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텔과 맥도날드

by Anna Lee

포틀랜드에 살고 있는 지인들에게 듣기로, 포틀랜드는 지난 몇 년간 인구도 늘고 집 값도 오르는 등 제법 큰 도시로 자리매김했다고 한다. 그러나 우리가 처음 비행기에서 내리던 스무 해 전만 해도 포틀랜드는 작고 조용한 도시였다.

이민 가방이라 불리던, 지퍼가 주렁주렁 달린 커다란 가방 속에 김치를 비롯한 온갖 먹거리와 당장 입을 옷들을 꽉꽉 담아 가져갔던 기억이 새롭다. 포틀랜드 공항 짐 찾는 곳에서 내 가방이 눈물 나게 반가웠던 순간도.


마중 나와준 남편 선배의 차를 타고 공항을 벗어났다.

생전 처음 와본 미국의 거리는 생각보다 매우 촌스러웠다. 높은 빌딩은 눈을 씻고 봐도 찾을 수 없었고, 야트막한 상가 건물들과 가로수만 즐비했다. 그 후 다른 도시에 가보기 전까지 나는 미국이 어디나 다 그런 줄 알았다. 도시와 *서버브의 차이도 모를 만큼 미국에 대해 아는 게 없었고, 잠깐 살다 갈 생각에 별로 관심도 없었다. 진짜 촌스러웠던 건 어쩌면 나였는지도 모른다.

자그마치 50개 주와 특별구 한 개(워싱턴 D.C.)로 이루어진 연방제 공화국, 인구 3억이 넘고 땅덩이는 우리나라의 100배가 넘는 미국이란 나라를, 나는 살아온 지 스무 해가 된 지금도 여전히 알아가고 있는 중이다.

각각의 주마다 법과 행정, 주거환경이 모두 다르므로 코끼리 다리 만져보는 식으로 미국에 대해 안다고 말하는 건 코미디, 그런 말들을 믿고 미국을 코끼리 코나 다리만으로 생각한다면 그건 블랙 코미디일지도 모른다.


우리는 남편 선배를 따라간 한국 식당에서 밥을 먹었다. 비행기에서 내리자마자 덮쳐 온 졸음에 온몸이 흐물흐물해진 아이들과 나는 어디든 얼른 눕고만 싶었지만, 낮과 밤이 완전히 뒤바뀐 시차를 이겨내려면 먹고 움직이고 말해야 했다. 서울을 방문할 때마다 시차를 이겨내는 건 이제 익숙한 일이 됐지만, 그때만 해도 시차는 넘어야 할 또 다른 산이었다.

나는 식당의 음식이 너무 맛이 없어 깜짝 놀랐다. 밥도 반찬도, 마치 한국 음식이라곤 한 번도 먹어본 적 없는 외국인이 레시피만 보고 서툴게 끓여낸 음식 같았다. 지금과는 비교도 안 되게 한국 식당이 드물고 한국 마트들도 규모가 작을 때였다. 우리나라 음식이 K-Food라 불리며 이곳에서 엄청난 인기를 얻게 되리라곤 그때는 상상도 못 했다.

그날부터 나는 입맛을 잃고 몸무게도 잃어갔다. 얼마 지나지 않아 크림과 설탕을 잔뜩 넣은 커피를 즐겨 마시며 잃었던 몸무게를 채우고도 남게 됐지만, 그리고 지금은 입맛을 잃어 보려고 아무리 애를 써도 절대로 할 수 없는 일이 되고 말았지만.


드디어 짐을 풀 수 있는 호텔에 도착했다. 말이 호텔이지 그 이름에서 풍기는 고급스러움과는 매우 거리가 먼 곳이었다. 서너 평쯤 돼 보이는 어둠 컴컴한 방 안엔 작은 침대 두 개와 조그만 싱크대가 있었고 바닥에선 오래된 카펫 냄새가 났다.

긴 비행과 시차에 녹초가 된 우리는 침대에 널브러져 정신을 잃듯 잠에 빠졌다. 그러고는 두 주일도 넘게 그 방에 머물게 되었다.

남편은 도착 바로 다음 날부터 출근을 했다. 나는 남편 회사의 직원에게서 빌린 전기밥솥에 밥을 하고 서울에서 가져온 라면, 고추장, 김치 등으로 아이들과 끼니를 해결했다. 당장 마트가 어디 있는지 식당이 어디 있는지 몰랐고, 알았다 해도 자동차 없이는 움직일 수가 없었다. 지하철은 아예 없고 버스도 잘 다니지 않는 곳이었다.

하루 종일 어두운 방 안에서 아이들과 TV를 보며 시간을 보냈다. 다행히 첫째는 남편 지인의 도움을 받아 전학 수속을 마치고 우리가 살게 될 동네 초등학교에 다니기 시작했다.

우리는 남편의 전임자 가족이 살던 집을 고스란히 이어받아 들어가기로 돼있었다. 그런데 우리가 도착할 때까지도 이사 준비를 안 하던 전임자 가족은 뚜렷한 이유 없이 차일피일 귀국을 미루고 있었다. 그들이 집을 비워줄 때까지 우리는 임시 거처에서 지낼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산 너머 산이구나 생각했다. 하루라도 빨리 정착을 하고 아이들이 새로운 환경에 적응해 안정될 수 있기만을 바랐다.


어느 날 방에 갇혀있기 너무 답답했던 나는 아이들을 데리고 호텔을 나섰다. 가까운 곳에 맥도날드가 있는 걸 봐놓았던 터라 거기라도 가볼 요량이었다. 그러나 바로 옆인 것처럼 보이던 맥도날드는 걸어도 걸어도 닿아지지 않았다. 서버브에서는 아무리 가깝게 느껴져도 걷기엔 먼 경우가 많다는 걸, 도시에서 나고 자란 내가 알 턱이 없었다.

한참을 걸은 끝에 드디어 맥도날드 문을 밀고 안으로 들어갔다. 실내 놀이터도 있는 제법 큰 맥도날드였다.

나는 호기롭게 점원에게 다가가 음식을 주문하기 시작했다. 햄버거, 감자튀김, 음료수 정도는 굉장히 간단한 주문일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다. 점원은 이것저것 많은 질문을 했고, 나는 그의 말을 하나도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아마도 콤보로 먹을 거냐, 사이드 메뉴 추가할 거냐, 소스는 뭘 줄까, 뭐 다른 거 더 필요한 건 없냐 등등의 질문이었을 것이다.

당황한 나는 두 볼이 화끈거림을 느꼈지만 간신히 힘을 내서, 배를 누르면 같은 말을 반복하는 곰인형처럼 햄버거 이름만을 계속 말했다. 다행히 점원은 그야말로 친절과 끈기로 내 말을 들어주고 아이들과 내가 먹을 햄버거와 음료수를 내주었다.

아이들과 테이블에 앉아 주문한 음식을 먹으며 아, 쉬운 게 없네, 한숨이 나왔다. 미국에 온 걸 처음으로 실감한 날이었다.


* 서버브(suburb): 도시 외곽의 한적한 주거 지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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