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게 직원은 성장을 포기한다
인정하기 싫지만, 나는 기억력이 나쁜 편이다. 몇 년이 지나면 대부분의 사소한(?) 일들은 없었던 일처럼 잊어버린다. 오죽하면 고등학교 때 친구가 '내가 친구인 건 기억해 줘서 고마워'라고 농담할 정도로ㅎ 여하간 기억력이 좋지 않은 것에는 장단이 있는데, 단점은 뭐 다들 예상하다시피 기억하고 싶은 좋은 추억들을 잊어버려 버린다는 것이다. 반대로 장점은 불쾌했던 일도 시간이 지나면 대충 잊고 넘어갈 수 있다는 점이 되겠다.
하지만, 이렇게 기억력이 나쁜 나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잊지 못하는 불쾌한 기억들이 몇 가지 있기 마련이다. 몇 년 지났으면 이제 머릿속에서 지워버려도 될 법하건만, 강렬하게 내 존재를 뒤흔들었던 기분 나쁜 기억은 주기적으로 힌트가 주어질 때마다 되살아나 나를 괴롭힌다. 오늘은 그런 괴로운 기억 중 하나를 끄집어내서 써보려 한다.
벌써 5년도 더 전의 일이다. 찌들 만큼 찌들어 모든 일에 '시러시러'를 외치고 있는 지금의 나와 달리, 당시의 나는 반짝반짝 눈을 빛내며 일을 더 잘하려고 기를 쓰고 있었다. 내 보고서가 맘에 안 들면 누가 시키지도 않은 야근을 해가며 완성도를 높였던, 뭐 그런 시기. 당시 나는 공공기관의 순환근무에 따라 부서를 옮긴 지 얼마 안 된 상태였고, 그래서 누구보다 열심히 부서의 뛰어난 선배님들을 쫓으며 업무를 배우고 있었다. 팀장님도 그런 내 노력(?)을 알아주셨는지, 다음에 있을 회사의 꽤 큰 행사에서 우리 사업 관련 내용을 발표하는 역할을 나에게 맡기셨다. 그에 대한 내 감정은 부담 반, 설렘 반이었다. 발표 공포증이 있어서 많은 사람들 앞에 나가 무언가를 말하는 것은 너무 걱정되고 무서웠지만, 어쨌든 그 발표를 통해 내가 이 팀에서 한 단계 성장할 수 있을 것이란 믿음도 생겼더랬다.
문제의 그날, 나는 내 사무실이 있는 층이 아닌 다른 층에 있는 사무실에 찾아가 옆에 딸린 회의실에서 다른 부서 팀원들과 회의를 진행하고 있었다. 사무실과 회의실은 파티션으로만 구분되어 있을 뿐 위쪽은 뚫려 있는 구조여서, 사무실에서 말하는 소리가 회의실까지 다 들렸다. 보통은 회의에 집중해서 사무실의 소음은 잘 들리지 않지만.. 그날은 달랐다. 파티션 건너 사무실에서 내 이름이 들려왔기 때문이다.
"이번 행사 발표 말이야. ㅇㅇ팀에서 △△씨(나)가 하기로 했다고 하던데. 좀 불안하지 않아? 발표 경험도 없는데. 발표 많이 했던 ◆◆차장이 하는 게 낫지 않겠어? 그렇게 얘기해야겠어."
이번 행사의 주관 부서인 □□팀 팀장님의 목소리였다. 내가 파티션 건너 회의실에 있을 줄은 모르고 큰 소리로 팀원들에게 말한 것이었다. 그다음부터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기억이 희미하다. 그 발언을 한 팀장님은 끝내 내가 옆 회의실에 있었던 사실을 몰랐고, 실제로 우리 팀에 ◆◆차장이 발표해 달라고 요청했다. 우리 팀에서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에게 발표를 맡기려는 움직임이 있었으나, 결정적으로 여러모로 충격받고 자신감을 잃었던 내가 거절해서 결국 ◆◆차장님이 발표를 하고 행사가 마무리되었던 것으로 어렴풋이 기억한다.
그날의 내 결정(발표를 하지 않기로 결정한 것)에 대해 이후 몇 년 동안 생각날 때마다 괴로움이 있었다. 오기로라도 내가 꼭 하고 싶다고 했어야 했을까? 아마 그랬다면 주관팀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우리 팀 팀장님은 내가 발표할 수 있도록 밀어줬을 것이다(어쨌든 발표자를 최종적으로 정하는 건 우리 팀 권한이었으니까). 그러나 나는 행사 주관팀의 못 미더운 시선에 대항해 멋지게 발표를 해내서 코를 납작하게 해 주겠다는(?) 당찬 욕망을 가진 사람이 아니었다. 나를 신뢰하지 않는다는 말을 직접 들은 데 대한 충격에 사로잡혀, 회사의 모든 것이 싫었고 내 노력을 더 들여 그런 불신을 깨뜨리고 싶은 마음조차 생기지 않았다. 한동안은 그런 내가 자신감이 없어 보이고 일견 무기력해 보이기까지 해서, 그날의 생각을 할 때마다 자괴감이 들었더랬다.
하지만 이제 나는 안다. 애초에 믿음이 없는 자리에 나를 몰아갔던 그 사람이 문제였다는 것을. 아랫사람이 실수할까 봐, 경험이 없으니 잘 못할까 봐 기회를 주지 않으려 하는 리더는 좋은 후배를 길러낼 수가 없다. 그건 마치 신인 투수가 타자에게 홈런을 맞을까 봐 경기에 내보내지 않는 감독과도 같다. 설사 신인이 베테랑처럼 끝내주게 잘 해내지는 못하더라도, 그래도 경기에 계속 내보내야 경험이 쌓이고 그게 실력이 되기 마련이다. 그때 그 사람은 내 가능성을 무시했고, 그래서 나는 성장할 기회를 흘려보냈다.
오래전의 일이다. 그로부터 시간이 많이 흘렀으나 그때 받았던 상처는 여전히 내 속에 남아 있다. 아마도 나를 믿지 않았던 윗사람에 대한 분노에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기로라도 도전했어야 했다는 자책감이 더해져 더 큰 상처로 남아 기억에서 지워지지 않았을 것이다. 그로부터 몇 년이 흘렀고, 사실 비슷한 일을 몇 번 더 당했다. '이 일은 △△씨(나) 말고 ☆☆씨한테 맡길게'. 그 이유가 무엇이든 그런 말을 들을 때마다 나는 그 회의실로 돌아가는 것 같은 느낌을 받는다. 그리고 조직이 나에게 기대하고 믿음을 주지 않는 만큼, 딱 그만큼 나도 이 조직에 대한 기대를 내려놓는다(사이다엔딩이 아니라서 죄송하지만 현실은 그저 조용히 화내고 지나갈 뿐이다ㅎㅎ). 마지막으로 늘 그렇듯, '나는 그러지 말아야지' 하고 생각한다. 쉽진 않겠지만 동료에게 후배에게, 같이 일할 때 믿음을 주는 사람이 되겠다고 다짐한다. 그렇게 오늘 하루도 공공기관에서의 성질나는 하루가 지나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