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편안한 제이드 Jul 19. 2022

공공기관에서의 삶이란 감사할(?) 일 투성이

사시사철 감사(監査)를 받으면서 일해본 자의 넋두리


공공기관의 일은 언젠가의 감사(査)를 각오해야 하는 것


  공공기관에서 하는 일은 언젠가 어딘가의 감사를 반드시 받는다. 그게 10년 가까이 공공기관에 다녀본 내가 내린 결론이다. 피할 수 있는 구석은 없다. 한두 번이 아니고 때마다 범위도 다르기 때문이다. TV에서 국회의원이 호통치는 모습으로 사람들이 기억하는 국정감사부터 감사원에서 나오는 감사, 상급기관이나 주무부처가 있다면 그쪽에서 나오는 감사 등등... 이 모든 감사들은 매년/또는 몇 년에 한 번씩 돌아가며 이어진다. 물론 여기에 내부 감사가 추가된다. 내부 감사는 보통 분야를 돌아가며 이루어지는 감사(회계/사업/경영 등)와 일상감사가 있기 때문에, 이 또한 연간 상시로 이루어진다고 보면 된다. 


  이 모든 감사에서 요구하는 자료는 현재의 자료가 아니다. 보통 '최근 5년간 데이터 전부' 또는 '~사업 관련 자료 일체'라는 이름의 요구자료가 떨어진다. 그러면 인수인계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는 대부분의 공공기관은 전임자, 전전임자의 자료까지 뒤적여가며 예전 자료들을 긁어모아 제출해야 한다(야근필수). 이런 작업이 매번 반복되니, 공공기관에서의 삶이란 사실상 늘 감사(監査) 받는 삶이라 해도 무리는 없을 것이다.



'일을 많이 할수록 감사에 많이 걸린다'


  회사에 다니다 보면, 일을 많이 하는 사람이 생기고 상대적으로 일을 안 하는 사람이 생긴다. 비단 공공기관에서만 벌어지는 상황은 아닐 것이다. 다만 공공기관에서는 일을 안 하고 실적을 못 내도 거의 절대 잘리지 않는 문화와 수직적 조직 분위기가 더해져 그 현상이 보다 심하다고는 할 수 있겠다. 극단적인 경우 A라는 사업을 a차장과 b사원이 같이 하면, 대부분의 자잘한 행정처리, 지출, 때로는 기본계획까지(...) b사원이 처리하는 경우도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감사원이 A사업이 제대로 이루어지는지 감사를 진행하고 지적하면 누가 지적을 받을까? 당연히 품의자인 b사원과 그 품의서에 서명한 책임자들이다. 일을 안 한 a차장은 일을 안 해서 어느 품의도 하지 않았고 따라서 감사받을 건이 없어 책임을 면한다. a차장의 일까지 대신 꾸역꾸역 해낸 b사원은 일처리상 자잘한 실수(비위행위 같은 것은 아니고 행정처리상 일어날 수 있는 실수들)에 대해 대여섯 가지 주의 처분을 받는다. 


  위 사례를 보기만 해도 공감이 가고 화가 나는 사람이 있을 것이다. 사실 오랜 시간 동안 내가 b사원에 가까웠다. 야근하면서 일은 일대로 많이 했는데, 그만큼 내가 사인한 서류도 많았기에 작은 실수들에 대한 감사 처분도 많이 받아 버린 것이다. 정말 너무 억울해서 친한 선배를 붙잡고 하소연하니, 그 선배가 이런 말을 했다. 'ㅇㅇ아 괜찮아. 그런 건으로 감사받고 주의받았다고 아무도 네가 잘못했다고 생각 안 해. 다들 네가 일을 많이 했구나, 그렇게 생각해.' 당시 잘못한 사원으로 낙인찍힐까 두려웠던 나는 어쨌든 그 선배님의 말을 듣고 조금은 안심했다. 내가 중요한 일을, 그만큼 많이 한 건 사실이니까. 그 이후로 지금까지도 나는 후배가 감사 지적을 받고 우울해하고 있으면 똑같은 위로를 건넨다. '괜찮아요. ㅇㅇ씨가 일을 많이 하고 중요한 일을 하니까 감사 지적도 받는 거예요. 다들 그렇게 생각해요.'



결국은 조심히 열심히 하는 수밖에


  물론 그렇다고 감사 지적을 받으면 '아 내가 정말 열심히 많이 일했구나!'라고 뿌듯해하는 것은 절대 아니다. 나쁜 의도로 죄를 저지른 것이 아니라는 전제 하에(대부분의 공공기관 직원들이 감사 지적받는 경우는 업데이트된 법령을 몰라 적용을 못해서, 날짜를 착각해서, 다른 기준을 잘못 적용해서... 와 같은 것들이다), 자잘한 건에 대해 감사 지적을 받고 확인서를 쓰고 있노라면 억울해서 눈물이 절로 나고 밤에 잠이 안 온다. 1부터 100까지의 업무 중 99개는 다 잘 처리해도 그에 대한 칭찬은 없으면서 1개 잘못하면 무지무지 혼나는 학생이 된 기분이랄까. 


  그러니 한 번 혹독한 감사를 받고 나면, 나는 또 그만큼 방어적으로 변한다. 새로운 일을 시작할 때도 늘 이게 감사에 걸리는 일은 아닐까 두 번 세 번 확인하고 시작한다. 공공기관에서 일한 세월이 길어질수록 감사받는 경험도 쌓여만 가니, 담대한 일처리를 하긴 글렀다는 생각을 자주 한다. 부디 공공기관 직원과 일할 때 그 사람이 비(非) 공공기관인이 보기에 지나치게 조심스럽다 싶어도 조금은 이해해주길 바란다. 그 사람은 이후로 최소 5년간은 그 일에 대한 감사 자료를 수십 번 제출하고 감사/검사받아야 할 것이기 때문이다. 늘 조심히, 그러나 열심히 일할 수밖에 없는 것이 공공기관에 다니는 사람의 숙명일 것이다.



이전 05화 공공기관에서 커리어가 뭐죠? 먹는 건가요?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