셀 수 없이 많은 송별회를 했다.
가족과 친구들, 첫째 아이 학교 친구들과 학부모들 모두 떠나는 우리를 축복해 주고 다시 만날 날을 기약했으며 우리를 만나러 미국에 놀러 오겠다고 약속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딱 3년만 여기 살다 고향으로 돌아가려 했던 나는 강산이 두 번이나 바뀐 지금까지 타향에 머물고 있다. 어쩌다 보니 태어나 자란 도시를 생전 처음 떠나게 되었고 남편의 일이 끝나는 대로 고향으로 돌아갈 생각이었지만, 어느새 지나온 이곳에서의 긴 시간을 생각하면 사람의 앞일은 정말 아무도 모르며 삶에는 계획했던 일보다 뜻하지 않은 일이 더 많은 것 같다.
남편이 파견 발령을 받은 곳은 오리건 주 북서쪽의 포틀랜드라는 작은 도시였다. 장미가 많아 로즈시티라고 불리며, 여름을 제외하고는 거의 1년 내내 부슬부슬 비가 오는 곳이다.
포틀랜드는 2008년 로버트 패틴슨(에드워드)과 크리스틴 스튜어트(벨라)가 출연한 영화 <트와일라잇(Twilight)>의 촬영지이기도 하다. 영화의 배경은 워싱턴 주 포크스였지만 대부분의 촬영은 포틀랜드에서 이루어졌다고 한다. 깊고 아름다운 숲이 많은 곳이어서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짐을 부치고 살던 집을 비우고 첫째의 학교에서 전학에 필요한 서류들을 떼기까지 머릿속은 텅 빈 듯 고요하고 마음은 무덤덤했다. 낯선 곳에서 살 생각을 한 번도 해본 적이 없어 몹시 불안할 줄 알았는데 오히려 평온하기 그지없었다. 새로운 곳에 대한 관심이나 다른 형태의 삶에 대한 기대도 그리 많지 않았다. 다시 올 거니까, 잠깐 살다 고향으로 돌아올 거니까, 몇 년간의 삶은 나중에 돌아보면 아주 잠시에 불과할 테니까, 나 자신을 다독였다.
그날, 이른 아침의 공항은 여행을 앞두고 들뜬 사람들로 붐볐다. 나의 부모님, 남편의 부모님과 공항에서 낯설고 어색한 이별을 했다.
나는 그다지 씩씩한 맏딸이 아니었다. 가까이 살면서 마음 한구석을 부모님께 의지하며 지내는 데 익숙해 있었다. 비로소 진정한 홀로서기의 시간을 맞이한 나는 아이들의 손을 잡고 남편을 따라 미국행 비행기에 올랐다. 애써 마음을 다잡고 씩씩하려 안간힘을 쓰면서. 약해지는 나 자신을 보는 게 앞으로 펼쳐질 삶보다 더 두려웠기 때문이다. 그리고 당장은 네 살배기 둘째가 처음 타보는 비행기에서 멀미나 하지 않을지, 아이들이 긴 비행시간을 잘 견뎌줄지 걱정부터 앞섰다.
포틀랜드로 바로 가는 비행기 편이 없어 중간에 한번 비행기를 갈아타야 했다. 아이들이 아홉 살, 네 살이었으니 잠시나마 비행기에서 내려 숨을 돌릴 수 있어 다행이었다. 하네다 공항에서 다음 비행기를 타기까지 서너 시간밖에 틈이 없었다. 공항 밖으로 나가기엔 너무 촉박한 시간이라, 우리는 공항 내 식당에서 밥을 먹었다. 조그만 일본라면집에서 그때 먹은 라면 맛은 지금도 잊을 수가 없다. 아이들도 바닥을 핥는 것도 모자라 그릇까지 먹어버릴 기세였다.
집을 떠난 허전함, 잠깐의 여행이 아니라 타지로 아예 살러 간다는 불안감, 그리고 눈앞에 펼쳐지고 있는 새로운 환경이 주는 설렘 같은 것들에 범벅이 된 한 끼라 그랬을까. 뭔가를 먹는 게 단순히 배를 채우기 위해서만은 아니라는, 먹는 행위에 대한 새삼 철학적인 생각이 드는 순간이었다.
다시 비행기에 오른 우리는 정말 긴 시간을 날아 드디어 포틀랜드에 닿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