밤 우리는 다 함께 술잔을 기울였다. 할머니와 마지막으로 김장했던 십일월은 내가 오군과 결혼하여 러시아에 가서 살게 되기 두 달 전이었다.
“거 봐. 니가 그때 민아를 침대에 자꾸 던져서 니 딸이 멀리 가 사는 거야. 근데 네 사윗감이 러시아에 공부하러 갔을 때 맨날 밥해줬던 그 총각이 아니라고? 에구머니나.”
술을 거나하게 드신 외할머니는 내가 러시아에 가서 살게 되었단 얘기를 들으시고는 자주 저 말씀을 하셨다. 지금 생각하면 할머니 특유의 유머로 딸을 멀리 시집보내는 자신의 딸을 위로하였던 것 같다.


“도서관에 일인일저 프로젝트 포스트가 붙어 있었는데 재미있어 보이더라고. 그런 건 어떻게 신청하는 건지 알아봐 줄 수 있어? 멀리서 혼자 애들 키우느라 정신없을 텐데 이런 부탁해서 미안하네.”

하루는 엄마가 전화로 내게 책 쓰기 프로젝트에 대해 설레는 마음으로 운을 뗐다.
“진짜? 재미있겠다. 뭐가 미안해 딸한테. 내가 신청해줄게. 초고 쓰면 내가 첨삭도 해줄게. 나보다 엄마가 낫네.”
엄마의 꿈은 작가였다. 학창시절부터 글솜씨가 좋았던 엄마는 지금도 171cm인 나보다 3cm가 더 크다. 엄마는 모든 면에서 나의 전신(前身)이다. 외양도, 성향도, 심지어 꿈도. 다 자랐다고 생각한 나보다도 엄마는 지금도 모두 한 뼘씩 크고, 그건 종내 잡히지 않았다. 엄마는 일인일저 프로젝트를 하며 다섯 편의 글을 써서 문집에 자신의 이름을 올렸고, 육아로 정신없는 네게 짐이 되기 싫다며 원고를 잘 보여주지 않았다. 나는 시간이 좀 지난 후에야 한국에 들어갔을 때 엄마의 책상 옆 한 단짜리 책꽂이에서 그 책을 뒤늦게 발견했다. 그리고 나는 엄마의 일기장을 몰래 훔쳐보던 악취미가 발동하여 깊은 밤, 엄마의 글을 아주 오랜만에 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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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 그리고 엄마>

딸이 코스모스 졸업을 앞둔 어느 날 엄마와 함께 유럽으로 배낭여행을 떠나고 싶다는 제안을 해왔다. 교환학생으로 러시아에서 공부하는 동안 유럽으로 여행을 다녀온 딸은, 자기가 본 많은 것을 엄마인 나에게 꼭 보여주고 싶다며 설득하기 시작했다. 딸의 감언이설에 넋이 빠진 나는 비밀스럽게 모은 비자금을 탈탈 털었다.
딸이 교환학생으로 1년 동안 공부한 러시아는 비행기로 9시간이 걸렸으며, 그곳에서 갈아탄 비행기는 4시간 후에 스페인에 우리를 내려주었다. 여행을 떠나기 전 도서관에서 여행에 관한 책들을 빌려 왔을 때 제일 관심이 많았던 스페인은 볼거리도 먹을거리도 너무도 많았다. 프라다 미술관과 알람브라궁전의 야경, 벤티스역 앞 투우장에서 눈물을 꾹 참고 보았던 투우, 늦은 밤 동굴 속에서 보았던 플라밍고. 그리고 지금도 짓고 있는 가우디의 성가족성당 등.
그 중 ‘말라가’로 도시 이동을 하는 날이었다. 예약시간에 맞춰 서둘러 도착한 버스터미널은 한산했으며 전광판에는 아무런 글씨도 쓰여 있지 않았다. 딸이 창구에서 물어보니 파업으로 인하여 버스운행이 제한된다는 말을 들었다. 뒤늦게 12시에 말라가로 가는 버스가 딱 한 번 운행된다는 방송이 흘러나왔다. 딸은 그나마 다행이라며 간이음식점에서 햄버거와 주스를 사온 후 가방을 뒤져 마드리드에서 산 엽서를 내밀며 기다리는 동안 그리운 사람에게 안부나 보내자고 하는 것이었다. 나는 딸에게 엽서를 받자마자 엄마한테 써야지 생각했다.
첫머리에 그리운 엄마에게.
엄마에게 편지를 써본 것이 언제였던가. 아니 써 본 적은 있었던가. 그동안 가까운 곳에 산다는 이유로 엄마의 생신 때도 봉투만 불쑥 내밀었지 다정다감하게 예쁜 생일카드 한번 써 본 적도 없었구나. 여느 집 딸들처럼 살갑게 엄마를 끌어안아 본 적도 얼굴을 비벼 본적이 단 한 번도 없구나.
엄마.
나는 둘째 줄에 엄마라는 두 글자를 쓰고 말을 이을 수가 없었다. 큰 올케가 폐암으로 일찍 세상을 등진 후 어린 손주들을 돌보면서 집안일을 꾸려 오신 일흔일곱의 엄마가 너무도 애처롭고 가엾다는 생각에 스페인 버스터미널 하염없이 울고 말았다. 한참을 소리 없이 흐느끼고 있을 때 딸은 손수건을 건네며 등을 토닥여 주었다.
그래 나도 집으로 돌아가면 엄마한테 잘 해 드려야지. 그 일이 생긴 후 여행지에 가면 그곳의 풍광을 아름답게 찍은 엽서를 사서 제일 먼저 엄마에게 보냈다.


“엄마 아주 많이 보고 싶네요.”

“하늘 땅 바다만큼 사랑해 울 엄마.”
“엄마 건강하게 오래오래 내 곁에 있어야 해요.”
그때가 나에게 있어서 참 행복한 시간이었다. 여행의 즐거움도 컸지만, 엽서를 구입해 엄마에게 평소에 못했던 감정을 표현하며 소식을 전하고, 딸과는 하얗게 밤을 지새우며 얘기를 나누고, 코가 비뚤어지도록 술을 마시며 친구가 되어 보기도 하고 말이다.
50일간의 여행을 끝내고 제일 먼저 친정집에 갔더니 엄마 방 한쪽 벽면에는 내가 보낸 엽서들이 받은 순서대로 보기 좋게 걸려있었다, 엄마도 나와 같은 마음이셨던가 보다.
엄마는 평소와 다르게 나를 꼭 끌어안으시고는.
“너가 없으니 아주 힘들더라. 전화할 곳도 없고 얘기 들어 주는 사람도 없고, 앞으로 너무 긴 여행은 하지 마라, 복희야.“
엄마는 연세가 드시면서 아버지의 빈자리를 아들보다 딸인 나에게 많이 의지하셨다. 그때 좀 더 자주 엄마한테 갔더라면 좋았을 텐데. 올해로 엄마가 돌아가신지 만 삼 년이 되어 온다. 해가 갈수록 엄마에 대한 그리움은 더욱 짙어지고 있다. 그때마다 딸은 말한다.
할머니에게 엄마는 딸이지만, 나에게는 소중한 엄마란 사실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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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엄마, 저예요.
딸에게 마흔아홉 장의 엽서를 부치면서 저는 깨달았어요. 이 엽서는 비단 딸에게 띄우는 당부가 아니라 어린 날의 내게 쓰는 친근한 회상이기도 하며, 어린 저를 키우던 젊은 엄마에게 보내는 과거의 찬사이기도 하고, 엄마가 된 지금의 내게 쓰는 약속이며, 엄마를 잃고 할머니가 된 당신에게 건네는 위로였어요. 딸이기만 했던 제가 두 아이의 엄마가 되어 어린 시절의 저를 추억하니 제가 아니라 저를 바라보았을 엄마가 보이더군요. 그때의 나를 예쁘게 사진 찍어주던 어린 엄마는 얼마나 사랑스러웠을까 프레임 밖 당신이 그리워졌어요. 그리고 제가 이제는 딸의 세대가 아니라 엄마의 세대에 맞닿아 있다는 걸 어렴풋이 깨달았죠. 제 산후조리를 하면서 많이 힘들어했던 엄마의 푸념이 기억나요. 너도 삼십 년 후에 나경이가 애 낳아서 손주 만져 보면 내 맘 알 거라며. 또다시 훗날 딸이자 엄마를 지나 할머니까지 되어본다면 그때 저는 또 지금의 할머니가 된 당신을 이해할 수 있을 만큼 한 뼘 자랄 수 있겠죠.
인천 바다로 돌아간 할머니를 엄마와 함께 찾은 날, 제가 엄마에게 말했죠. 다음 생애는 제 엄마 말고 제 딸로 꼭 태어나라고. 그러면 내가 삼촌들에게 꺾인 엄마의 날개도 고쳐 달아주고, 머리도 예쁘게 땋아주고, 딸 바보 아빠의 품도 내어주고, 춥지 않은 집을 선물해주겠다고.
이 엽서들은 나의 딸인 나경에게 보내는 엽서이자 미래의 내 딸 복희, 당신에게 보내는 엽서였어요. 나의 엄마로 태어나줘서 고마워요, 사랑해요.



Track 50.
양희은 (feat. 악뮤) [엄마가 딸에게] 작사 양희은, 김창기, 악뮤 작곡 김창기

난 잠시 눈을 붙인 줄만 알았는데 벌써 늙어 있었고
넌 항상 어린아이일 줄만 알았는데 벌써 어른이 다 되었고
난 삶에 대해 아직도 잘 모르기에 너에게 해줄 말이 없지만
네가 좀 더 행복해지기를 원하는 마음에 내 가슴 속을 뒤져 할 말을 찾지

공부해라 아냐 그건 너무 교과서야
성실해라 나도 그러지 못했잖아
사랑해라 아냐 그건 너무 어려워
너의 삶을 살아라!

난 한참 세상 살았는 줄만 알았는데 아직 열여덟이고
난 항상 예쁜 딸로 머물고 싶었지만 이미 미운털이 박혔고
난 삶에 대해 아직도 잘 모르기에 알고픈 일들 정말 많지만
엄만 또 늘 같은 말만 되풀이하며 내 마음의 문을 더 굳게 닫지

공부해라 그게 중요한 건 나도 알아
성실해라 나도 애쓰고 있잖아요
사랑해라 더는 상처받고 싶지 않아
나의 삶을 살게 해줘!

매번 크고 작은 잘못으로 당신 마음에 망치를 대죠
그래도 구멍 난 맘과 손으로 내 옷에 얽힌 실뭉치를 꿰죠
다 들어주며 괜찮다고 해서 내 마음이 놓여지지 않았는 걸 아실까요
미울만 하면서도 안아주는 당신 품에 다음부턴 잘하겠다고
Dear mom

공부해라 아냐 그건 너무 교과서야
성실해라 나도 그러지 못했잖아
사랑해라 아냐 그건 너무 어려워
너의 삶을 살아라!

내가 좀 더 좋은 엄마가 되지 못했던 걸 용서해줄 수 있겠니
넌 나보다는 좋은 엄마가 되겠다고 약속해주겠니

랄 라랄 라랄 라랄 라랄 라랄 라라 라랄 라라 라랄라
랄 라랄 라랄 라랄 라랄 라랄 라라 라랄 라라 라랄 라랄라

말하지 않아도 난 알고 있다고
엄만 그 누구보다 나를 사랑한단 걸
그래서 난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어
엄마처럼 좋은 엄마 되는 게 내 꿈이란 거
말하지 않아도 다 알고 있다고
엄만 그 누구보다 나를 사랑한단 걸
그래서 난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어
엄마를 행복하게 해주는 게
바로 내 꿈이란 거

랄 라랄 라랄 라랄 라랄 라랄 라라 라랄 라라 라랄라
랄 라랄 라랄 라랄 라랄 라랄 라라 라랄 라라 라랄 라랄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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