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이 중학교에 입학하기 전까지 킨더가튼과 초등학교에서 줄곧 자원봉사를 했다. 아이들의 학교 생활이 궁금했을 뿐만 아니라, 미국 학교는 어떤 곳일까 호기심도 컸다.
내가 알고 지내던 학부모 대부분은 일을 하는 사람이 아니라면 아이들이 다니는 학교에서 기꺼이 자원봉사를 하곤 했다. 학기 초, 자원봉사 신청서에서 참여 가능한 학교 행사나 업무를 선택해 이름과 이메일 주소, 전화번호를 적어 넣으면 누구나 참여할 수 있었다.
맨 처음 했던 일은 학습자료를 복사해 학급 별로 정리해 놓는 것이었다.
미국에 오기 전 서울에서 첫째 아이가 초등학교 3학년까지 다닌 학부모였지만, 나에게 학교는 여전히 어렵고 조심스러운 곳이었다. 스승의 그림자도 밟아서는 안 된다, 학교에 가면 선생님 말씀 잘 들어라 교육받은 세대라 그랬을까. 낯선 이곳의 학교는 더 어려운 미지의 세계였다.
내가 맡았던 일은 단순하고 시간도 별로 안 걸려서, 익숙해지니 곧 심심해졌다. 마음 같아서는 복사실을 벗어나 여기저기 돌아다녀보고 싶었지만 그럴 용기는 안 났다.
하루는, 잠깐 쉬고 있는데 선생님 한 분이 복사실에 들어왔다. 마침 아이들이 다른 선생님과 특별수업 중이라며 그는 내게 말을 붙여왔다. 우리말이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반가운 마음만 앞설 뿐, 나는 그 선생님이 하는 말의 대부분을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그의 말 한마디 한마디를 귀에 주워 담으려고 온몸과 마음을 쫑긋 세우고 머리가 터져라 집중했다. 어찌어찌 대화는 잘 이루어지고 선생님은 밝은 얼굴로 다음 시간 자료를 갖고 나갔지만, 가뜩이나 산만한 내가 오랜 시간 집중을 하느라 체력이 방전 돼버려 피로감이 확 몰려왔다. 게다가 어버버 말했던 순간, 못 알아듣고 얼버무렸던 순간이 떠올라 그날 밤 이불을 몇 번이나 걷어찼는지 모른다.
그날 이후 나는 혹시 또 누가 복사실에 들어와 내게 말을 걸까 봐 두려워지기 시작했다. 그런데 그냥 우연이었는지, 아니면 복사실의 내 존재가 소문이라도 난 건지, 복사실을 방문해 내게 이런저런 소소한 이야기를 걸어오는 선생님들이 늘어났다. 그때는 잘 몰랐던 미국의 *스몰토크 문화였다.
처음엔 너무 어색한 나머지 도망치고만 싶던 스몰 토크에 나는 점점 익숙해지기 시작했다. 영어가 모국어가 아닌 두 번째 언어라 내가 유창하지 않은 걸 알면서도 개의치 않고 즐겁게 대화를 이끌어주는 선생님들이 고마웠다. 그들 덕분에 내게 학교는 더 이상 어려운 곳도 문턱이 높은 곳도 아닌 자유로운 곳이 되어 갔다.
수업시간에 교실에서 아이들을 돕거나 과제물을 정리하는 엄마 도우미로 일하기도 했다.
둘째 아이의 1학년 담임이었던 로버트슨 선생님(Mrs. Robertson)은 시카고로 이사한 지 얼마 안 돼 뻘쭘하던 내게 수업 도우미뿐 아니라 학급문고 관리, 수업자료 제작 등 일할 기회를 많이 주었다. 그녀 덕분에 둘째가 새로 전학한 학교가 훨씬 친근해졌고, 낯설기만 하던 동네에도 정을 붙일 수 있었다. 로버트슨 선생님의 따뜻한 마음과 속 깊은 배려가 잊히지 않는다.
자원봉사 활동에 참여하기 위해 학교를 오가다 친해진 학부모들과 선생님들이 생겼다. 그중 한 선생님이었던 니키와는 아이들 학교 할로윈 파티에서 만나 더욱 친해졌다. 한창 자라나는 두 딸 엄마라는 닮은 점이 서로를 연결해 주었던 것 같다. 우리는 종종 만나 같이 밥도 먹고 아이들도 함께 놀았다. 니키는 옆 동네 초등학교 교감선생님으로 옮겨가더니, 얼마 안 있어 교장 선생님이 되었다.
나는 니키의 권유로 그녀의 학교에서도 자원봉사를 했다. 점심시간 후 바깥놀이 시간에 다치는 아이들이나 싸우는 아이들은 없는지 보살펴주는 일, 교사들의 개인 우편함에 우편물을 넣어주는 일, 학습자료 복사와 코팅(laminating), 여러 가지 도서관 업무, 그리고 쉬는 시간에 아이들 한 명 한 명에게 일대일로 책 읽어주기 등의 일이었다. 클래스 파티에 쓸 팝콘을 커다란 팝콘 기계로 혼자서 백 봉지나 튀긴 적도 있었다. 그날 일을 마치고 집에 왔더니 아이들이 내게서 ‘극장’ 냄새가 난다고 했다. 샤워를 하고서도 극장 냄새는 한동안 내게서 떠나지 않았었다.
아이들이 쓴 글을 집에 갖고 와 읽어보고 맞춤법과 페이지 수를 수정하여 개인문집 만들기를 돕는 일도 했다. 아이들이 쓴 글을 읽어보는 건 시간 가는 줄 모를 정도로 재미있었을 뿐 아니라, 그들의 글을 통해 미국 문화의 민낯을 들여다볼 수 있었다.
학부모들이 시간과 노력을 들여 일해주는 것에 대해 교사들은 진심으로 고마워하는 분위기였다. 학기 말에는 자원봉사를 했던 학부모들과 교사들이 모두 모여 쫑파티도 했다. 그들의 사심 없는 친밀함, 아이들과 학교를 위하는 마음이라면 누구나 환영해 주는 학교의 개방성에 매료되어 열심히 일했던 기억이 소중하게 남아있다.
학교를 위해 아무 대가 없이 일하는 것은 내가 살고 있는 지역사회를 살찌우는 데 작게나마 힘을 보태는 일이다. 얼른 새로운 환경에 적응해 마음 편히 살고 싶어 용기를 낸 것이 나중에 전문 분야에서 일하고 싶은 동기로 작용했기에, 결국 나 자신을 위한 것이기도 했다. 그리고 무엇보다 어딘가 속해 있다는 느낌, 내가 쓰인다는 느낌이 성취감과 연결되었다.
지금도 아이들의 목소리가 들리는 학교 앞을 지날 때면 나도 모르게 설레고 기분이 좋아진다.
* 스몰토크(small talk): 날씨, 취미 등에 대한 가볍고 일상적인 대화. 서로 간의 어색함을 누그러뜨리고 친밀감을 형성하는 데 도움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