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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강의를 들어보기로 함

예상대로 재능은 없었지만요


  어렸을 때는 글쓰기를 좋아했고 글을 곧잘 썼다는 내용을 한 문단 이상 썼다가 싹 다 지웠다. 무슨 소용이란 말인가? 다 과거의 일이었다. 201n년 지금의 회사에 들어와 일을 시작한 후로, 나는 소설은커녕 에세이조차 제대로 쓰지 못했다. 모든 삶은 회사 위주로 돌아갔다. 수많은 한글 보고서, PPT 자료, 엑셀 파일... 그 정신없는 틈바구니에서 '내 글'을 쓸 여유 같은 것은 없었다. 아니, 스스로 그 여유를 없애 버렸다. 대학생 때까지 그렇게 좋아해서 쌓아놓고 읽었던 소설책도 펼쳐보지조차 않았다. 


  정신을 차려보니 나는 내가 그렇게 되고 싶어 하지 않았던, '평범한 회사원 1'의 모습이 되어 있었다. (첨언하자면 '평범한 회사원 1'로 사는 것이 잘못되었다고 말하는 것은 당연히 아닙니다. 문제는 내가 그렇게 살고 싶지 않았다는 데 있습니다) 어느 날 서점에 가서 소설 매대에 가 보니, 내 또래의, 아니 나보다 훨씬 어린 유명 작가들의 소설이 잔뜩 놓여 있었다. 가슴이 답답해졌다. 하지만 나는 이제 글을 쓰지도 못하고, 쓴 글이 있다 한들 그 누구에게도 보여줄 용기가 없어진 상태가 되어 있었다. 


  그랬기에 어느 날 무엇이든 일단 해보기로 마음먹었을 때, 충동적으로 제일 먼저 신청했던 것이 '소설 강의'였다. 그만큼 내가 제일 하고 싶어 했던 것이기도 했고, 제일 시작하기를 두려워했던 것이기도 했다. 평소 기웃대던 한겨레 문화센터 홈페이지에서 왠지 끌리는 소설 강의 입문반을 덜컥 신청했다. 개강이 한참 뒤라 그 사이에 마음이 바뀌면 취소해 버리면 되지 하는 안이한 마음으로 일단 신청한 것이기도 했다. 하지만 예상과 달리(?), 첫 강의가 시작되던 날 나는 회사에서 헐레벌떡 퇴근해 노트북을 꺼내놓고 단정한 차림으로 그 앞에 앉아 7시를 기다리고 있었다. 



사진: UnsplashGirl with red hat



  원격으로 진행되었던 내 인생 첫 소설 강의는 현직 소설가 선생님이 주 1회 여러 명의 학생과 함께 진행하는 수업이었다. 수업 시간에는 주로 소설을 쓸 때 필요한 기본 지식이나 이론에 대해 선생님의 설명을 들었다. 매 수업시간마다 짧은 글짓기 숙제가 있었고, 제출기한까지 숙제를 내면 선생님이 다음 수업 시간에 첨삭해서 돌려주셨다. 내가 쓴 글에 대해 누군가가 정성스럽게 읽고 고칠 점을 적어 돌려주는 경험이 너무 오랜만이라 매주 설렜다. 


  이 강의의 하이라이트(?)는 사실 뒷부분에 몰려있었다. 초반 강의에서 배운 이론을 적용하여 각자 단편소설을 한 편씩 완성해 제출하고, 그 소설을 합평하는 것이 마지막 3~4주 차에 예정되어 있었다. 소설 강의를 들으면 모여서 '합평'이라는 것을 한다는 얘기를 어렴풋이 듣기는 했었으나, 내가 그 당사자가 될 것이라고는 미처 생각지 못했었다. 하지만 선생님은 소설가가 되기 위해서는 내가 쓴 글을 다른 사람들에게 보여주고 평가를 들어보는 연습을 해야 한다고 하셨다. 


  결론부터 이야기하자면, 나는 이 수업에서 운이 좋게도 두 편의 단편소설을 내고 합평의 시간을 가졌다. 겁도 없이 제일 먼저 '합평' 관련 수업의 예시로 쓸 소설도 내겠다고 손을 들어서였다. 내 소설에 대한 합평을 진행하던 날, 수업 시간이 되기 전에 어찌나 긴장이 되는지 손이 덜덜 떨리고 속이 울렁거렸다. 나의 이 허접쓰레기 같은 글을 사람들이 보는 것이 첫 번째로 너무 부끄러웠고, 두 번째로는 소설에 대한 신랄한 평가를 들을 마음의 준비가 도무지 되지 않았었다. 


  하지만 내가 준비가 되었든 되지 않았든, 합평 시간은 시작되었다. 그리고 짜잔! 사실은 내가 굉장한 글을 써냈고 모두에게 극찬을 받았다...라는 결론이었다면 참 좋았겠지만, 현실은 당연하게도 현실적이었다. 내 글은 굉장히 어설픈 소설 습작에 불과했고, 선생님을 비롯한 많은 분들이 아직 구성이나 표현에 어색함이 있음을 지적했다. 그런데 정말 이상하게도, 그렇게 무서웠던 비판의 목소리를 들었지만 오히려 내 기분은 상쾌했다. 다른 사람들이 내 글을 공들여 읽어주고 내 글에 대해 한 마디씩 해주는 것이 너무 보람찼다. 내가 미처 예상치 못했던 내 반응이었다. 특히 '이 글은 이러이러한 이야기를 하고 싶어서 쓰신 것 같아요', '이 부분은 표현이 특히 마음에 들었어요' 등등 긍정적인 피드백을 들었을 때는 (수많은 부정적 피드백에도 불구하고) 하늘을 날아갈 듯 기뻤다. 내 글을 이해해 주는 사람이 있다는 것 자체가 감동적이었다.  




  소설 강의가 시작되기 전, 선생님이 '소설'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질문하셨을 때 나는 '최종 보스' 같은 것이라 대답했었다. 그만큼 소설은 나에게 너무나 소중하고 엄청난 것이었고, 그렇기 때문에 내가 함부로 도전할 수 없는 것이었으며, 그래서 끝내 완성하지 못한 어떤 것이었다. 그러나 충동적으로 신청했던 소설 강의를 몇 달 동안 매주 꾸준히 참석하면서 나는 결국 생애 첫 단편소설 초고를 완성했고, 합평까지 받는 데 성공했다. 어떻게 보면 평생 죽었다 깨어나도 물리치지 못할 것이라 생각했던 '최종 보스'를 클리어했다고 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최종 보스'를 물리친 그다음은 어떻게 되었을까? '보스를 물리쳤는데 알고 보니 그 괴물이 최종 보스가 아니었고, 더 큰 흑막이 뒤에 있었다'는 흔한 스토리와 같이ㅎ 첫 소설을 완성한 후에는 그 소설의 수정과 두 번째 소설 작성 등등... 수많은 다음 스테이지가 존재했다. 소설을 쓰면 인생이 되게 많이 달라질 것 같다고 생각했었지만, 실제로는 '평범한 회사원 1'에서 '소설을 쓰는 평범한 회사원 1'이 된 것에 지나지 않았다. 하지만 소설을 쓰기 시작하고 내 일상은 달라졌다. 비록 많이 늦었지만, 나는 이제 걸음마를 떼기 시작한 어린 아기의 마음으로 소설가의 길을 걸으려 노력하고 있다. 언젠가 '소설가'라는 직업명을 내 이름 옆에 붙여놓기 위해, 나는 계속 글을 쓸 것이다. 그게 '과거의 나'와 '지금의 나'의 다른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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