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교 시절, 친구 집에서 보았던 한 장의 사진이 태국이라는 나라를 처음 접하게 되었다. 코끼리 등에 매달려 활짝 웃고 있는 친구의 모습은 그야말로 신세계였다. “와, 여기 어디야?” 호기심 가득한 나의 질문에 친구는 “멋지지? 여기 태국이야!”라며 자랑스레 답하던 순간이 생생하다. 그 순간, 나는 태국이 코끼리가 아주 흔한 나라라고, 그리고 언젠가 나도 저 거대한 동물에 꼭 타보고 싶다고 생각했다.
성인이 되어 방문한 첫 태국 여행에서는 사실 코끼리를 단 한 마리도 만나지 못했다. 아마도 고층 빌딩이 가득한 방콕 시내에만 머물렀기 때문일 것이다. 이번 두 번째 태국 여행에서는 코끼리를 보고 싶었다. 마침, 아유타야 지역을 돌아볼 때, 코끼리를 볼 수 있는 관광 코스가 있어 다행히 볼 수 있게 되었다.
버스에서 내린 우리들은 먹이를 사고, 만들어진 통나무 통로를 따라 앞으로 가 보니 코끼리를 마침내 마주할 수 있게 되었다. 그런데, 내가 예상했던 코끼리의 모습과는 확연히 달라 흠칫하고 놀랐다. 여러 코끼리들은 굵은 쇠사슬에 칭칭 묶여 있었고 철봉에 그들은 고정되어 있었다. 그리고 그들의 등에는 인간을 태울 수 있는 초라한 나무 의자가 덩그러니 놓여 있었다.
한 남자는 코끼리의의 코에 붙은 상아를 손으로 꽉 쥐고 눈을 똘망이며 태국어로 우리에게 코끼리에 타라고 자꾸 권유했다. 그의 옆에는 코끼리와 함께 사진을 찍는 데에는 돈이 든다는 팻말이 있었다. 그리고 앞선 관광객들은 너도나도 카메라를 들고 코끼리 위로 올라갔다가 내려오기를 계속 반복했다.
코끼리 앞에 다가섰다. 가까이 다가간 코끼리의 눈을 보았다. 코끼리의 눈에 초점이 없었다. 깊이를 알 수 없는 공허함이 가득했다. 모든 생기를 잃어버린 거 같았다. 그들은 그저 관광객들이 던져주는 싸구려 채소들을, 의무처럼 씹어댔다. 그리고 계속해서 인간을 태우고, 내리는 행위만 반복했다. 그들의 몸을 자세히 보니 힘없이 축 늘어져 있었고, 오랜 고단함에 엄청나게 주름져 있었다. 이곳에 오지 않았다면, 드넓은 초원을 자유롭게 누볐을 수도 있는 동물들이었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 무심코 유튜브를 켰다. 알고리즘이 내 마음을 읽기라도 한 듯, 척추가 내려앉은 코끼리 영상이 떴다. 설명을 보니, 인간과 과도한 짐을 싣다 그렇게 된 것이라고 했다. 세계 각국의 코끼리들이 인간의 유희와 탐욕의 대상물이 되어가고 있었다. 그러다 불현듯 '스리랑카'에서 봤던 코끼리의 모습이 떠올랐다. 차를 타고 가던 중 우연히 본 그 코끼리들은 도로 옆을 자유롭게 걷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의 눈은 이곳의 코끼리와는 확연히 달랐다. 어떤 생기와 야생이 가득한 눈빛이었다곤 할까.
그들의 공허한 눈망울이 내게 꽤 깊은 질문을 던져 준 거 같다. 인간의 즐거움을 위해 우리는 동물의 고통을 이렇게 외면해도 되는 걸까. 그렇다면, 인간과 자연이 공존하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서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하며, 그전에 나부터 무엇을 할 수 있을까 하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