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방콕 미슐랭과 맛집을 찾아서

by 새내기권선생

"우리 이번 태국 여행에서는 찐맛집을 갈래?"

태국 여행을 두 번이나 같이 가게 된 친구가 내게 한 말이었다. 친구와 나는 당시 '흑백요리사'라는 프로그램에 푹 빠져 있었다. 요리 프로그램을 전혀 보지 않던 내가 이런 프로에 빠지게 된 건, 심사위원들의 진정성 때문이었던 거 같다. 그들이 음식을 평가할 때 짓는 표정과 한마디 한마디에는 어떤 진심이 있었고, 그들이 말하는 '맛'이라는 게 도대체 어떤 건지 정말 궁금해졌다.

그렇게 우리는 흑백요리사를 보던 중 아이디어가 갑자기 스쳐 지나갔다. 태국에서 우리만의 흑백요리사를 찍어보는 것. 맛집을 다니며 직접 심사위원이 된 것처럼 태국의 맛집을 평가해 보자고 했다. 우리는 그때부터 방콕의 맛집을 미친 듯 조사했다. 미슐랭 가이드에서 선정한 맛집들을 주의 깊게 살펴보았고, 구글 리뷰가 좋은 곳들, 현지 블로그에서 추천하는 곳들을 하나씩 수집하기 시작했다. 하나씩 정리하다 보니 구글 시트에 적은 맛집 리스트가 어느덧 스무 개가 넘게 되었다. 우리는 엄선에 엄선을 거듭해 몇 곳을 최종 후보로 고르게 되었다.


사실 나는 여행지에서의 미식에 큰 관심이 없었다. 특히 여행지에서는 그곳에서만 갈 수 있는 관광지를 가보고, 현지 문화를 체험해 보는 게 진정한 여행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번 여행으로 나는 생각이 완전히 바뀌게 되었다. 그 나라의 맛집을 찾아보고 맛본다는 건 그 나라를 더 깊이 있게 체험해 볼 수 있다는 것, 즉 깊이 있는 여행이라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우리가 가 본 방콕 맛집 중 제일 인상 깊었던 곳은 '쿤댕 꾸어이잡 유안(Khun Daeng Kuay Jub Yuan)'이었다. 이곳의 특별한 국수는 베트남의 쌀국수와는 전혀 다른 매력을 가지고 있었다. 넓고 평평한 쌀국수를 동그랗게 말아놓은 독특한 형태였는데, 씹을수록 쫄깃하고 고소한 식감이 일품이었다. 후추가 듬뿍 들어간 국물은 처음에는 강렬했지만, 먹을수록 중독성이 있었다. 국물에 들어간 삼겹살은 부드럽게 녹아내렸고, 메추리알과 표고버섯이 씹는 재미를 더해주었다. 현지인들이 줄을 서서 기다리는 이유를 확실히 알 수 있었다.

20250122_200937.jpg
20250122_201629.jpg
20250122_201854.jpg

또 하나의 잊을 수 없는 경험은 차이나타운의 '빠통고 사워이(Patonggo Savoey)'였다. 40년 넘게 한 자리를 지켜온 이 노점은 3대째 가업을 이어가고 있는 맛집이었다. 사장님이 직접 반죽을 치대고 기름에 튀기는 모습을 보니 더욱 특별하게 느껴졌다. 갓 튀겨낸 빠통고는 겉은 바삭하고 속은 촉촉했는데, 코코넛 소스와의 조화가 환상적이었다. 한국의 꽈배기와는 달리 더 가볍고 바삭한 식감이 매력적이었고, 기름기도 깔끔하게 빠져 있어 느끼하지 않았다. 미슐랭 가이드에 이름을 올린 이유가 충분히 납득되는 맛이었다.

20250123_190257.jpg
제목 없음.png

'폴로 프라이드 치킨(Polo Fried Chicken)'는 50년 넘는 역사를 자랑하는 곳이었다. 2018년부터 미슐랭 빕 구르망에 계속 선정되고 있었다. 치킨 위에 올려진 황금빛 마늘 튀김은 이곳의 시그니처였다. 바삭하게 튀겨진 마늘이 듬뿍 올려져 있어 치킨과 함께 먹으면 고소함이 배가되었다. 함께 주문한 쏨땀은 새콤달콤하면서도 매콤한 맛이 치킨과 완벽한 조화를 이루었다. 특히 옥수수가 들어간 쏨땀은 처음 경험해 보는 조합이었는데, 아삭한 옥수수의 단맛이 매운맛을 중화시켜 주면서도 씹는 재미를 더해주었다.

KakaoTalk_20250626_214503791_04.jpg

우리가 마치 '흑백요리사'의 심사위원이라도 된 듯 진지하게 음식을 평가하고, 그 맛에 대해 친구와 열띤 토론을 벌였던 순간들이 평생 잊지 못할 것이다. "이 국수는 확실히 별 다섯 개다", "아니다, 후추가 너무 강하다. 네 개 반이 적당하다" 같은 대화들이 우리의 여행을 더욱 풍성하게 만들어주었다. 이번 방콕 여행을 통해 여행을 즐기는 새로운 방법이 생기게 되었다. 이번 여행을 통해 현지의 맛집에서 음식으로 그들의 문화를 체험하는 것이 관광 못지않게 깊이 있는 경험이라는 걸 제대로 알게 되었다.

이제는 '맛집 투어'라는 여행 방식을 진지하게 고려해 봐야겠다. 관광지를 둘러보는 것만이 여행의 전부가 아님을 제대로 깨달았으니 말이다. 다음에 어느 나라를 방문하든, 그곳의 미슐랭 맛집과 현지인들이 줄 서서 먹는 진짜 맛집을 꼭 제대로 연구해서 방문할 생각이다.

keyword
이전 15화런드리 서비스와 사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