땡큐 포 더 뮤직

by Anna Lee

"노래 한마디 해봐라."

어릴 때 어른들한테 자주 듣던 말이다. 명절이 되면 평소에 자주 못 보던 친척들까지 다 모여 왁자지껄 떠들다가, 밥상 물리고 나면 꼭 아이들을 불러 모아 노래를 시킨다.

올망졸망 같은 또래의 아이들이 갑자기 불려 나와 어른들 앞에 세워진다. 안 나간다고 우는 아이, 기다렸다는 듯이 냉큼 나가는 아이, 나가긴 나갔는데 사람들의 시선이 쑥스러워 온 몸을 비비 꼬며 서있는 아이, 우는 아이를 붙들고 '얘 안 나가면 나도 안 나간다'고 버티는 아이...

한바탕 난리법석을 치르고 나서야 아이들의 노래가 시작된다.


나는 얼른 나가서 제법 노래를 잘 부르던 아이였다. 내가 만 두세 살 무렵 대단한 인기를 얻으며 방영되던 드라마 '아씨'의 주제가를 멋들어지게 불러 젖혀서 어른들의 감탄을 자아내곤 했다고 한다. '옛날에 이 길은 꽃가마 타고...' 하던 첫 소절이 지금도 생각나는 걸 보면 단연 내 인생 최애 노래가 아닐까 싶다.


나는 노래 부르는 게 참 좋았다. 다른 건 어른들의 칭찬이 좋아서 했을지 몰라도, 노래만큼은 내가 좋아서 했다. 노래의 가락도 뜻 모를 가사도 그렇게 좋을 수가 없었다. 노래를 부르고 있으면 마음속 저 아래에서부터 오색찬란한 빛깔의 풍선들이 뭉게뭉게 피어올라 내 마음과 머릿속을 둥둥 떠다니는 기분이었다.


내가 다닌 초등학교에서는 매년 가을이 되면 음악 콩쿠르가 열렸다. 우리 학교 학생이면 누구나 참가할 수 있었다. 악기를 다룰 줄 알거나 노래를 잘하는 아이들의 꿈의 무대였다.

어릴 때부터 동네 가수(?)였던 나는 초등학교에 입학하자마자 당연히 콩쿠르에 나가는 것으로 돼 있었다. 엄마는 내가 다니던 피아노 학원 선생님께 내 노래 연습을 도와 달라고 특별히 부탁까지 하셨다. 주변 어른들은 내가 콩쿠르에 나가기만 하면 대상은 따놓은 당상인 것처럼 말씀하셨다.

그런데 정작 나는 그저 그랬다. 콩쿠르에 나가기 싫은 건 아니었지만, 왠지 망설여졌다. 주위의 부추김에 걸맞게 자신감 뿜뿜도 아니었고, 상이 별로 욕심나지도 않았다. 동네 어른들이나 친척 어른들 앞에서 노래 부르는 건 좋았는데, 모르는 사람들 앞에서 노래를 불러야 한다는 게 무척 부담스럽고 불편했다.

그래도 콩쿠르에 못 나가겠다고 말할 수는 없었다. 엄마나 주변 어른들을 실망시키는 게 싫었다. 엄마의 관심을 잃을까 봐 두렵기도 했다.


등 떠밀려 나가는 콩쿠르였으니 연습이 하고 싶을 리가 없다.

지정곡과 자유곡 두 개의 노래를 불러야 했는데, 지정곡은 음악 교과서에 있던 '작은 별'이었다. 쉬운 노래이기도 했고, 왜 그렇게 귀찮은 마음이 들었던지 대충대충 시간만 때우고 연습을 열심히 하지 않았다. 연습하라는 엄마의 잔소리가 들릴 때는 더 하기가 싫었다.

그리고 콩쿠르 날, 나는 보기 좋게 가사를 틀렸다. 뒷 소절의 가사를 앞 소절에서 불러버린 것이다. 이미 불러버린 가사를 다시 부를 수도 없어서 그만 노래를 멈춰버린 나를 보고 심사위원 선생님들과 반주를 해주시던 음악 선생님, 그리고 지켜보던 학부모님들이 일제히 웃으셨다. 모두 내가 귀엽다는 듯 하하 웃으시는데, 그 순간 학부모님들 사이에 앉아있던 엄마와 눈이 마주쳤다. 돌덩이처럼 굳어있던 엄마의 차가운 표정...

음악 선생님께서 괜찮다고 하시며 다시 반주를 해주셔서 나는 끝까지 노래를 다 부르고 나왔다. 결과는 동상이었다.

가사 실수를 한 것도 동상을 탄 것도 다 괜찮았다. 오히려 끝나고 나니 속이 후련했다. 한결 홀가분한 기분으로 집에 온 나는 그날 엄마한테 엄청나게 혼이 났다. 나 때문에 당신이 창피를 당했다며 내가 연습을 게을리했던 것을 다그치고 비난하셨다.

그날 엄마가 나한테 했던 말들을 다 이해할 수는 없었지만, 내가 엄마를 몹시 실망시켰다는 것 한 가지는 분명히 알 수 있었다. 창피하고 슬펐다.


그날 이후 나는 더 이상 노래를 부르지 않았다. 음악 시간에 다 같이 부르는 합창은 했지만 독창은 하지 않았다. 명절에 어른들이 노래를 시켜도 앞에 나가지 않았다. 노래를 부르는 것이 예전만큼 신나지 않았다.

좀 더 커서는 음악 콩쿠르의 기억 때문에 사람들 앞에서 노래 부르는 게 한동안 힘들었었다.


그래도 나는 여전히 음악이 좋다.

무엇을 하든 늘 음악을 틀어놓는다. 혼자서 좋아하는 노래를 흥얼흥얼 따라 부르면 옛날 어릴 때 노래 부르던 그 기분이 다시 떠오른다, 그 황홀했던 느낌이 다시 생각난다.


내가 좋아하는 'Thank You for the Music'이라는 아바(ABBA)의 노래가 오늘 나의 이야기처럼 느껴진다.

"난 특별할 게 없는 사람이죠, 오히려 재미없는 사람이랍니다. 내가 하는 농담은 언젠가 다 들어본 것들이죠.

그러나 내가 노래를 부르기 시작하면 모두 나의 노래를 들어요.

난 너무 고맙고 자랑스러워서 큰 소리로 노래하고 싶어요.

엄마는 내가 걷기도 전부터 댄서였고 말도 하기 전부터 노래를 불렀대요.

멜로디만큼 사람의 마음을 사로잡는 게 없다는 걸 누가 알아냈을까요? 그게 누구든, 난 그의 팬이죠.

음악이 있음에 감사해요, 내가 부르는 노래들이 있음에 감사해요.

노래가 가져다주는 모든 기쁨에 감사해요.

음악 없이 살 수 있을까요?

노래나 춤이 없다면 우린 무엇일까요?

그래서 내게 음악이 있음에 감사해요."


https://www.youtube.com/watch?v=nMQ1fOEucL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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