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어는 영어일 뿐

by Anna Lee

포틀랜드의 눈부신 여름이 저만치 모퉁이를 돌아올 무렵, 영어 튜터 제니퍼를 처음 만났다.

포틀랜드의 여름은 천국의 날씨가 이렇지 않을까 싶을 만큼 완벽하다. 높지도 낮지도 않은 적당한 하늘 높이, 파랗다는 형용사가 가장 잘 어울리는 하늘색, 맑은 공기, 부드러운 바람, 짙푸른 산 등 그곳의 여름을 표현할 어휘는 부족하기만 하다. 여름이 가면 10월부터 다시 새 여름이 오기까지 부슬부슬 비 내리는 날이 잦다. 그러니 누구나 여름을 기다릴 뿐만 아니라 실컷 즐기지 않을 이유가 없는 것이다.


집 정리가 끝나 한숨 돌리고 나니 여러 가지 삶의 문제들에 본격적으로 부딪히기 시작했다. 그 첫 번째는 의사소통 문제였다.

미국에 오면서 이들이 쓰는 언어인 영어에 대해 나는 그다지 크게 걱정하지 않았었다. 잠깐 살다 돌아갈 생각이었기에, 그리고 학교 때 배운 영어로 어떻게든 되겠지 치부했었다. 그런데 막상 미국에 와 접한 현실은 애초의 생각과 많이 달랐다.

집 밖으로 한 발짝만 나가도, 어디서 전화만 걸려와도, 태어나면서부터 줄곧 쓰던 말이 아닌 다른 말로 소통해야 하는 게 어렵고 불편했다. 오래전에 즐겨 보았던 외화 시리즈 <Twilight Zone>의 한 에피소드가 갑자기 생각났다. 어쩐 일인지 하루아침에 세상 모든 언어가 바뀌어버려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을 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절망하던 한 남자의 모습이 선명하게 떠올랐다. 세상이 온통 등을 돌린 듯한 그 막막함이 이젠 내 것이 된 것 같았다.

학교 때 교과서에서 배웠던 영어와 이곳 사람들이 쓰는 현실 영어는 많이 달랐다. 심지어, 언제 어디서나 반드시 쓰일 줄 알았던 'How are you?' 말고 사람들은 다른 표현을 더 많이 썼다. 식당에서 원하는 음식 하나를 주문하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었다. 언어는 수학처럼 공식이 있거나 답이 정해진 게 아니어서 상대방이 무슨 말을 할지, 상황에 따라 어떤 어휘를 선택해야 할지 암담할 때도 많았다. 아이들의 학교에서는 거의 매일 가정통신문이 왔으며, 읽어봐야 할 여러 가지 두툼한 서류도 만만치 않았다. 학부모로서 학교 행사에 참여하거나 정기적으로 담임 선생님과 상담해야 하는 날도 있었다.

안 되겠다 싶어, 적당한 클래스를 찾을 때까지 튜터에게 영어를 배워 보기로 했다. 내 영어 단계에 맞춰 가르쳐주는 선생님을 갖게 되면 짧은 시간에 효율적으로 영어 실력이 향상될 수 있을 거란 생각에서였다.

나는 지인의 소개로 *커뮤니티 칼리지에서 영어를 가르치고 있던 제니퍼를 만나게 되었다. 처음 우리 집을 방문했을 때 그녀는 임신 8개월의 몸이었다. 제니퍼가 아시아 문화에 관심이 많고 아시아 사람들을 친근하게 느끼는 이유는 단지 그녀가 외국 학생들에게 영어를 가르치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그보다는, 대학 때 기숙사 룸메이트가 한국 학생이었던 게 그녀에게 깊은 인상을 남긴 것 같았다. 한국인 룸메이트 덕분에 오징어도 구워 먹고 김치도 먹었다며 즐거운 추억으로 간직하고 있다고 했다.

우리는 서로 편해서 그랬는지, 몹시 조심스러웠을 수도 있는 주제 ⎯ 인종, 종교, 한국 문화와 미국 문화에서 서로 잘못 알고 있던 것들 ⎯ 에 대해서도 거침없이 이야기를 나누곤 했다. '난 선생이고 넌 학생이야' 식의 사무적이고 좁힐 수 없을 것 같은 거리감이 제니퍼에게서는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그녀가 아들 케일럽을 낳고 난 후에도 우리는 계속 만나 함께 책을 읽고 이야기했다. 그녀와 같이 읽은 가장 기억에 남는 책은 미국 고등학생들의 필독서이기도 한 <To Kill a Mockingbird>(앵무새 죽이기, 하퍼 리, 1960)이다. 1930년대 앨라배마 주, 저자 하퍼 리의 어릴 적 이웃과 생활 모습이 엿보이는 자전적 소설로 인종차별, 계층 간 갈등, 사회적 불의 등의 내용은 미국을 잘 모르던 내게 충격으로 다가왔다.

나는 제니퍼를 통해 영어뿐 아니라 미국이란 나라에 대해서도 조금씩 알아 갔다. 머리카락, 눈동자 색은 나와 다르지만 신기하게 서로 통하는 데가 많았던 제니퍼, 그녀와 함께 보낸 시간들은 소중하고 고마운 기억으로 남아있다.


타지 생활에 적응하고 낯선 문화에 대한 이해도를 높이기 위해 언어를 배우는 일은 매우 중요하다.

다른 나라의 언어를 배우는 길은 클래스 참여, 개인 튜터와의 공부로 대략 나눌 수 있다. 자신에게 맞는 방법을 선택하거나 두 가지 방법을 병행해도 좋다. 배우려 하는 언어 환경에 최대한 나 자신을 노출시키고, 때에 따라서는 모국어를 잠깐 배제하고 현지 언어로만 읽고 쓰고 말하고 생각하는 훈련을 하는 것도 효과적이다.

클래스에서 영어를 배울 때 간과하기 쉬운 것은, 클래스에서 사용하는 어휘나 말의 속도가 실제 생활의 그것과는 조금 다르다는 것이다. 클래스 안에서는 교사가 학생들을 배려해 천천히 말해주고, 관용구나 속어를 잘 사용하지 않기 때문에 실생활에서 미국인들이 쓰는 말과는 차이가 있다. 이러한 클래스 영어가 영어의 전부일 거라고 생각한 나머지 자신의 영어 실력이 매우 높은 수준이라 착각하고 실제 상황에서 대화를 시도하다가 낙심하는 경우도 많다. 클래스나 튜터와의 수업에서 모든 걸 얻으려 기대하지 말고 미드를 보거나 친구를 사귀는 등 배운 것을 토대로 실제 생활에서 꾸준히 활용, 공부해야 한다.

멋있는 발음, 그럴듯한 말들의 나열은 보여주기식 영어일 뿐 원활한 소통의 요소로 부족하다. 물론 발음이 비교적 정확하다면 그만큼 뜻을 잘 전달할 수 있겠지만, 미국 사람이나 영국 사람으로 다시 태어나지 않고서는 어차피 원어민들과 똑같이 발음할 수는 없다. 발음에 신경 쓰거나 쿨한 표현에 연연하는 대신, 늘 주변을 세심하게 관찰하고 관심 있는 분야의 책을 놓지 않는 것이 풍부한 대화의 소재를 얻는 길이다.


내가 지금 살고 있는 뉴욕은 말 그대로 샐러드 보울(salad bowl)이다. 다양한 문화 다양한 언어가 혼재되어 조화를 이루는 곳이다. 영어가 통하지 않는 지역도 있고 영어를 잘 못하는 사람들도 많다. 자신의 생활과 밀접한 어휘들만 알고 소통할 수 있다면 살아가는 데 큰 지장은 없다. 영어를 유창하게 하는 것만이 꼭 잘 사는 길은 아니다. 영어는 영어일 뿐이다.

사람들과 영어로 대화를 나누고 책을 읽는 것이 이 나라의 문화를 이해하는 데 많은 도움이 되었다. 그리고 그럴수록, 아이러니하게도 모국어에 대한 사랑이 더욱 깊고 강렬해졌다. 태어나면서부터 써오던 말과 글이 어떤 것이고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 외국어를 배우며 더 절실히 깨달을 수 있었다.


* 커뮤니티 칼리지(community college): 지역 사회에서 운영하는 2년제 공립대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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