꼭 친구가 있어야 하냐는 한 학생의 질문에, 만감이 교차했다. 항상 잘 어울리는 것처럼 보이는 친구가 이런 질문한다는 사실은 꽤 놀라게 했다. 하지만, 함께 있을 때 즐거워하는 표정 속에, 어딘가 불편해 보이는 녀석의 표정이 스쳐 지나갔다. 그리고 그 모습은 내 어린 시절을 방불케 했다.
유독 학창 시절에는, '학교'라는 세계가 이 세상 전부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 세계에서 헤어 나올 수 없었다. 그래서인지 친구들과 무조건 잘 지내야 한다고 생각했다. 정확히 말하자만, 친구와 어울리지 못하는 상황이 두려웠다. 특유의 학교 문화는 이를 더 심화시켰다. 혼자서 노는 걸 좋아하는 학생을 두고, 많은 이들은 '찌질이'라고 했다.
학교에 오래 머물수록 점점 취향이랄 게 사라지고 있었다. 내가 어떤 음식을 좋아하고, 어떤 취미가 있는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그들이 나를 미워하지 않는 게 제일 우선이었다. 타인에게 모두 내 취향을 맞추고 있었다.
대학생이 되면서부터 '누군가와 함께 해야 한다'라는 문화가 꽤 사라진 거 같았다. 물론, 대놓고 모든 행사에 빠진 사람을 보고, 예전과 마찬가지로 이상한 눈초리를 보낸 건 사실이었지만.
느슨했졌던 생각에 박차를 가해준 건 '혼밥', '1인 가구'라는 단어였다. 이런 단어의 등장의 이유를 두고, 언론은 '불필요한 인간관계에서 오는 회의감' 때문이라고 했다. 왜 내 학창 시절에는 이 말이 유행하지 않았나 하는 아쉬움이 살짝 생겼다. 하지만, 동시에 학창 시절에 이런 말이 등장했더라도, 모든 밥시간과 쉬는 시간, 수업 시간이 동일했던 초중고 학생에게는 큰 의미가 있었을까 싶었다.
그럼에도, 이런 단어들은 내게 해방감을 안겨주었다. 여태 모든 기준이 타인에게 맞추어져 있던 날들을 돌아보게 해 주었다. 그리고, 중요한 걸 깨닫게 해 주었다. '참 건강하지 않았구나'.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이제는 혼자서 무언가를 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성인이 되고 나서야 진짜 내 취미를 찾기 시작했다. 처음으로 혼자 밥을 먹고 영화를 보고 쇼핑을 해봤다. 약간의 쓸쓸함은 있었지만, 더 이상 맞추지 않아도 된다는 해방감이 좋은 걸 넘어 짜릿함이 되었다. 특히 진짜 내 생각을 솔직하게 표현할 수 있는 이 '글쓰기'라는 게 찐 매력으로 다가왔다.
적어도 우리 반 학생은 친구만이 인생의 전부가 아닌 걸 알면 좋겠다. 그들에게 어떤 말을 해주면 좋을까 고민하다, 혼자 있는 게 자연스러울 수 있으며 그 또한 살아가는 한 형태일 수 있다고 이야기 해준다.
혼자 있고 싶어 한다면, 혼자만의 시간을 가져도 된다고 말해 준다. 그러다 문득 같이 있고 싶어 진다면, 함께 해도 된다고 말해 준다. 친구가 없어 힘들다며 다가 온 친구에게는, 친구 사귀는 방법에 대해 알려주지만, 굳이 힘들어하지 않는 친구에게는 큰 간섭을 하지 않는다. 그리고 혼자 있을 때와, 친구와 함께 일 때의 장단점에 대해 스스로 생각해보게 한다. 제일 중요한 건, 혼자 있건 여럿이 있건, 그 과정에서 스스로의 자아를 잃지 않아야 하는 것이다.
우린 누구나, 혼자 있고 싶어 한다. 그리고 동시에 같이 있고 싶어 한다. 세상 사람들 그 누구나 외향적이지만, 동시에 내향적이다.
그래서 발표를 잘하고, 어울리는 것만이 결코 살아가는 답이 아님을 우리 반 학생에게 알려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