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회사에서 쓸모없는 존재 같다는 생각이 들 때

요즘 글을 쓰지 못하는 이유는 무력감 때문이야


제목만 써두고 글을 시작하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렸다. 내가 공공기관에 다니면서 그간 썼던 글들은 대부분 어느 정도 이미 해결된(?) 상태의 갈등상황에 대한 것들이었다. 언제나 여기에 글을 쓰는 것을 들킬 것에 대한 대비를 해야 했기에(ㅋ), 그리고 현재 상황에 대해서는 한걸음 떨어져 생각하는 게 불가능했기에 최근에 겪었던 일은 쓰지 않으려 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이 글을 써야만 하겠다. 최근의 나는 회사에서 내가 하는 업무가 쓸모없는 존재 취급받고 있다는 생각을 강하게 하고 있다.


공공기관에 다니면서 일의 의미와 쓸모를 찾는다는 것이 환상을 쫓는 것처럼 말도 안 되는 이야기인 것, 나도 안다. 하지만 어쩌다 보니 나는 지금 돌고 돌아 꽤나 애착을 가지게 된 업무를 맡고 있고, 작년까지는 애착을 가진 만큼 안 해도 되는 노력까지 더해 업무의 퀄리티를 높이려 노력했다. 아무도 시키지 않은 자료를 만들고, 아무도 시키지 않은 행사를 개최하고. 그건 업무에 애정이 있어서 가능한 일이었다.

그러나 피드백 없는 노력(a.k.a. 삽질)엔 끝이 있는 법이다. 내가 했던 모든 노력에 대해 칭찬이나 보완의 피드백은커녕, 무시와 무관심과 이걸 왜 하냐는 시선만 꾸준히 받은 결과 나는 완전히 지쳐 버렸다. 손 하나 까딱하기 싫어져 버렸다. 회사 생각만 해도 토할 것 같고 일요일 밤에는 내일이 오는 게 싫어 잠이 안 올 지경에 이르렀다.


sivani-bandaru-bczrpU9n8f4-unsplash.jpg

사진: UnsplashSivani Bandaru



재미있는 것은, 내가 힘든 것이 일이 많아서가 아니라는 점이었다. 지난 약 10년간의 공공기관 생활에서 내가 번아웃이 올 정도로 힘들었던 때는 대부분 일이 내가 감당할 수 없을 만큼 어렵거나/많을 때였다. 검토해야 할 자료가 많아서 일을 바리바리 싸들고 집에 가 새벽 3시까지 보다가 울었던 때라거나, 밤 12시까지 회사에 있다가 집에 가려고 택시를 불렀는데 없어서 안절부절못했던 때라거나.. 뭐 그 정도는 되어야 회사가 고통스럽고 두려웠었다. 그 정도가 아닌 이상 솔직히 거지같지만 다닐 만했다.

하지만 요즈음 회사 들어오고 처음으로, 일이 별로 없는데 너무 괴로웠다. 회사에서 내 업무가 아무런 가치 평가를 받지 못하는 점이 이렇게 나를 괴롭게 할 줄은 몰랐다. 이게 다 일과 나(사람)를 분리하지 못하는 내 성격 때문이겠지. 아무리 주변에서 충고해 주길 '네 업무와 너를 일치시키지 마라. 네 업무가 무시당한다고 네가 무시당하는 것은 아니다'라지만 나에겐 그 분리가 너무 어렵다. 다 사람이 하는 일인데 그 일을 무시하면 결국 그 일을 하는 사람도 무시하는 게 아닌가?


여하간 요즘 내가 글을 잘 쓰지 못하는 이유의 팔 할은 이 무력감 때문이다. 주어진 일이 있으니 하긴 해야 하는데, 그에 대해 어떤 피드백도 기대할 수 없고 내 모든 업무는 별 거 아닌 일 취급당한다는 것. 그게 나를 완전히 지쳐 나가떨어지게 한다. 혹자는 공공기관에 다니면서 일이 별로 없으면 그저 좋은 것 아니냐고 할 수도 있지만.. 경험해 보니 나는 그게 좋은 사람이 아니었다. 나는 적당히 일하고 적당히 쉬고 적당히 인정받고 적당히 피드백받고 싶다. 그렇게 사는 게 진짜 '일'하는 것 같다.





keyword
이전 03화아이디어 회의 = 걸릴 때까지 하는 러시안룰렛