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임으로 어렵게 얻은 큰딸이 벌써 고3이 되었네요.
유난스러울 정도로 부지런하지 못한 엄마와, 딱 그만큼 낙천적인 딸의 케미가 상당히 좋았어요.
아직도 밤마다 팔베개하고 쫑알대다가 들어가서 자고,
엄마를 웃게 하는 게 일생 최대의 목표인 것처럼 저를 웃게 하는 예쁘고 대견한 딸입니다.
But, 그러나...
그렇게도 예쁜 딸인데 고3 입시라는 예민한 상황은 피해 갈 수가 없네요.
아이의 성적이 원하는 대학을 가기에는 살짝 모자랍니다.
2학년 2학기때 4 단위 수학과 영어를 문열고 3등급 받아오더니 내신이 확 떨어졌습니다.
어제는 학교에서 수시 상담을 받고 왔다고 해요.
학생부를 보면 아이가 여고에서 얼마나 열심히 준비했는지 여러 가지 말들로 나열되어 있습니다.
그렇지만, 열심히 한 것과 잘한 것은 또 다른 문제죠.
또 일반고에서 받아온 학생부는 좋은 말들의 나열뿐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생각지도 않았던 대학을 소신으로 하나 써야 한다고 추천을 받아왔더라고요.
많은 생각이 들더군요.
저는 그 대학은 쓰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의견을 냈습니다.
수능을 치러 정시로도 갈 수 있는 대학라인이거든요.
물론 수능성적이 어떻게 나올지 모르니까 안정적으로 하나는 쓰자.. 하는 마음은 충분히 알지만,
그렇게 가서 반수를 염두에 둘 생각이라면 쓰지 않는 것이 좋겠다는 게 저의 생각이라고 얘기했습니다.
물론, 쓰고 안 쓰고는 아이가 알아서 할 일이죠.
화도 나고, 이런저런 고민으로 잠을 잘 못 잤습니다.
(조금만 더 열심히 하지 그랬냐는 원망의 말이 나오려는 것을 꾹 참았습니다.)
오늘 아침 일찍 여고 친구에게 일상적인 안부전화가 왔습니다.
안부를 묻는데 저의 목소리가 안 좋은 것을 눈치챈 친구가 물어보기에, 이런저런 상황을 모두 이야기했습니다.
이 친구는 출산을 일찍 해서 큰아들이 벌써 군대 다녀오고 올 8월 조기졸업을 했더라고요.
선배맘으로서 조언을 해주더군요.
은영이는 너보다 훨씬 더 그릇이 큰 아이다.
니 방식대로 아이를 키운다면, 잘 커봐야 니 그릇정도 아니겠니?
그저 믿고 기다려줘. 어느 자리에서든 행복하게 살 아이라고 생각해.
그리고 무엇보다 니가 그렇게 키운 니 딸이잖아.
제 불안의 원인은 아이의 미래가 아니라 저의 욕심이더라고요.
꼭 좋은 대학을 가야 행복해할 아이가 아님은 저도 알아요.
어느 대학을 가도 그 안에서 감사와 만족을 찾을 것이라는 것도 알고요.
나이가 먹어가면서 쓸데없는 욕심이 많이 없어진 줄 알았는데,
자식의 일에서는 아직 욕심이 꽉~ 차 있음을 자각하게 됩니다.
친구의 마지막 말에 울컥하더라고요.
남들도 믿어주는 내 딸을 제가 믿지 못하고 있구나.
큰 딸이 주변 사람들에게 자주 듣는 말 중에 하나는
"나는 은영이가 나중에 무슨 일을 하고 살지, 미래가 너무 궁금해."
꼭 유명하거나 훌륭한 사람이 되기를 바라지 않습니다.
작은 일에도 감사와 행복을 아는, 많이 웃으며 사는 사람으로 성장하기를 바라왔고요.
원하는 대학에 못 간다고 인생 큰일 나는 거 아닌데 제가 너무 불안에 떨며 종종거리고 있더라고요.
입시를 치르면서 한 뼘 성장하는 딸과 제가 될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