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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소설 - 시간

첫번째 이야기

by 작가지망생

월요일 아침 8시30분~9시30분


눈을 뜬다. 변한 건 없다. 매캐한 곰팡이 냄새와 축축한 땀냄새, 칠흑같은 어둠이 있을 뿐이다. 기지개를 펴려 하지만, 그것조차 용납되지 않는 작은 서랍장 같은 곳. 이곳은 필리핀 마닐라 중심가의 말만 그럴듯한 캡슐호텔이다. 한달에 3천페소. 한국동 7만5천원이면 살 수 있는 곳이다 .장기투숙하면 500페소 깍아줘서 난 지금 6개월 만오천페소로 머물고 있다.

나름 한국의 열악한 고시원에서 십년간 단련되었다고 생각했는데, 이곳은 정말 말도 안된다. 캡슐이 아니라 그냥 문이 달린 서랍장이다. 180cm가 약간 안되는 내가 다리를 뻗지 못한다. 아마 관도 이것보다는 크지 않을까 싶다. 휴대폰 시계를 보니 오전 8시30분이다. 이 좁고 축축한 구덩이 같은 관에서 그래도 얼추 4시간은 잔 것 같다. 온 몸이 땀으로 젖어 샤워라도 해 볼 요량으로 밖으로 나온다. 정상적인 사람이라면 절대 들어가고 싶지 않은 공동샤워장이 보인다. 이곳은 남성전용층이라 문도 없다. 이곳에 거주하는 사람들은 보통 필리핀 하층 노동자들이다. 보통 20대중후반인 사람들. 이들을 보면 나의 한국에서의 고시원 실장으로 보냈던 20대가 떠오른다. 여기를 숙소로 갖지 못해 지하철 육교 밑에서 돗자리로 잠을 자는 사람들도 많은것을 생각해보면 그래도 여기에 있는 사람들은 나름 미래란 것이 있는지도 모른다.

대충 물만 끼얹고 다시 밖으로 나온다. 후텁지근한 필리핀 마닐라의 6월이다. 난 거리로 나간다. 오늘은 어디까지 가볼까나. 내가 현재가진 유일한 고가품인 갤럭시 S9이 나타내는 로컬 시간은 9시3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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