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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모임에 가보기로 함

과연 운명의 그 사람을 만날 수 있을지


  올해 초의 나는 '운명의 그 사람'을 찾고 있었다. 그렇다고 내가 뭐 연봉 내 두 배에 집안일도 다 해주고 심리적 안정감까지 제공하는 남편(??) 같은 존재를 찾았던 것은 아니다(물론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은 함). 다만 내가 바랐던 것은 무슨 일이 없어도 심심할 때 연락할 수 있는, 친밀한 어떤 사람이었다. TV를 보다 웃긴 것을 봤을 때 공유할 사람. 회사에서 힘든 일이 있었을 때 퇴근하면서 '맥주 한 잔 콜?' 할 수 있는 사람. 그런 사람이 내 주위에는 없었다. 그리고 없는 만큼 절실히 필요했다. 


  혹자는 그런 관계가 필요한 거라면 연애나 결혼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나에게 필요한 것은 성애적 관계가 아니었다. 나는 연인이 아닌 친구가 필요했다. 그것도 아주 친밀하고 가깝고 막역한 친구가. 필요하다고 한 번 생각하기 시작하니 끓어오르는 열망을 참을 수가 없었다. 하지만 3n살의 내향인인 내게 새로운 친구를 사귈 수 있는 기회는 현실적으로 없었다. 그때 인스타를 통해 (귀신같은 알고리즘의 영향으로) '트레바리'나 '넷플연가'와 같은 커뮤니티 플랫폼이 내 눈에 들어왔고, 나는 무언가에 홀린 사람처럼 눈이 가는 모임에 미친 듯이 신청 버튼을 눌렀다. 


사진: Unsplash의 Hannah Busing



  커뮤니티 플랫폼 모임에 신청하기까지는 두 가지 장벽이 존재했다. 첫 번째는 그 서비스가 꽤나 비싸다는 것이었다. 일반인들끼리 모이는 것에도 몇십만 원 등록비가 필요했고, 유명인인 파트너가 있는 모임의 경우 그보다 십만 원 정도 추가금이 발생했다. 이 모든 것에 독서토론을 위한 책값도 포함되어 있지 않았다. 평소의 나였다면 '이 돈 주고 이런 건 안 하지' 했을 금액이었다. 두 번째는 그런 모임에 참석한다 한들 내향적/내성적인 내가 친구를 사귈 수 있을 리 없다는 자기 확신이었다. 사람과 친해지려면 여러 번의 심도 있는 대화를 나누어야 하는 내 성격상 그런 인위적(?)인 모임에서 친구를 사귈 수 있을 것 같지가 않았다. 하지만 이 모든 장벽들은 친구가 필요한데 이것 말고는 딱히 떠오르는 방법이 없다는 내 절박함 앞에 다 무너지고 말았다. 그렇게 나는 총 3개의 독서모임과 1개의 영화모임을 신청했다. 




  현재 기준으로 위의 4개 모임의 첫 모임에는 다 출석했고, 두 개 모임의 두 번째 모임에는 이러저러한 이유로 참석하지 못했다(않았다). 네 개의 모임에 참석해 본 소감은 다음과 같다. 먼저 생각보다 꽤나 진지한, 지적인 대화를 길게 나눌 수 있었다. 사실 회사원으로 살면서 평소에는 일 얘기 아니면 연예계 가십 정도나 회사 사람들과 주고받는 게 대화의 전부인 경우가 많은데, 독서/영화 모임에 나가보니 책/영화에서 비롯된 철학적 질문들, 인간적 고뇌들을 꺼내놓고 서로 공유할 수 있는 분위기여서 좋았다. 내가 몰랐던 지식을 얻게 되기도 했고, 생각해보지 못했던 삶에 대한 성찰도 얻을 수 있었다. 이 부분은 크게 만족스러웠다. 


  문제는, 예상치 못했던 철학적 성취와는 달리 내가 그토록 바랐던 '친구'를 얻는 것은 영 어려워 보였다는 것이다. 모임에 나가 보니 전체 인원이 12명~20명 정도로 내 예상보다 너무 많았다. 6명 정도의 소수 인원이었으면 마음을 좀 붙이고 나도 열심히 대화에 참여해 봤을 것 같기도 한데, 사람이 너무 많으니 애초에 나서서 말을 하기에 눈치가 보였다. 몇 마디 하다 보면 내가 너무 말을 많이 한 건가 지레 걱정하는 마음이 떠올라 말을 이어갈 수가 없었다. 또 혹여 20명 중에 몇 마디 나눠보고 내가 마음에 들어서 더 친해지고 싶은 사람이 있다 한들, 그 사람과 좀처럼 대화할 시간이 생기질 않았다(물론 이건 내 적극성의 문제이기도 하다). 그래서 크게 흥미가 느껴지지 않는 사람과만 한참 대화를 나누고(또는 그마저도 하지 못하고) 몇 시간을 보낸 뒤 집에 오는 경우가 많았다.


  친말한 인간관계 획득(?)을 바라고 평소의 집순이 성향까지 버려 가며 꾸역꾸역 나갔던 첫 모임들에서 (당연하게도) 어떤 관계도 이루지 못하자 나는 좀 시들해지고 말았다. 앞으로도 독서/영화 모임을 성실히 나갈지는 잘 모르겠다. 낸 돈은 환불도 안 되니 성실히 나가야 본전이라도 뽑을 수 있겠지만, 어쩐지 나는 당기는 모임에만 띄엄띄엄 나갈 것 같은 느낌이다. 그래도 후회는 없다. 이렇게 여러 개의 모임에 나가 봤기 때문에 독서/영화모임이 어떻게 진행되는지 파악할 수 있었고, 이런 모임을 통해서는 내가 친구를 사귀기 쉽지 않겠다는 것을 이해할 수 있었다. 아직도 친밀한 관계(친구)를 사귀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는 잘 모르겠다. 하지만 독서/영화모임을 미친 듯이 나가 본 이후의 나는 어쩐지 좀 개운하다. 이제는 모임에 나갈 대로 나가 봤으니 혼자만의 시간을 즐기게 될지도 모르겠다. 




*5/1은 노동절이니까 미리 써놓고 당일엔 업로드만 해야지! 마음먹었으나 업로드마저 잊어버리고 신나게 놀아버린 나...^^ 하루 늦게나마 올려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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