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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새내기 권선생 Jul 29. 2024

시퍼렇게 멍들다

교직원 체육 관련 에피소드-2

 발령 이후, 이놈의 배구에 대한 고민을 절대 지울 수 없었다. 나의 이 배구 똥손 실력을 들켰다가는 어떤 꼰대선생님으로부터 막말을 들을지 모르기 때문이다. 여차하면 교생 실습 때의 "배구를 못해 죄송합니다"라는 말을 내 입으로 직접 꺼내야 할 수도 있으니 말이다. 그만큼 치욕스러운 일도 없을 테다. 교사가 수업과 아이들 지도가 아닌, 터무니없는 직원 체육 실력 부족으로 사과해야 하니 말이다. 


  슬그머니 눈치를 보며 학년 부장님께 슬쩍 여쭈어보았다. "부장님, 혹시 우리 학교는 배구는 안 하나요?" 그러고 '배구를 싫어하는 내 마음을 들킨 건 아니겠지?' 하며 조마조마했다. 그리고 부장님은 내 표정을 살피고서는 "지금은 코로나여서 배구를 안 해요". "자기 배구 좋아하나 보구나?". 정반대로 읽으신 부장님을 보며 한숨 돌렸지만, 눈을 희번덕 뜨며 말했다. "네? 아, 음.. 그냥 궁금해서요. 하하하"


 그리고 생각했다. '정말 다행이다' 그러고 코로나에 감사하는 나를 발견했다. 교사가 이런 생각을 해도 되냐며 자책감에 빠질 무렵, 자연스레 코로나 그다음 단계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다. '그럼, 코로나가 끝나면 다시 시작한다는 건가?' 걱정과 두려움의 먹구름이 또다시 몰려왔다. 생각에 잠기게 되었다. '그때는 어떤 거절을 할까. 어떤 핑계를 대지?' '아니야, 그래도 강제로 시키지는 않을 거야. 시대가 어느 시대인데.'


 몇 달 뒤, 코로나는 시들해졌고 위생 수칙 또한 느슨해졌다. 교감 선생님께서는 교직원 전체에게 메시지를 보넀다. 특히 남자 선생님은 첫 배구에는 꼭 와줬으면 좋겠다는 내용이 포함되어었다. 생각보다 교감 선생님의 부드러운 문장을 보며, 어쩌면 '못해도 괜찮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첫 직원 체육인데 나가는 게 예의일 거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이 선택이 두고두고 후회가 될 줄 몰랐지만.  


  강당 위의 배구장에 서 있게 되었다. 작은 학교라 많은 교직원이 왔음에도 5 대 5 정도의 규모 밖에 되지 않았다. 그 덕에 우편 뒤쪽 수비를 전부 책임지는 중책을 맡게 되었다. 내쪽으로는 제발 부디 공이 오지 않기를 바라며 경기에 임하게 되었다. 그렇게 식은땀이 채 식지도 않을 때, 공이 내 쪽으로 넘어왔다. 올림픽 때, 봤던 배구 선수들의 포즈를 엉거주춤 따라 하며 두 손을 내밀었다. 공을 받기 위해 애쓰는 모습이 얼마나 웃겼을지 가늠도 안 간다.


 그리고는 역시나 예상대로 그 어떤 공도 내가 받을 때면 안정적으로 리시브되지 않는다. 다른 곳으로 마구 튕겨져 나가버렸다. 같은 팀원 선생님들께 죄송하다는 말이 절로 나왔다. '왜 이렇게 노력하는데 안 되는 거지' 하며 자책하기 시작했다. 실점을 계속해서 이어나가던 도중, 네트 건너편에서 짜증 섞인 목소리가 톡 쏘듯이 들려왔다. '분명 어디서 많이 겪은 일인데' 하고 생각할 때쯤. "참, 권 선생 와이리 몬하노. 특별 훈련 좀 해야 될 거 같은데." 장난 섞인 목소리였지만, 뼈가 있는 내용이었다. 그리고 평소 쓴 소리 못하고 부끄러워하는 성격답게 내게 주목된 그 상황을 얼른 넘기고 싶었다. "아.. 네.. 하하하"


정말 민망했지만, 그 짧은 찰나에 내게도 편견이 생기기 시작했다. 20대 남자는 운동을 잘하고, 좋아해야 한다는 그런 낡디 낡은 편견. 그리고 조금씩 자책하기 시작했다. '나는 20대 남자인데, 왜 이렇게 못하는 걸까.' 하고. 자존감이 떨어지는 건 한 순간이었다. 그 어떤 업무도 학생들 지도도 뛰어나다고 선생님들로부터 칭찬을 받았지만, 배구 관련 뼈 있는 한마디로 내 감정은 최악으로 치닫게 되었다. 


그리고는 다음 날부터 특별 훈련을 받게 되었다. 물론, 교감 선생님께서 체육 담당 선생님께 따로 말씀을 하시긴 했지만, 그보다도 이 상황이 스스로 용납되지 않아서. 교대 시절 체육 관련 교과에서 그래도 나쁘지 않은 성적을 받았는데. 이렇게 배구를 못할 정도로 내가 몸을 못쓰나 싶어 스스로가 납득되지 않았다. 


그렇게 체육 담당 선생님과 날을 잡고 연습하게 되었다. 배구를 좋아하고 사랑하는 선생님인 만큼 리시브 방법을 정말 자세하게 알려주셨다. 배구 선수가 코치님 앞에서 레슨을 받으면 이런 느낌이겠지 싶었다. "선생님, 손목 위쪽에 이 부분! 이 부분에 공이 맞아야 제대로 받는 거예요." 선생님은 공을 던져주셨고, 나는 자세를 취해 공을 받는 훈련을 했다. 그렇게 며칠간 100~200개 정도의 공을 받았던 거 같다.


그런데 손목 부분의 통증이 없어지고, 육안으로 보았을 때 빨갛게 부어오르기 시작했다. 얼음 찜질을 했지만 날이 갈수록 빨간 부분이 점차 보라색으로 바뀌기 시작했다. 또 상처는 보라색을 넘어 시퍼런 멍이 되어버렸다. 이상 연습을 수 없었다. 잠깐 옷깃에 스쳐도 통증이 느껴졌다. 친구들이 진심 어린 표정으로 물어봤다. "무슨 있었어?" 그렇게 배구가 싫다며 노래를 불렀던 친구들 앞에서 나는 배구 연습을 하다 이렇게 되었다며, 나를 내려놓을 수밖에 없었다.


그런 부끄러움과 함께,  반대로 '꼭 해내고 말겠다'는 오기가 피어났다. 다음 직원 체육 때는 어찌 되었건 이 노력을 꼭 시험해 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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