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 커뮤니티 칼리지에서 운영하는 ESL(English as a Second Language; 영어가 모국어가 아닌 외국인들이 영어를 배우도록 돕는 프로그램) 클래스에 나가게 되었다. 미국에 와서 두 달쯤 됐을 때였다.
우리 반 학생들은 나처럼 미국에 갓 온 한국 사람들과 중국, 타이완, 인도, 필리핀 등 다양한 나라에서 온 사람들이었다. 영어도 배우고 친구도 사귈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 수업은 1주일에 두 번, 읽기와 쓰기 과제도 만만찮게 있었다. 우리 반을 맡아 가르친 분은 차분하고 다정한 금발의 낸시 선생님이었다.
수업의 앞부분에서는 문법과 어휘를 공부하고, 나머지 시간은 주제를 정해 이야기를 나누었다. 문화, 사회, 역사 등 여러 분야의 주제를 다양한 문화적 배경을 가진 사람들과 토론하는 건 무척 재미있었다. 서로 유창한 영어가 아니어서 더 편했다. 처음엔 쑥스러워 말을 잘 안 하다가 친해지니 너도나도 말하려고 하는 등 수업 분위기도 자유로웠다.
우리는 자주 밥을 같이 먹었다. 한 달에 한 번 각자 자기 나라의 음식을 가져오는 팟럭 파티도 했다. 다른 문화와 음식, 식사 예절을 생생하게 배우고 경험할 수 있는 시간이었다. 건강이나 종교적인 이유로 특정 음식을 먹지 않는 사람들은 "소고기? 돼지고기? 닭고기?" 이러면서 음식에 뭐가 들었는지 일일이 묻고 다녔다. 다양한 사람들이 모여 사는 곳임을 실감한 순간이었다. 한편으로는, 아무거나 다 먹어도 되는 내 처지가 새삼 편하게 느껴지기도 했다.
가끔은 함께 식당에 가서 밥을 먹었다. 낸시 선생님은 한 번도 안 빠지고 우리와 같이 식당에 가셨다. 선생님에겐 매우 이국적이었을, 그래서 조금은 먹기 힘들었을 음식도 가리지 않고 드셨다. 미국에 온 지 얼마 안 되었던 우리는 수업이 끝나고 나서도 더 많은 이야기를 나누고 싶었다. 우리에겐 어쩌면 영어 한 마디보다 정서적인 유대관계가 더 절실했는지 모른다. 낸시 선생님은 그런 우리와 늘 함께였다.
선생님은 우리나라에서 아들을 입양해 키우셨다. 선생님이 한국의 문화와 음식에 대해 깊은 관심을 가졌던 이유이기도 하다. 선생님의 아들 케빈이 우리 클래스를 방문했던 적도 있는데, 열일곱 살 케빈은 틴에이저 특유의 발랄함으로 우리를 많이 웃게 했었다.
시카고로 이사한 후에도 나는 이메일과 전화로 낸시 선생님과 소식을 나누며 지냈다. 우리의 글을 모아 만들었던 문집이 나오자 선생님은 내게도 우편으로 보내주셨다. 영어 공부를 게을리하지 말라는 뜻으로 ESL 교재를 같이 넣어 보내는 것도 잊지 않으셨다.
주고받은 많은 이메일 속에서, 낸시 선생님은 20대의 두 딸을 통해 경험한 성인 자녀와의 관계와 부모의 역할에 대해 많은 조언을 해주셨다. 나의 아이들이 모두 20대가 된 지금, 그때 선생님의 말씀이 새록새록 생각난다. 새로운 곳에서 적응하느라 고군분투하는 이야기들을 적어 보내면 선생님은 위로와 격려를 아끼지 않으셨다. 나는 이메일에서 선생님을 엄마라고 부르기도 했는데 그때마다 선생님은 굉장히 감동받고 기뻐하셨다.
이사 후 남편의 출장으로 다시 포틀랜드를 방문하게 됐을 때, 낸시 선생님은 우리 가족을 집으로 초대해 주셨다. 집 밖까지 달려 나와 우리를 반겨주시던 선생님의 환한 얼굴을 지금도 잊을 수가 없다.
어느 날, 클래스 친구였던 S한테서 선생님이 암 진단을 받았다는 소식을 들었다. 적잖은 충격이었지만, 우리 모두는 마음을 모아 선생님을 위해 기도하고 응원했다. 긍정적이고 씩씩한 분이니 꼭 다시 건강해지실 거라고 우리는 굳게 믿었다.
선생님은 병원에 있는 동안 나를 위해 직접 뜬 목도리, 그리고 다시금 삶에 감사하게 된다는 글을 보내 주셨다. 지금도 겨울이 오면 그때 선생님이 보내주신 털목도리를 두르며 선생님을 생각한다. 나는 늘 선생님께 받기만 했던 것 같다.
진심으로 제자들을 사랑하고 교사로서의 길을 운명으로 생각하던 선생님을 나는 오래오래 잊지 않으려 한다. 아이들을 가르치는 교사가 되어서도 자주 낸시 선생님을 떠올렸었다. 닮고 싶은 스승을 만나는 건 세상을 살아가며 얻을 수 있는 값진 행운인 것 같다.
스스럼없이 우리의 친구가 돼주셨던 분, 자신의 시간과 노력을 아낌없이 내어주셨던 분, 그리고 새로운 언어와 문화 앞에서는 언제나 당신도 학생이셨던 분 ⎯ Nancy Lee Kessel 선생님.
선생님은 여전히 건강하고 열정적인 삶을 살고 계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