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리랑카에서 오래 기억에 남을 시간들
스리랑카에서의 시간이 어느새 마지막을 향해 달려가고 있었다. 이번 여행을 시작하며, 마음 한구석에는 몽골의 광활함이 선물했던 그 벅찬 감동이 스리랑카에서도 되살아나기를 은근히 기대했다. 밤하늘을 가득 수놓았던 별들을 헤아리던 기억, 끝없이 펼쳐진 사막을 자유롭게 뛰어다니던 그 짜릿한 순간들을 다시 한번 느껴보고 싶었다. 어쩌면 이번 여행이 몽골에서 미처 채우지 못했던 마음의 빈자리를 조금이나마 메워줄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작은 희망도 품었던 게 사실이다.
하지만 이 여행의 마지막 순간이 다가올수록, 신기하게도 내 머릿속에는 스리랑카의 풍경보다 오히려 몽골의 쏟아지던 별빛만이 선명하게 떠올랐다. 그렇다고 스리랑카가 실망스러웠던 것은 결코 아니다. 오히려 예상치 못했던 곳에서, 전혀 다른 종류의 매력을 발견했게 되었다. 아이러니하게도 그 매개체는 바로 호텔이라는 인공적인 공간이었다. 그토록 자연을 갈망했으면서도, 호텔이라는 현대적인 공간에서 깊은 인상을 받게 된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아마도 마지막 숙소였던 올-인클루시브 리조트가 제공했던 완벽한 편의 시설과 빈틈없는 서비스 덕분이었을 것이다.
네 개의 매력적인 수영장을 갖춘 그곳에서, 우리는 변덕스러운 날씨 탓에 제대로 만끽하지 못했던 아쉬움을 달래기로 했다. 각기 다른 분위기를 자아내는 레스토랑들을 기웃거리며 어떤 맛있는 음식을 맛볼까 행복한 고민에 빠졌고, 라운지 바에 편안히 앉아 달콤한 망고 스무디와 상큼한 파인애플 주스를 연달아 주문했다. 수영장 선베드에 몸을 맡기고 시원한 모히또를 단숨에 비워낸 뒤, 싱그러운 코코넛 라임 칵테일을 손에 들었다. 해변에서는 비치 발리볼을 즐기다 문득 고개를 들었을 때, 붉은 노을이 잔잔한 바다를 향해 서서히 스며들어가는 황홀한 광경이 눈앞에 펼쳐졌다. 우리는 마치 약속이라도 한 듯, 망설임 없이 그 붉은빛 속으로 달려갔다.
부슬부슬 비가 내렸지만, 우리에게 성가신 존재가 아니었다. 스리랑카 여행 내내 우리 곁을 맴돌았던 그 비는 이제 낯설지 않은 여행의 동반자처럼 느껴졌다. 붉은 노을을 따라 천천히 발걸음을 옮기자, 구름 사이로 쏟아지는 석양은 마치 섬세한 수채화 물감으로 정성껏 그려낸 듯 아름다웠다. 붉은색과 검은색이 캔버스 위에서 자유롭게 섞이며 몽환적이면서도 강렬한 분위기를 자아냈다. 우리는 수영복 차림 그대로 망설임 없이 파도 속으로 뛰어갔다. 발이 푹푹 빠지는 진흙에 넘어지고 미끄러져도, 웃음이 끊이지 않았다. 온몸이 흙투성이로 더러워져도 전혀 개의치 않았다. 물장난을 치고, 마음껏 사진을 찍으며 한없이 석양을 바라봤다. 그 순간의 자유로움은 여태 여정 속 모든 불편함을 잊게 할 만큼 강렬했다.
호텔로 돌아와 따뜻한 물로 샤워를 마치고, 은은한 꽃 향기가 감도는 깨끗한 객실에 앉아 머리카락을 말렸다. 문득 ‘아, 이번 여행 참 좋았구나’ 하는 뒤늦은 깨달음이 잔잔하게 밀려왔다. 어쩌면 나는 스리랑카의 웅장한 자연에 너무 큰 기대를 걸었던 것인지도 모른다. 그래서인지 거대한 유적지 시기리야나 신성한 황금 사원 불치사보다는, 엘라의 활기 넘치던 클럽과 마음껏 휴식을 제공해 준 리조트가 자꾸만 생각났다. 바다로 망설임 없이 뛰어들었던 그 자유롭고 호화로웠던 순간들이 자꾸만 생각날 거 같다. 화려함과 편안함 속에서, 역설적으로 나는 또 다른 나만의 여행 스타일을 또 발견한 것만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