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처받은 아이는 착하지 않다 2

고자질쟁이

by Anna Lee

어릴 적 내 모습 중에서 제일 마음에 안 드는 건, 고자질을 일삼던 내 모습이다.

아이들이 하는 고자질이라면 보통 형제나 친구를 어른한테 이르는 것을 떠올리기 마련이다.

그러나, 내가 했던 고자질은 그런 것과는 좀 달랐다.


나는 말하기를 즐기는 아이였다. 말하는 게 재미있었다. 인형놀이를 하면서도 말이 많았고, 차를 타고 가면서도 차창 밖을 내다보며 혼자 중얼중얼 말을 했다. 뭐든 손에 쥐면 그걸로 이야기를 지어내며 혼자서도 잘 놀았다고 한다.

그런데, 사실 나는 혼자 말하는 것보다 사람들하고 말하는 게 더 재미있었다. 그럴 땐 상대방이 나를 봐주고 내 마음을 알아주는 것 같아서 심심하거나 외롭지 않았다.

명절이나 어른들 생신에 온 가족이 모이면 나는 친척 언니나 작은집 고모들을 붙잡고 옛날이야기를 들려달라고 조르곤 했다. 그렇게 시작된 이야기는 밤늦게까지 계속되었고, 창 밖이 어둑어둑해지면 우리의 이야기는 자연스레 무서운 이야기로 그 테마가 바뀌곤 했다. 다른 아이들은 무섭다고 울기까지 하는데, 나는 그저 재미있기만 했다.

그렇게 한 번씩 실컷 이야기를 나누고 나면 잘 먹어 배가 부른 것처럼 만족스러웠다. 들은 이야기들을 기억했다가 친구들한테 말해줄 생각에 가슴이 설레기도 했다.


"어린아이가 말을 참 잘한다"라는 칭찬을 주변 어른들한테 몇 번 듣고 나서는 어른들이 말씀하시는 자리에 슬그머니 끼어 앉기 시작했다. 그러면 어른들은 귀엽다며 나를 그냥 내버려 두셨고, 몇 마디 거들어도 "아유, 너 말을 참 잘하는구나" 하며 웃으셨다. 아마 어른들은 당신들이 하는 말을 내가 들어도 이해하지 못할 거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그러나 만 대여섯 살 무렵의 아이들은 어른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더 많이 안다. 더구나 이야기를 좋아했던 나는 어른들의 이야기를 듣는 게 너무 재미있었다. 그리고 말하기를 즐겼던 나는 내가 들은 이야기를 퍼 나르기 시작했다.


하루는 작은 아빠들과 작은 엄마들이 함께 모여 식사를 하며 고모부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을 들었다. 나는 늦게 도착한 고모와 고모부가 가족들에게 인사를 마치자, 두 분의 손을 이끌고 빈 방으로 들어갔다. 무슨 일로 그러나 싶어 눈이 동그래진 고모와 고모부에게 나는 두 분이 알 리 없는 특종을 전해드렸다.

"있잖아요, 작은 엄마들이랑 작은 아빠들이요, 고모부 손이 못 생겼대요. 손가락이 너무 짧아서 이상하대요." 그 말을 들은 고모와 고모부의 표정을 나는 지금도 잊을 수가 없다.


어른들 사이를 오가며 열심히 말을 전하던 나에게 어른들이 먼저 "너 아까 저쪽 방에 있었지? ◯◯가 뭐래디?" 하고 물어올 때도 있었다. 엄마 아빠의 관심에 늘 목마르던 내게 누군가의 시선을 한 몸에 받을 수 있는 뜻밖의 기회였다. 그들의 호응에 힘입어 나는 더욱더 나의 역할에 충실했다.

내가 전하고 다닌 어른들의 뒷담화 때문에 누군가 상처받을 수 있다는 건 몰랐다. 내가 열심히 퍼 나른 뉴스들이 가족 간의 관계에 금이 갈 구실을 제공할 수 있다는 것도 알 리 없었다.

내가 어른들을 상대로 말을 전하고 다닌 건 단지 이야기하는 게 재미있어서만은 아니었다. 어른들의 세계를 아주 조금이라도 엿보고 끼어들면서, 빨리 커서 어른이 되고 싶던 내 마음 한 구석이 채워지는 느낌이었다.

어른들이 내 말을 듣고 나에게 반응해 주는 것도 좋았다. 그럴 때면 내가 굉장히 중요한 사람이 된 것 같았다. 그들의 표정을 살피고, 어떻게 하면 그들의 마음을 기쁘게 해 줄 수 있을까 생각했다. 나한테는 '내 편'이 절실하게 필요했는지도 모른다.

이렇듯 야심 찬 꼬마 정보원 노릇은 그리 오래가지 못했다.


어느 날 외가에서 어른들이 큰 소리로 말다툼하는 것을 보았다. 이모들과 외삼촌들, 그리고 외숙모 사이를 왔다 갔다 하며 열심히 말을 전하고 다녔던 나는 그날도 여느 때처럼 내 임무에 충실했을 것이다. 그때 내가 무슨 말을 누구에게 했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다만, 내가 전했던 말들을 처음엔 아이가 하는 말이려니 귀담아듣지 않던 어른들이 시간이 지나면서 점점 들은 말들을 곱씹게 되고, 서로 꺼림칙함과 오해가 쌓이다 결국 폭발한 것이라고 이제 와 짐작할 뿐이다.

외가에서 돌아온 나는 그날 엄마에게 크게 혼이 났다. 사건의 전말을 다 이해할 순 없었지만, 내가 뭔가 큰 잘못을 저질렀다는 생각이 혼나면서 어렴풋이 들었다.

아무리 어른들의 관심을 받고 싶고 이야기하는 게 재미있어서 그랬다고는 하지만, 나는 그때 순수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들은 이야기를 전할 욕심에 기억 속에 저장하고, 그 이야기를 전할 상대를 파악했으며, 전달할 때와 장소를 가렸기 때문이다. 나름 계획적이었던 것이다.


그 일 이후 어른들은 더 이상 나를 그들의 대화에 끼어주지 않았다. 대신, 친가와 외가의 또래 아이들 중 제일 맏이였던 나는 친척들이 모이는 날이면 동생들을 보살피는 역할을 맡게 되었다.

그러나 나는 느낄 수 있었다. 어른들 몇몇은 나를 보는 시선이 예전 같지 않았으며, 나와 이야기하는 걸 꺼리기까지 했다는 것을.

고자질쟁이라는 오명은 어른들의 비난이 끝나고 난 뒤에도 오랫동안 내 마음속에 남아 수치심과 씁쓸함을 남겼다. 남의 말을 함부로 옮기는 것이 걷잡을 수 없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는 것을 나는 어쩌면 다른 아이들보다 빨리 체득했을지 모른다.


사람들이 내 말을 들어줬으면, 나와 눈 맞춰주며 내 말이 옳다고 해 줬으면 하는 채워지지 못한 바람이 그 방향을 삐딱하게 틀어 질주하는 바람에, 내가 가려고 했던 곳과는 전혀 다른 곳으로 나를 데려갔던 것 같다.

지금 생각하면, 상처받은 아이와 상처받은 어른들이 함께 빚어낸 웃픈 촌극이었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