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런드리 서비스와 사치

by 새내기권선생

런드리 서비스를 이용하고 폭탄 요금을 맞게 되었다. 사기를 당했냐고? 아니다. 그저 내가 내 손으로 직접 맡긴 일곱 벌의 옷가지였다.

사실 이번 스리랑카와 태국을 2주간 여행하며 희한한 습관이 생기게 되었다. 바로 수시로 호텔의 '런드리 서비스'를 이용하는 것이었다. 솔직히 처음에는 여느 여행 때와 마찬가지로 코인세탁소를 이용할 생각이었다. 그런데 태국 전의 스리랑카를 여행할 때, 호텔 직원에게 코인세탁기에 대해 문의하자 그는 세탁기는 없고, '런드리 서비스'만 있다고 했다. 내가 머뭇거리자 그는 가격이 아주 저렴하다며 이용해 보라고 했다. 다섯 벌 정도의 세탁이 필요하다고 여쭙자, 한화로 약 5천 원도 되지 않는 가격이라는 답변을 주셨다. 바디랭귀지를 하며 진짜 ‘런드리 서비스’가 맞냐고 물어보았는데도 그는 맞다고 했다.

결과적으로, 스리랑카 호텔 직원의 말이 맞았다. 가격이 저렴한 것은 물론이었고, 세탁물을 받았을 때는 옷들이 비닐로 전부 깔끔하게 포장되어 있었다. 열어보니 향이 정말 좋았고, 전부 빳빳하게 다림질되어 있었다. ‘와, 여태껏 이렇게 좋은 서비스가 있었는데 내가 바보같이 이용을 안 하고 있었구나!’ 그때 이후로 스리랑카 호텔을 다니는 족족 런드리 서비스를 이용하기 시작했다. 하루 입은 옷은 미루지 않고, 바로바로 런드리백에 담아 호텔에 맡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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런드리 서비스를 저렴하게 이용했던 '파라다이스 담불라 호텔'

그런 습관은 서서히 스며들어 어느새 아주 자연스러운 내 것이 되었다. 태국으로 여행 와서도 나는 자연스레 런드리백에 내 세탁물을 담았고, 서비스를 이용하게 되었다. 그리고 다음 날 아침, 세탁물을 받고 충격을 받게 되었다. 스리랑카의 물가를 몇 배는 뛰어넘는 수준의 요금이었다. 가지런하게 개어 있는 내 양말과 속옷을 보자 그제야 어떤 사치스러움이 느껴졌다.

반면 우리 옆 객실 문고리에는 옷가지가 걸려있었다. 내가 맡긴 것 이상의 수십 벌의 옷가지가 말이다. ‘저분은 가격을 알면서도 시킨 거겠지?’ 싶으면서도, 문득 내가 내 잣대로만 현상을 판단하는 것 같아 갑자기 부끄러워졌다. 그리고는 사치라는 단어에 대해 곰곰이 생각하게 되었다. 스리랑카에서는 호텔에서 뿐 아니라 다른 곳에서도 아무렇지 않게 소비를 했던 거 같다. 그리고 그때도 잘 생각해 보면, 분명 누군가는 나를 보며 흥청망청 돈을 쓴다고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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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리랑카에서의 런드리 서비스는 나에게 합리적인 소비라는 이름의 편리함을 선사했지만, 태국에서는 아니었다. 결국 '합리성'이란 게 상대적이라는 것을 다시금 깨달았다. 또 나의 사치가 누군가에게는 당연한 일상이 수 있으며, 나의 일상은 누군가에게는 어떤 사치가 될 수 있음을 배웠다. 비록 지갑은 가벼워졌지만, 마음속은 알찬 그런 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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