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튼

by Anna Lee

시카고 오헤어 공항에 처음 내린 1월 어느 날이 잊히지 않는다.

그럴 수 없을 만큼 휑한 허허벌판에 주위는 온통 하얬는데, 며칠 동안 내린 눈 때문이었다는 걸 나중에 알았다. 밤 공항의 휘황한 불빛은 내가 보고 싶은 걸 비춰주는 게 아니라 제가 비추고 싶은 걸 비추는 듯해 나는 아무것도 제대로 볼 수가 없었다.

마중 나와준 남편 동료의 차 트렁크에 가방을 싣는데 눈물이 줄줄 나왔다. 바람이 하도 세서 눈을 뜰 수가 없었다. 너무 추워도 눈물이 나는구나 처음 알았다. 서울에서부터 알고 지냈던 남편의 동료가 후에 말하길 그날 내가 몹시 화가 나 보였다고 한다. 뭐라 구시렁거리기도 했다는데 나는 잘 생각이 나지 않는다. 그저 생전 처음 맛본 시카고의 한겨울이 굉장히 매웠을 뿐이다.


시카고의 겨울 평균기온은 화씨 24°F(-4℃)에서 28°F(-2℃) 정도지만, 바람이 많고 건조한 탓에 체감온도는 훨씬 낮다. 한겨울 추위는 옷을 파고들어 살갗을 에일 듯 날카롭다. 한번 눈이 오기 시작하면 이삼일 계속될 때도 많아서 일기예보를 잘 보았다가 필요한 물건들은 미리 사다 놓아야 한다.

등교 첫날, 아이들이 다니던 초등학교와 킨더가튼에서는 스노우 재킷과 스노우 바지를 가져오라는 가정통신문이 왔다. 날씨가 몹시 춥고 눈 오는 날이 많은 시카고에서는 눈 위에서 뒹굴어도 될 만큼 두꺼운 방한복을 입고 학교에 가거나 가방에 챙겨가야 한다는 걸 그때는 몰랐다. 스노우 재킷이나 바지를 어디서 사야 하는지도 알 수 없었던 나는 당장 급한 대로 아이들 옷 중 제일 두꺼운 걸 입혀 학교에 보냈다. 그러나 겨울에도 기온이 영하로 떨어지는 날이 거의 없는 포틀랜드에서 벌써 두 번의 겨울을 보내고 난 후라 마땅한 옷을 찾기도 힘들었다.

아이들에게도 미안하고, 타주에서 전학 와 동네에 아는 사람 하나 없는 우리 가족이 혹시 아동학대로 의심받지나 않을까 ⎯ 계절에 맞지 않는 옷을 아이들에게 입히는 것도 아동학대에 해당하므로 ⎯ 하루 종일 마음에 걸렸던 나는 하교 시간에 두 아이의 선생님들을 만나 사정을 설명했다.

그러고는 선생님이 알려준 집 근처 쇼핑몰로 달려가 아이들의 스노우 재킷과 스노우 바지를 샀다. 포틀랜드에 처음 갔을 때처럼 맨땅에 헤딩하기가 다시 시작되었던 것이다.




이사를 하고 집 정리가 어느 정도 마무리되자, 나는 점점 집에 틀어박히기 시작했다. 어디다 마음을 둬야 할지 몰라 서성댔다. 생각이 많아지고 몸이 무거워졌다. 몹시 피곤했다. 매일 조금씩 몸에서 힘이 빠져나갔다. 아무것에도 손을 델 수가 없었다. 지난날은 후회스럽고 앞으로 올 날은 무서웠다. 자꾸 눈물이 났다.

이별과 만남이 반복되면서 어느새 지쳤던 걸까. 고향이 너무 멀어 걷거나 뛰어갈 수 없어서였을까. 그동안 참았던 객지 생활의 설움이 한계에 달해 터져 버렸던 걸까 ⎯ 나도 알 수가 없었다.

낮에는 집안의 모든 창문을 커튼으로 막아 놓고 컴컴한 방 한구석에 가만히 앉아 있었다. 창 밖 풍경은 공항에서 처음 본 것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나는 어두운 창가에 드리운 하얀 커튼이 바깥세상을 깡그리 덮어버린 하얀 눈 같다고 생각했다.

앉아있기도 힘들어지자 침대에 누워있게 되었다. 아이들을 픽업하러 학교에 가야 하는데 몸이 일으켜지지 않았다. 차로 3분 거리인 아이들 학교에 갈 수가 없어서 남편이 일하다 말고 40분을 운전해 와야 했다.

며칠이나 그렇게 지냈던 걸까. 그 어둠에서 나를 일으킨 건 아이들이었다. 아무 말도 못 하고 걱정스럽게 나를 바라보던 아이들의 눈이 나를 더 이상 누워있지 못하게 만들었다.

이불속에서 천천히 걸어 나와 일상으로 돌아왔다. 막아놨던 커튼을 걷으니 어느새 바깥은 봄 준비를 하고 있었다. 나무도 하늘도 눈에 띄게 변한 건 없었지만 공기 냄새가 달라져 있었다. 그러고 나서 한 달쯤 더 지나니 하얀 눈이 걷히고 푸릇한 잔디가 보이기 시작했다. 우리 동네가 이런 모습이었구나, 세상이 온통 다르게 보였다.

내 마음이 너무 어두워 햇빛조차 힘을 쓸 수 없었던 겨울이 그렇게 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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