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렸을 때는 갖고 싶은 게 참 많았다.
인형, 소꿉장난, 예쁘게 생긴 구두나 옷, 움직이거나 소리가 나는 신기한 장난감들이었다.
좀 자라서 가위질을 하게 되면서부터는 문방구에서 팔던 종이인형을 큼지막한 종이박스에 모아서 들고 다녔다. 갖가지 옷과 액세서리를 이것저것 바꿔가며 종이인형에게 입혀보던 재미, 친구랑 각자의 인형을 서로 코디해 주고 평가해 주던 즐거움을 잊을 수가 없다. 심지어 취향대로 옷과 인형들을 종이에다 그리고 오려내어 우리만의 종이인형을 만들기도 했다. 지금도 종이인형을 가지고 놀라면 재미있게 놀 수 있을 것 같다.
남동생이 있는 덕분에 딱지치기나 구슬치기, 장난감 병정 놀이도 했었다. 놀이 끝에는 동생과 한바탕 싸움이 일어나기도 했지만, 인형놀이와는 또 다른 재미가 있었다. 이기거나 지는, 잃거나 따는 경쟁의 짜릿함과 뽜이팅(^^)도 즐거웠다. 나는 종종 딱지나 구슬을 모았다가 동생한테 주기도 했다.
내가 가장 애지중지했던 장난감은 마론 인형이었다. 나는 마론 인형 네댓 개에 침대와 옷장까지 구비하고 있었다. 인형 옷 여러 벌과 신발, 가방들도 갖고 있었다.
시내 백화점 윗 층에 마론 인형 옷을 파는 코너가 있었다. 투명한 비닐 포장지 안에 알록달록 인형 옷들이 나 좀 보라는 듯 들어 있었다. 앙증맞고 세련된 인형 옷들이 지금도 눈에 선하다. 그 옷들에 대한 나의 갈망은 대단해서, 나는 헐벗어도 좋으니 저 예쁜 옷을 꼭 사다가 내 인형들에게 입혀주고야 말리라는 집념 같은 게 생겨나곤 했다.
엄마 손을 끌고 그곳으로 가서는 한참 동안 황홀하게 인형 옷들을 바라보았다. 물론 바라보는 것에서 그칠 리가 없다. 운 좋게 엄마가 사 주는 날도 있었지만, 마음에 드는 인형 옷을 사 달라고 조르다가 혼나고 대성통곡을 하며 집에 오기 일쑤였다. 집에 들어올 때까지도 백화점에서 했던 "나 저거 사 줘"라는 말은 눈물 콧물에 범벅이 되어 내 입에 달려있었다. "나 저거 사 줘"에 시달리다 못해, 엄마는 언젠가부터 백화점에 가면 인형 옷이 있는 층은 아예 건너뛰고 가지 않았다.
그렇게 초등학교 시절까지 내내 계속됐던 내 인형 사랑은 어느 날 갑자기 끝이 났다.
중학교에 갓 입학하고 며칠 지나지 않은 어느 날, 학교 갔다 와보니 인형들이랑 살림살이들이 보이지 않았다. 이제 중학생이 되었으니 공부에 방해된다고 엄마가 내 인형들을 몽땅 싸서 이웃집에 갖다 줘버린 것이다. 그때만큼 망연자실했던 때가 살면서 또 있었을까 싶다.
엄마가 나한테 미리 물어보지 않고 내 물건들을 치워버린 것에 대해 몹시 화가 났지만, 언제나 그렇듯 엄마 말을 들을 수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그래, 난 이제 중학생이니까. 중학생이 무슨 인형놀이야, 그치?' 이렇게 스스로를 위로했다. 엄마 말이 맞을 거라고 억지로 믿어버렸다.
그런데 가슴 한 구석은 몹시 허전했다.
마론 인형처럼 새로운 옷이나 장신구들로 흥미를 유지시킬 수 있는 장난감 말고, 대부분의 장난감들은 얼마 못 가 내 호기심을 잃고 싫증을 얻은 후 방구석 어딘가로 잊혔다.
동생이 만 세 살, 내가 만 여섯 살이 채 되기 전 무렵이었던 것 같다. 그때는 동네에 장난감 파는 아저씨들이 가끔씩 오곤 했다. 그날도 오리, 강아지 등 여러 가지 동물 모양에 바퀴와 줄이 달려 있어서 끌고 다니며 놀 수 있는 장난감들이 내 마음을 송두리째 빼앗아가고 말았다.
나는 동생과 함께 "나 저거 사 줘" 연합작전을 펼치다가 엄마한테 처참하게 혼이 났다. 동생은 잘못했다고 빌었지만 나는 끝까지 빌지 않았다. 내가 뭘 잘못했는지, 왜 빌어야 하는지 몰랐을뿐더러 장난감에 꽂힌 내 마음에 다른 걸 생각할 겨를은 없었다.
우리를 혼내고 나서 엄마가 미안했는지 결국 그 장난감을 사주셨다. 눈가에 눈물을 그렁그렁 매달고 아직 서러운 마음을 채 진정시키지도 못한 채 노란 오리 장난감을 여기저기 끌고 다녔던 기억이 난다.
그리고 곧 그 장난감은 내게서 잊혀졌다. 그걸 얻기 위해 들였던 공에 비하면 너무 허무한 결말이었다.
장난감을 사달라고 조르다가 몇 번 혼나고 나서는 작전을 바꿨다. 집에 손님이 오면 "나 저거 사 줘"를 시작하는 것이다. 손님이 있을 땐 엄마가 친절한 엄마로 변하기 때문에 원하는 장난감을 얻을 수 있었다.
동네에 놀이기구를 태워주는 아저씨가 오기도 했었다. 우주선이나 자동차 모양의 탈것들이 빙글빙글 돌아가는 놀이기구였다. 그걸 타면 별나라도 달나라도 다 갈 수 있을 것 같았다.
손님들이 있을 때 놀이기구를 타고 싶다고 말하면 엄마에 앞서 손님들 중 누군가가 내 손에 10원짜리를 쥐어주기도 했다. 나는 동전을 손에 꼭 쥐고 놀이기구 아저씨가 떠나고 없을까 봐 마음을 졸이며 뛰어가곤 했다. 아저씨가 나를 훌쩍 안아 우주선에 태워주면 신이 나서 눈앞에 펼쳐지는 풍경들을 바라보았다. 우주선을 타고 위에서 내려다보면 신기하게도 매일 보는 동네의 모습이 다르게 보였다. 아저씨가 나를 잊어버리고 영영 안 내려줬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지금 생각하면 놀이에 열중했던 것, 놀이를 같이 할 친구를 만나 함께 놀이를 확장시키며 새로운 재미를 누렸던 것, 그리고 한때는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빠졌던 장난감을 어느새 나 몰라라 팽개치고 새로운 장난감으로 갈아탔던 것 모두가 성장의 과정이었다. 그런 과정들을 수없이 반복하면서 나는 자라날 수 있었던 것이다.
딸아이 둘을 키우면서 내가 어릴 때와는 비교도 되지 않을 만큼 좋은 장난감들을 많이 보았다. 아이들의 손을 잡고 장난감을 사주러 갔다가 예쁜 인형들을 넋을 놓고 바라본 적도 있다. 그 수많은 장난감 들에서 아련한 어린 시절의 기억을 엿보고 가슴이 뜨거워짐을 느꼈다.
이제 엄마한테 조르지 않아도 장난감들을 얼마든지 살 수 있는데, 내 마음은 더 이상 그때 그 마음일 수가 없다. 이제 더 이상 장난감이나 놀이가 세상에서 제일 중요한 이슈일 수가 없다.
“나 저거 사 줘”는 단순한 장난감 욕심을 넘어, 어린 시절 엄마 아빠에 대한 구애였다. 그분들이 날 사랑하는지 테스트해보고 싶은 마음, 엄마의 관심을 끌기 위한 작전이었는지도 모른다.
"나 저거 사 줘." 문득 이 말을 하고 싶을 때가 있다.
다시 돌아갈 수 없어서 안타까운 것들이 있다.
다시 얻을 수 없어서 소중한 것들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