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처받은 아이는 착하지 않다 1

시계

by Anna Lee

몇 살 때였는지 정확히 기억은 안 난다.

어딘가를 가려는 엄마를 붙잡고 나도 데려가라고 울고불고 매달리던 기억이 난다. 엄마는 나를 떼어내려 애를 쓰고, 엄마가 그러면 그럴수록 나는 더 세게 매달리고…

그 느낌이 낯설지 않았던 걸로 보아 아마 전에도 그런 일들이 있었을 것이다. 엄마가 혼자 외출을 하거나 나를 어딘가에 떼어놓을 때의 그 황당함과 서러움이 처음이 아니었다.

더구나 그날 엄마는 동생과 함께였다. 동생만 데리고 외출을 하겠다는 것이었다.

“애기 주사 맞으러 병원 가는 거야. 병원 가면 너도 주사 맞아야 하는데? 그러니까 아빠랑 집에 있어, 알았지?” 거짓말이었다.


아이 땐 어쩌면 그렇게 어른들의 거짓말을 잘도 눈치챘는지 모른다. 그들의 말을 이해하기보다, 분위기 그대로를 빨아들이듯 온몸으로 느꼈던 것 같다.

결국 엄마는 나를 억지로 떼어놓고 동생만 데리고 나갔다. 울다 지친 나는 꺽꺽 악만 남은 채 안방으로 들어가 문을 닫아버렸다.

‘왜 엄마는 항상 동생 옆에만 있는 걸까. 왜 엄마는 내가 원하는 대로 해주지 않는 걸까. 이건 아니지. 정말 아니야!’ 그때의 내 기분을 이제 와 정리하면 이랬다.

화가 났다. 분했다. 분을 이기지 못해 한동안 온 방 안을 구르며 발버둥을 쳤다. 그래도 화가 풀리지 않았다.

동생이 어디로 사라져 버렸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엄마가 동생을 어디다 맡기고 영영 안 데리고 왔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분노가 좀 가라앉자, 나는 심심하기도 하고 궁금하기도 해서 엄마의 화장대를 여기저기 만지기 시작했다. 언제나 신기한 물건들로 가득했던 엄마의 화장대…

시간 가는 줄 모르고 화장대 탐색에 열중하던 나는 서랍에서 엄마가 애지중지하는 시계를 발견했다. 어린 내 눈에 무척 예쁘고 화려해 보이는 시계였다.

순간 엄마를 골탕 먹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엄마가 내 말을 들어주지 않았으니 나도 엄마를 화나게 하고 싶었다.

장롱 문을 열어 보았다. 엄마 냄새가 화악 풍기던 장롱 안에서 나는 제일 앞에 보이는 가방을 열고 그 안에 시계를 감춰버렸다.


며칠 후 엄마가 발을 동동 구르며 시계를 찾아 온 집 안을 헤매는 걸 보았다. 알고 보니 그 시계는 엄마가 결혼할 때 아빠에게서 받은 예물 시계였다.

애타는 엄마의 모습을 보면서도 나는 시치미를 뗄 수밖에 없었다. 사실을 말했다가는 누구한테 맡겨지는 정도가 아니라, 아예 집에서 쫓겨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얼마의 시간이 지난 어느 날 외출 준비를 하던 엄마는 핸드백 안에서 잠자고 있던 시계를 발견했다. “이게 왜 여깄지?”

범인은 잡히지 않았고, 그냥 엄마가 정신이 없었던 걸로 마무리되었다.

나의 완전범죄였다.




언젠가 요시토모 나라(1959~, 팝 아트 작가)의 작품들을 본 적이 있다.

아이들은 순수하고 귀엽기만 하다는 고정관념을 벗어난 그의 그림들이 내 마음을 사로잡았다. 그림 속 소녀의 모습에서 어릴 적 나를 보았다. 그리고 그 소녀의 모습은 오래오래 내 마음속에 여운을 남겼다.


"Knife Behind Back", Yoshitomo Nara, 1999, 캔버스에 아크릴, 233.7×208.3cm


상처받은 아이는 착하지 않다. 그들은 자신의 마음을 알아주지 않는 어른들 앞에 무기력해져 있을 뿐이다. 언제든 출구만 발견한다면 그들의 분노는 밖으로 나올 준비를 하고 있는지 모른다.

상처받은 아이들은 마음속에 있는 어두운 구석을 너무 빨리 발견해 낼지 모른다.

더 많이 상처받기 전에 더 많이 슬퍼지기 전에 손상된 마음을 회복하도록, 그 잠재된 힘을 찾도록 돕는 것이 어른의 몫이다. 아이들은 자기만의 개별성과 창의력을 가지고 하루하루 발전해 가는 존재들이기 때문이다.


초등학교에 가고 중고등학교에 가는 동안에도 엄마의 시계 사건은 내 머릿속에 남아, 한동안 내가 나쁜 아이일 거라는 생각을 했었다.

그런데 이제는 안다. 내가 원래 나쁜 아이였기 때문에 그런 일이 일어난 게 아니라는 것을.


그날 엄마가 거짓말을 하는 대신에 나를 데리고 가지 못하는 이유를 솔직하게 말해 주었더라면, 나는 그렇게 화가 나지 않았을 것이다.

어린 내가 몇 시간씩 엄마와 떨어져 있어야 한다는 게 얼마나 힘든 일인지 엄마가 이해해 주었더라면, 나는 그렇게 불안하지 않았을 것이다.

나보다 어른인 엄마가 아이인 나를 먼저 알아주었더라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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