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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편안한 제이드 May 15. 2024

시를 읽어보기로 함

고등학교 문학시간이 아닌데도요



  고등학생 시절 수행평가를 위해 윤동주나 이육사의 시를 외우곤 했었다. 그게 내가 '시'라는 문학 장르에 가지고 있는 인식의 전부였다. 애초에 관심이 없었다는 뜻이다. 문학 시험에서 지문으로서의 역할 이외에 시가 내 인생에서 어떤 자리매김을 한 적은 없었다. 소설에 지대한 관심이 있던 것을 생각하면 참 이상한 일이었다. 그렇게 나는 스스로 작정해서는 단 한 줄도 시를 읽지 않는 어른으로 성장했다. 


  아마 이런 독특한 배경이 아니었다면 앞으로도 영영 시를 마주할 기회는 없었을지도 모르겠다. 그 배경이라 함은 다음과 같다. 내가 아주 오래전 학생 때부터 좋아해서 작업을 팔로우해 오던 웹툰 작가님이 있었다. 작가님의 그림도 좋아했지만 그보다는 글과 그림에서 풍겨 나오는 감성을 더 좋아했기에, 작가님이 만드는 것이라면 무엇이든 좋았다. 작가님이 만화책을 내면 만화책을 샀고, 에세이집을 내면 에세이집을 샀다. 몇 번인가 백화점 같은 곳에서 하는 일회성 강연에 가서 책에 사인을 받기까지 했을 정도로 작가님에 대한 내 애정은 한결같았다. 


  그런데 이게 웬일, 그 작가님이 어느 날 갑자기 자신이 시를 공부하고 있다고 하는 것이 아닌가? 시를? 어떻게 시를 공부할 수가 있지? 그 소식을 처음 들었을 때도 정말 신기하다고 생각했다. 시는 원래 타고나길 시인으로 태어난 사람들만 쓸 수 있는 그런 엄청난 것이 아니었던가? 당시의 나로서는 그런 바보 같은 생각밖에 하지 못했다. 작가님도 보통사람은 아니어서(ㅎㅎ), 얼마 시로 등단했다는 소식까지 알려졌다. 너무 신기하고 대단하다고 생각했지만, 그때까지도 나는 시에 관심이 없었다. 심지어 좋아하던 작가님이 시집을 냈을 때도, '다른 읽지만 시집은 좀...'이라는 생각으로 사지 않았다. 그만큼 시에 대한 마음의 장벽이 높았다는 뜻도 되겠다. 


  그러던 어느 날, 작가님이 유료 독서모임 플랫폼에서 매월 정기적으로 모여(4개월 동안) 시집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는 독서모임을 만들었다는 소식을 (작가님 인스타그램을 통해) 듣게 되었다. 순간 가슴이 쿵쾅쿵쾅 뛰었다. 내가 정말 정말 좋아해 왔던 작가님을 가까이에서 볼 수 있는 절호의 기회! 작가님과 대화도 나눠볼 수 있을지도! 정말 운이 좋다면 작가님과 친해질 수 있을지도!(망상 죄송) 갖가지 꿈에 부풀어 나는 시집이고 뭐고 생각할 겨를도 없이 그 모임을 덜컥 신청했다. 


사진: UnsplashAROMATEEC



  일단 신청하고 나니 그다음에야 독서모임의 주제가 마음에 걸렸다. 그렇다. '시'.. 무려 네 달 동안 네 권의 시집을 읽고 그에 대한 감상을 나누기까지 해야 했다. 시집에 감상이랄 게 뭐가 있지? 그냥 읽고 음 좋았다, 끝이 아닌가? 등등의 생각을 하며 어쨌든 첫 주제인 시집을 구매했다. 수업 등에 필요해서 강제로 산 것을 제외하고는 최초로 내 돈을 주고 시집을 산 것이었다(어쩌면 이마저도 반강제일지도..). 어쨌든 읽기 시작했는데, 신기할 정도로 진도가 안 나갔다. 소설과는 달리 시는 책에 여백이 많으니까 금방 후루룩 읽을 수 있겠지?라고 생각했는데 웬걸, 한 페이지를 읽는 데 다른 책들의 몇 배는 더 걸렸다. 생전 처음 듣는 단어들, 그리고 그 단어들의 희한한 조합, 그 조합들 사이사이의 의미심장한 여백... 겨우겨우 한 권을 다 읽고 난 뒤의 내 소감은 단순했다. '무슨 소리인지 하나도 모르겠다!'


  어쨌든 시집에 대한 내 감상을 준비해 가야 했기에, 책을 두 번 읽고 세 번 읽었다. 그러다 보니 그래도 유독 마음에 들어와 남는 표현이나 시가 생겨났다. 좋다고 생각한 부분에 표시를 해 두었다. 그 이상 뭔가를 할 수가 없었던 나는 공포에 절은 채로 첫 번째 독서모임에 나갔다. 다행히도 대부분의 참가자들도 시 초심자(?)여서, 나와 비슷하게 마음에 드는 표현 정도만 찾아온 정도였다. 세 시간이 넘는 시간 동안 서로 마음에 들었던 시를 나누고 의문이 들었던 표현에 대해서는 물어가며 뜻깊은 시간을 보냈다. 첫 독서모임이 끝나고 난 후, 확실히 시에 대한 공포가 줄어들었던 것 같다. 


  첫 번째 독서모임에서 시의 해석에는 정답이 없고, 마음에 드는 표현 하나 정도만 건져도 잘 읽은 거라는 깨달음을 얻은 나는 좀 더 겁 없이 두 번째 책에 덤벼들 수 있었다. 두 번째 시집을 볼 때는 나름 첫 번째 시집과 비교해 가며 '음 나는 첫 번째 시집이 좀 더 취향에 맞는군'이라는 생각을 할 정도로 좀 더 편한 독자의 자세가 되어 있었다. 두 번째 모임에 참석할 때는 한결 마음이 가벼웠다. 이제는 시에 대해 나도 두려움을 떨치고 내 감상을 내놓을 수 있을 것만 같았다.




  두 번의 시 독서모임을 거치면서 나는 이제야, 비로소 '시'라는 문학에 관심이 생겼다. 이제 인터넷서점에 들어갔을 때 메인 페이지에 시집이 올라와 있으면 예전처럼 무시하지 않고 한 번 눈여겨본다. 심지어 제목이 끌렸던 시집은 큰맘 먹고 구매까지 해 보았다(어쩌면 이 시집이 내가 자의로 산 최초의 시집일 수도ㅎ). 시작은 좋아하는 작가님을 실제로 만날 수 있다는 불순한 의도(?)였지만, 어찌 되었든 감상의 폭을 넓힐 수 있게 되어 기쁘다. 소설 작가들 중에는 평소 시간이 남을 때마다 소설보다는 시를 읽는다는 사람도 있다고 하니, 앞으로는 소설뿐 아니라 시도 이것저것 읽어보며 내 문학적 소양을 넓혀볼 계획이다. 



※ 왜 시 독서모임이 두 번에서 끝났는지는 이 연재 시리즈의 다른 글로 쓸 계획이다... 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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