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때 나를 보살펴 주던 언니가 있었다.
영자 언니 - 언니의 성도 모르고 얼굴도 잘 생각나지 않지만, 나의 어린 시절 기억 속에 깊이 새겨진 이름이다.
엄마와 아빠가 결혼하고 나서부터 줄곧 외가와 우리 집을 왔다 갔다 하며 살림을 돕던 가사도우미 언니라 하니, 아마 태어날 때부터 나를 돌봐 주었을 것이다.
워낙 어릴 때라 언니와의 기억은 많지 않다. 그러나 언니 없는 나의 만 서너 살 때를 이야기하기 어려울 정도로, 언니와 보낸 시간이 많은 듯하다. 나중에 어른들한테 듣기로도 나는 영자 언니와 거의 매일 붙어있다시피 했다고 한다. 엄마 품에 안겼던 기억보다 언니 품에서 놀던 생각이 더 많이 난다.
지금도 잊혀지지 않는 영자 언니에 대한 슬픈 기억이 있다.
그날은 언니가 우리 집을 떠나는 날이었다. 외가에 잠깐 갔다가 다시 오는 게 아니라 아주 떠나는 날이었다.
내가 떼쓰고 울까 봐 어른들이 영자 언니와의 이별을 쉬쉬했을 텐데 어떻게 알았는지 나의 서러움은 서서히 발동이 걸리고 있었다.
아마 집에서부터 언니를 붙잡고 따라갔을 것이다. 내가 살던 아파트 앞마당에서 꺼이꺼이 목놓아 울며 언니를 꽉 잡고 안 놔주던 생각이 난다. 언니도 엉엉 울면서 엉엉 우는 나한테 잡힌 옷자락을 추스르려 안간힘을 쓰고, 다른 어른들은 내 팔과 다리를 잡고 언니에게서 떼어내려고 애를 썼다. 나는 악쓰고 발버둥을 치면서도 언니를 놓치지 않으려고 있는 힘껏 언니의 치맛자락을 움켜잡았다.
"난리도 그런 난리가 없었지. 그러다가 너 까무러치는 줄 알고 얼마나 놀랐는지... 정신을 차리고 보니 동네 사람들이 무슨 일 난 줄 알고 다 나와서 구경하고 있더라니까. 암튼 네 성질머리는 아무도 못 말렸다." 내가 어른이 되고 나서 어느 날 엄마가 하신 말씀이다.
언니는 그때 시집 가느라고 더 이상 우리 집에 올 수 없었다고 한다. 마음이 착하고 온순해서 복 받고 잘 살 거라고 어른들이 말씀하시는 걸 들었다. 시집가는 게 뭔지, 왜 나하고 더는 놀아줄 수 없는지 이해하고 언니의 결혼을 축복해 주기엔 나는 그때 너무 어렸다.
나는 언니가 떠나고 나서도 한동안 언니를 찾으며 울었다고 한다.
그때의 슬프고 그리웠던 감정이 지금도 기억난다.
훗날 대학에서 아동기 애착에 대해 공부하면서 나는 부모님과 더불어 영자 언니를 떠올렸었다.
애착은 가장 가까운 사람과 연결되는 강렬하고 지속적인 정서적 유대관계이다. 영국의 심리학자이자 정신분석학자인 보울비(Edward John Mostyn Bowlby, 1907-1990)에 의하면, 특정한 사람과의 애착은 낯선 환경에 대한 두려움을 견디게 해주는 안정기반이 되어 아이들이 주위 환경을 자유롭게 탐색할 수 있게 해준다고 한다. 양육자와의 관계는 모든 인간관계 가운데 가장 기본적인 것으로, 성인이 된 후에도 대인관계에 지속적으로 영향을 미친다.
내가 영자 언니를 기억하고 있는 것이 참 감사하다. 그리고 기억하지 못하더라도 내가 자라나는 동안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나에게 영향을 주었을지 생각해 보면 신기하다.
살아가면서 만나고 헤어지는 사람들 모두가 소중하다.
영자 언니의 흔적은 언젠가 동물원에서, 한 손은 풍선을 붙들고 다른 한 손은 언니의 손을 잡은 나랑 나란히 찍은 흑백사진 한 장 속에 남아있다.
그리운 언니, 그때 내가 너무 어려서 미처 하지 못한 말은,
고맙습니다 그리고 사랑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