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나나 Oct 20. 2022

엄마를 끊어야 해

핸드폰이 아니라...

큰딸은 외모가 예쁜 건 아니지만 참 웃음이 많고 매력적인 아이다.

고등학교 2학년이지만 사춘기도 없었고, 18년 동안 나에게 짜증을 부렸던 기억이 거의 없다.

그저 나를 행복하게 만들 목표를 가지고 태어난 아이 같았다.

그런 큰딸에게 미운 감정이 쑥~ 올라올 때가 있는데, 결국은 성적이었다.

상위권 성적을 유지하고 있는데도 욕심이 끝이 없어서 조금만 더...라는 생각이 미련처럼 남는다.

10시에 야자가 끝나고 집에 데리고 오면 10시가 조금 넘는데, 그동안 빈둥거리다가 12시부터 책상에 앉는다.

열심히 하는데도 결과가 좋지 않아서 둘이 얘기하다가, 기말고사 기간 한 달 동안 휴대폰 사용을 잠시 멈춰보기로 했다.

어른인 나도 책을 옆에 두고도 핸드폰을 손에 들면 두 시간은 순삭이니 애들한테 뭐라 할 것도 없다.

그렇게 우리 둘은 11시 이후 핸드폰을 휴지통 위에 올려두고 만지지 않기로 약속을 했다.


어제도 소파에 누워 책을 보고 있는데 큰딸이 가벼운 옷차림으로 나에게 걸어온다.

(남편 코 고는 소리가 심해서 주로 거실 소파에서 잔다.)

그 좁은 소파를 비집고 들어와 내 팔을 베고 눕는다.

그러면서 하는 말이...


엄마! 나는 핸드폰이 아니라 엄마를 끊어야 할 것 같아.


웃기면서도 서운하다.

엄마를 끊어낸다는 말 자체가 주는 막연한 서운함... 글로 설명이 어렵다.


그래, 공부와 성적만 아니면 이렇게 행복한 아이를

시험 망쳤다고 울고불고하기보다 기말에는 좀 더 빡씨게 준비해야겠다는 멘탈이 강한 아이를

친구들과도 잘 지내고, 선생님들도 예쁨 받는 아이를

음악을 틀어놓고 신나게 춤추고 노래하는 이 사랑스러운 아이를

1~2등급 못 받았다고 다그치는 게 맞나? 하는 죄책감이 계속해서 올라온다.


시험기간 내내 낮잠을 챙겨서 자고,

학종 세특 챙긴다고 이것저것 많은 시간을 보내는 게 마음에 들지 않고,

시험 끝났다고 보름을 놀아버리는 담대함이 불편했다.


혼자 가만히 생각해봤다.

결론은 성적이었다.

낮잠을 자고 마음에 안 드는 행동이 계속되었어도

만약 흡족한 성적이 나왔다면 전혀 미운 생각이 안 들었을 거라는 결론에 도달하니 괜스레 미안해졌다.

나보다 더 잘하고 있는 아이를 그저 내 욕심에 살짝살짝 미워하고 있었다는 걸 자각하고는

큰딸에게 말했다.

솔직한 엄마 마음이 이랬었다고.

못난 마음인걸 알면서도 잘 바뀌지 않는다고.

그동안 부지불식간에 너에게 그런 마음이 비쳤을 수 있으니 그랬다면 미안하다고.

쏘쿨~ 한 큰딸은 자기였어도 그랬을 것 같다고 나를 이해한다고 해줬다.


나를 닮은 나만한 덩치의 큰딸을 끌어안고 등을 쓸며 생각했다.

이 아이가 나보다 더 행복하게 잘 살 거다.

그러니 옆에서 기죽이지 말고 응원을 해주자.







작가의 이전글 딸들의 웃긴 대화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