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외로 쉽던데요?
혼자 영화 보기는 사실 대학생 때도 종종 했었다. 재미있어 보이는 영화가 있는데 같이 볼 사람이 없을 때면 학교나 학원 갔다가 남는 시간에 집 근처 영화관에서 혼자 영화를 보곤 했다. 그때는 강의도 혼자 듣고 놀 때도 혼자 놀던 시기라 혼자 영화 보는 것도 그렇게까지 이상하게 느끼지 못했던 것 같다. 졸업하고 취직하면서 오히려 혼자 뭔가를 하는 시간이 급격히 줄었다. 항상 회사 사람들과 함께하거나 가족이나 친구와 같이 했다. 같이 갈 사람이 없는 전시/행사는 안 가고 말았다. 그만큼 절박하게 가고 싶었던 무언가가 없었기도 했다.
하지만 올해부터는 갑자기, 그렇게 좋은 문화적 인풋을 날려버리는 게 아깝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영화든 전시든 뭐든, 혼자 보러 가 보기로 마음먹었다. 그런 마음을 먹었을 때, 전국을 들썩이게 한 영화가 하나 있었다. 바로 <파묘>였다. 내가 그렇게나 좋아하는 오컬트 장르에다 캐릭터 관계성이 좋다고 소문이 나고 있었다. 언론에서 점점 언급이 많아지고 있어서 안 보고 넘어가면 OTT에 들어와서 보기 전에 스포 당할 것 같기도 했다. 무서운 장면이 나올까 봐 쪼금 걱정되긴 했지만, 스포 당하지 않겠다는 일념으로 강남 CGV에 예매했다. 결론은? 너무 잘 보고 나왔다. 사이렌 오더 같은 시스템 처음 이용해서 팝콘이랑 에이드도 알차게 주문해 가지고 들어갔다. 징그러운(?) 장면이 나올 때는 좀 무서웠지만 영화관에 사람이 워낙 많아서 다른 사람들을 보며 견딜 수 있었다. 오히려 사람들과 같이 보니까 재미있는 장면에서는 같이 웃고, 무서운 장면에서는 같이 소리 지를 수 있어서 좋았다. 이게 영화관의 맛이구나 하고 정말 오랜만에 느꼈다.
두 번째로는 생애 처음으로 혼뮤(혼자 뮤지컬)를 감행해 보았다. 평소 좋아하던 배우가 뮤지컬을 한다는 이야기를 듣고 고민을 거듭하다 일단 질러!의 마인드로 예매했다. 전날까지도 혼자 뮤지컬 보는 걸 내가 감당할 수 있을까 엄청 고민하다가 결국 취소하지 못해(?) 보러 갔다. 결론은.. 이번엔 실패였다. 보러 간 뮤지컬은 소설 원작의 창작 뮤지컬이었는데, 기억에 남는 넘버가 없었고 내용도 좀 지루했다. 연기하는 배우를 가까이에서 볼 수 있었던 점을 좋았지만 딱 거기까지였다. 그 이상의 감동이나 재미는 없어서 약간 실망했다. 자리가 편하지 않아서 앉아있는 내내 좀 힘들었던 것도 있었다.
두 번의 '혼자 문화생활하기'를 거치면서 느낀 점은, 의외로 '혼자'는 별로 중요하지 않다는 것이었다. 혼자 봐서 재미가 있거나 없어지지는 않았다. 오히려 혼자 보니까 다른 감정 없이 오롯이 영화/뮤지컬에만 집중할 수 있었다. 재미있는 장면이나 배우의 명연기에 대해서 즉각적으로 소통할 수 있는 옆사람이 없는 점은 좀 아쉽긴 했다. 평소의 나였다면 뮤지컬 1막이 끝났을 때나 영화가 상영을 마쳤을 때 바로 같이 간 사람에게 '아까 그 장면 진짜 대박이지 않았어? ㅇㅇ가 연기 너무 잘하더라" 등등의 말들을 쏟아 냈겠지만, 혼자였기 때문에 그 모든 말들을 삼킬 수밖에 없었다. 그런 소감들은 잘 갈무리해 뒀다가 브런치나 다른 SNS에라도 풀어놔야겠다고 마음먹었다.
어쨌든 중요한 것은, 내가 혼자 영화를/뮤지컬을 볼 수 있는지 여부라는 것을 이번에 다시 한번 느꼈다. 재미있어 보이는 뮤지컬이나 영화가 있을 때, 같이 갈 사람이 없다는 이유만으로 건너뛰어야 했던 과거의 나는 없다. 오직 볼만할 것인지 아닌지만 판단하고, 보기로 마음먹으면 같이 갈 사람을 한 번 구해본 후 없으면 혼자 간다! 이것만으로도 내 문화적 경계가 훨씬 넓어진 것 같다. 다음 혼영/혼뮤는 뭐가 될까? 벌써 기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