맑은 공기를 집 안에 들이려고 베란다로 통한 창을 여는데, 하늘 가득 날아오르는 풍선들이 보였다.
하양 분홍 주황 빛깔의 풍선들이 봄꽃처럼 하늘 가득 피어나고 있었다. 내가 사는 아파트 건물 뒤편 꽤 가까이에서 날아오는 풍선들은 그 색깔로 보아 누군가의 결혼 축하 파티에서 띄운 것 같았다.
나는 문을 열다 말고 그 풍선들을 한참 동안 바라보았다.
풍선 - 고무나 포일 주머니 안에 공기보다 가벼운 기체를 넣어 공중에 뜨게 만든 물건.
내 어릴 적 사진 중에는 유난히 풍선을 들고 찍은 사진이 많다. 나는 풍선을 참 좋아했었다. 하늘을 날거나 떠 있는 것들 - 구름, 비행기, 새, 해, 달, 별 등등 - 중에서 풍선이 제일 좋았다.
지금은 풍선의 종류나 색이 다양하지만, 내가 어렸을 때는 고무풍선이 대부분이었고 색도 한 두 가지밖에 없었다. 그래도 내 눈에는 영롱한 빨간 풍선이 꽃보다 더 예뻐 보였다.
어디를 가든 풍선이 보이기만 하면 나는 어른들을 졸라 풍선을 얻어냈고, 그렇게 가까스로 차지한 풍선을 놓치기라도 하는 날엔 세상이 다 끝난 것처럼 소리치고 울었다. 할 수만 있다면 풍선을 쫓아 어디라도 날아갈 기세였다.
내 울음에 질린 엄마는 아예 내 팔목에 풍선 줄을 묶어주셨다. 그런데 나는 그게 또 불편하고 불안했다. 손아귀에 풍선 줄을 꼭 쥐고 그 감촉을 느끼지 않으면 풍선이 다시 날아갈 것만 같았다. 칭얼대는 나를 달래기 위해 엄마는 풍선 줄을 풀어 내 손에 쥐어주며 "또 놓치면 다시는 안 사줄 거야" 엄포를 놓았다.
그러나 얼마 못 가 나는 다시 풍선을 놓치곤 했다. 한 손을 오롯이 풍선에게 내어주기엔 네댓 살 아이는 너무 할 일이 많았다.
나를 떠나 하늘 멀리 사라지는 풍선을 보며 울다가, 문득 저 풍선들은 어디로 가는 걸까 궁금해졌다.
하늘 위에는 하나님이 사는 큰 궁전이 있는데, 주인이 잃어버린 풍선들이 거기 모여 살다가 나중에 하늘나라에서 주인과 다시 만나게 될 거라고 혼자 상상하곤 했었다. 내가 놓친 풍선들을 언젠가 꼭 다시 만나게 될 거라고 생각하면 좀 덜 슬퍼지기도 했다.
어느 날은 풍선을 놓치지 않고 무사히 집에 가져오기도 했다. 그러나 며칠이 지나면 바람 빠진 풍선은 축 늘어져 자꾸만 고개를 숙였다. 그래도 풍선을 놓쳐서 갑자기 이별하게 되는 것보다는 그렇게 풍선의 마지막을 함께하는 게 훨씬 마음이 놓이곤 했다.
초등학교에 들어가고 나서는 운동회나 소풍 등 여러 가지 놀이나 게임에 참여할 기회가 많아졌다. 그중에 빠지지 않았던 게 풍선 터뜨리기 게임이었다.
나는 그 게임을 할 때마다 곤혹스럽고 불쾌했다. 큰 소리에 예민했던 나는 풍선이 빵 터지며 나는 소리가 무서웠다. 그리고 무엇보다 내가 좋아하고 아끼는 풍선을 왜 그렇게 잔인하게 터뜨려야만 하는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어른이 된 지금도 풍선이나 폭죽이 터지는 걸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2013년 가을, 성경공부 모임을 주도하는 단체에서 영유아반 성경공부 교사로 일하게 되었다.
트레이닝을 받기 위해 처음 관찰 수업을 들어갔던 반이 앨리스가 가르치는 반이었다. 앨리스는 조용하고 단아한 분위기를 지닌, 언제나 침착하면서도 즐겁게 아이들을 이끄는 선생님이었다.
우리는 곧 친구가 되었고, 나는 모르는 게 생기면 그녀에게 달려가 묻곤 했다. 앨리스는 늘 친절하고 따뜻하게 나를 맞아주고 응원해 주었다.
학기가 끝날 무렵, 2014년 봄 이맘때였다. 나는 트레이닝을 마치고 다음 학기 반을 배정받기 전까지 다른 교사들을 돕고 있었다. 그날은 앨리스와 캐시 반에 들어가 수업을 도왔는데, 자유놀이 시간에 앨리스는 여러 가지 옷들을 입어보며 아이들과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천진난만하게 깔깔 웃는 앨리스를 보며 캐시와 나도 마주 보고 웃었다.
그리고 다음날 아침 우리 팀 디렉터로부터 이메일을 받았다. 앨리스가 뇌출혈로 쓰러져 위독하다는 것이었다. 이틀 뒤 부활절 아침, 그녀는 세상을 떠났다.
나는 동료 교사들과 함께 그녀가 다니던 교회 장례식에 참석했다. 생전에 그녀가 원하던 대로, 우리는 검은색 정장이 아닌 원색의 캐주얼한 옷을 입고 마지막으로 그녀를 만나러 갔다. 장례식이 끝나고 교회 앞마당에 모인 우리는 풍선들을 하늘로 띄우며 그녀가 잘 가기를, 부디 평안하기를 빌었다.
아이들에게 앨리스의 죽음을 어떻게 이야기해줄지 고민하고 의논한 끝에 캐시가 아이들의 눈높이에 맞게 알려 주었고, 다행히 아이들은 잘 받아들여 주었다. 그리고 앨리스의 빈자리는 내가 대신해서 그다음 학기까지 맡게 되었다.
앨리스가 떠나고 8년이 흐른 지금도, 수업이 끝나고 약속이 있다며 내게 손을 흔들고 총총 떠나던 그녀의 마지막 모습을 잊을 수가 없다.
어렸을 때 쥐고 있던 풍선이 갑자기 나를 떠나던 것처럼, 그녀도 너무 갑자기 나를 떠났다. 아무리 발을 동동 구르고 울어보아도 풍선이 다시 내게 돌아올 수 없었던 것처럼, 그녀도 이제 다시 돌아올 수 없다.
앨리스를 생각하며 풍선을 날려 보내던 날, 문득 어린 시절 내가 했던 풍선에 대한 상상이 떠올랐다. 앨리스가 저 하늘 높은 곳 어딘가에 있다가 우리가 보내는 풍선을 받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었다.
이 세상에서 다시 만날 수 없는 사람이어도 그의 아름다운 모습은 우리 마음에 남아 언제까지나 함께한다.
그리움은 희망이 되어 오늘도 우리를 살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