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보고 있어요'라는 댓글을 달기 위해서는 용기가 필요해
창작 콘텐츠 세계에 있어 나는 극히 소심한 '소비러(창작은 하지 않고 소비만 열심히 하는 사람)'였다. 어린 시절부터 팬픽이나 그림 등 2차 장작물을 한껏 즐겼지만 감상 댓글을 달아본 적은 거의 없었다. 그 이유는 매우 간단하고도 복잡했다. '부끄러워서'였다. 작가님이 나 따위를 인지하는 게 왠지 쪽팔렸고, 혹시나 내가 쓴 댓글에서 거슬리는 부분이 있으면 어떻게 하나 걱정이 되었다. 이런 엄청난 작가님의 글/그림에 '잘 보았습니다. 정말 멋지네요^^' 따위의 별 의미 없는 댓글을 다는 것은 엄청난 결례이지 않을까 싶었다. 글/그림에 걸맞은 길고도 유려한 다른 감상 댓글들을 보면서, 나는 늘 조용히 쓰던 감상 댓글창에서 백스페이스를 눌렀다.
내가 내 콘텐츠를 만들어내기 시작하면서, 이런 생각에 큰 변화가 오게 되었다. 막상 내가 내 글을 써서 모두가 볼 수 있는 플랫폼에 올리기 시작하니, 돌아오는 피드백 하나하나가 그렇게 좋고 감사할 수가 없었다. 다른 앱은 몰라도 브런치의 앱 알림은 절대 비활성화되지 않도록 유의했다. 라이킷이 눌릴 때마다, 댓글이 달릴 때마다 울리는 띠롱띠롱 알림 소리가 너무나 반가웠다. 설사 내가 글을 쓴 의도와 다른 방향의 감상일지라도, 그저 내 글을 읽어주고 감상을 달아주는 것 자체가 감동적이었다.
이 과정을 거치면서 피드백에 자체에 대한 내 생각도 조금씩 바뀌기 시작했다. '그래, 내 아무 말 댓글도 좋은 의도로 쓰는 거라면 결과적으론 좋은 거 아닐까? 나쁜 말도 아니고 좋은 말이라면 좀 더 적극적으로 표출해도 되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이 생각을 시험해 볼 좋은 기회가 생겼다. 많은 일러스트레이터들이 부스를 내는 한 페어에 내가 '관람객'으로 가게 된 것이었다. 원래의 나였다면 조용히 방문, 조용히 관람, 조용히 구매, 조용히 돌아옴으로 끝났을 이벤트였다. 하지만 이번만큼은 왠지, 좀 더 오지랖을 부려 보고 싶었다.
평소 인스타그램을 꾸준히 팔로우하며 작품을 감상하고 있던 작가님의 부스를 찾았다. 한 여자분이 부스를 지키고 있었다. 마음에 드는 문구류를 몇 개 사고 카드를 건네면서 매우 큰 용기를 내어! '저 원래도 인스타그램 팔로우하면서 보고 있었어요!'라고 외쳤다(별 거 아닌 거 같지만 극내성적 인간인 나로서는 매우 큰 용기를 낸 것이었음). 그 말을 들으신 여자분은 환하게 웃으시며 '앗 제가 작가님은 아니고 잠깐 부스를 대신 봐드리고 있는 거여서요! 그래도 작가님한테 말씀 꼭 전해드릴게요!'라고 대답하셨다. 작가님에게 응원의 말을 해드리는 건 실패했지만 어쨌든 내 단순한 인사에 대해 긍정적 피드백을 받았다!
다음으로는 이번 페어에서 처음 보는 어떤 작가님의 부스를 들어갔다. 부스스한 파마머리가 특징인 귀여운 캐릭터의 스티커나 엽서를 판매하고 있는 부스였는데, 딱 봐도 이 분 스스로가 모델이구나! 싶게 똑같은 부스스한 파마머리의 작가님이 부스를 지키고 있었다. 그 모습이 너무 귀여웠다. 스티커 두 개를 사면서 없던 용기까지 끌어모아 작가님한테 이렇게 말했다. '캐릭터가 너무 귀여워요!' 그랬더니 계산해 주시던 작가님이 정말 기쁘다는 듯이 웃으시며 감사하다고 말씀하셨다. 그 모습이 참 보기 좋았다.
쓰고 나니 참 별 볼일 없는 경험인 것 같지만^^;; 창작물에 대해 긍정적인 피드백을 주고, 또 그 피드백에 대한 반응을 실제로 보는 것은 내게 꽤나 강렬한 경험이었다. 콘텐츠에 대한 좋은 말들은 작가에게 정말 좋은 영향을 준다는 것을 즉각적으로 확인할 수 있었던 것이다. 페어에서 경험한 뒤로 나는 확실히 변했다. 좋은 작품을 감상했을 경우에는 될 수 있으면 꼭 피드백을 해드리려고 노력한다. 브런치에서도 댓글을 남길까 말까 고민이 될 때는 댓글을 남겨보려고 한다(100에 95는 여전히 라이킷만 누르고 도망가지만ㅎㅎ). 적어도 이제 내 댓글이 허접해서 작가님이 비웃겠지 하는 과도한 부정적 사고는 때려치웠다. 긍정적인 댓글을 받았을 때 하루 종일 그 댓글을 생각하며 힘낼 정도로 좋아해 본 경험이 있으니까. 역시 이래서 사람은 뭐든 경험해봐야 하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