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네이도 사이렌 울리던 날

by Anna Lee

비가 내린다. 오후로 접어들며 시작된 비는 건물과 거리, 사람들까지 모두 회색으로 물들이는 듯하다.

비가 오고 바람이 센 날은 어김없이 내게 십여 년 전의 기억을 데려와 준다.

시카고로 이사하고 얼마 안 된 날이었다.

첫째가 초등학교 5학년, 둘째는 킨더가튼(공립 유치원 과정, 초등학교 안에 함께 있다)에 다니던 시절이라, 나는 여느 때처럼 방과 후 둘째를 픽업하러 학교에 갔다. 둘째를 픽업해 집에 오면, 곧이어 첫째가 스쿨버스를 타고 집에 오곤 했다.

학교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내리는 순간 난데없이 사이렌이 울렸다. 설마 민방위 훈련은 아닐 테고, 영문을 몰라 어리둥절해 있는 사이 갑자기 건물 바깥에 있던 사람들이 학교를 향해 뛰기 시작했다. 대부분 아이들을 픽업하러 온 학부모들이었다.

깊게 생각할 겨를도 없이 나도 다른 사람들을 따라 일단 학교로 뛰어들어갔다. 옆에 있던 한 엄마에게 묻고 나서야 토네이도 경보 사이렌이란 걸 알았다. 토네이도가 다가올 때 야외에 있으면 위험하니 무조건 건물 안으로 들어가야 한다는 것이다. 전혀 다른 날씨 속에 살다 시카고로 간 지 겨우 몇 주, 토네이도 사이렌이나 대피 요령을 알 턱이 없었다.




내가 살던 일리노이 주는 바로 옆의 인디애나 주, 아이오와 주와 함께 토네이도 발생 위험지역에 속한다.

시카고에 열여섯 해 사는 동안 토네이도를 직접 목격한 적은 없지만, 그날 이후로도 경보 사이렌 소리는 여러 번 들었다. 주변지역에서 일어난 토네이도의 영향으로 심한 폭풍이 몰아쳐 이웃집 지붕이 무너지거나 나무들이 쓰러진 것도 몇 번 보았다. 봄이고 가을이고 토네이도 경보음이 울리는 계절도 따로 없었다. 시카고의 거의 모든 하우스에는 basement(지하층)가 있다. 토네이도를 피하기에 그나마 제일 나은 곳은 건물의 지하이기 때문이다.

어느 해 가을, 한밤중에 갑자기 토네이도 사이렌이 터져 나왔다. 깜깜한 밤하늘이 섬광으로 쩍쩍 갈라져 금방이라도 무너져 내릴 것 같았다. 우리는 그날 basement에서 조마조마한 밤을 보냈다. 아침에 집 밖에 나가보니 빗물로 젖은 거리 여기저기 온통 부러진 나뭇가지들이 널브러져 있었다.




나는 선생님들의 안내를 따라 다른 학부모들과 함께 학교 체육관으로 들어갔다. 토네이도와 맞닥뜨릴 때 가장 위험한 것은 무서운 속도로 날아다니는 나무나 유리의 파편이므로, 지하를 찾을 수 없을 땐 유리창이 없는 장소로 대피해야 한다.

그렇게 얼마동안이나 체육관에 있었을까. 창문이 없어 밖을 볼 수 없는 동안 나는 첫째가 걱정되기 시작했다. 휴대폰을 갖고 있지 않은 아이와 연락할 길이 없었다. 날씨가 이러니 스쿨버스가 운행되지 않기를, 아이가 그대로 학교에 남아 있기만을 간절히 바랄 뿐이었다.

마침내 체육관에서 풀려나, 교실에 안전하게 있던 둘째를 만날 수 있었다. 첫째의 교실로 달려가보니 아이들이 하나도 보이지 않았다. 첫째가 집에 도착할 시간도 이미 지나 있었다.

거리는 강풍과 빗물의 흔적으로 가득했다. 부랴부랴 운전해 집에 왔지만 첫째는 집 앞에도 집 안에도 보이지 않았다. 가슴이 쿵 내려앉았다.

그때 옆집 현관문이 열리더니 첫째가 나오며 "엄마!" 했다. 아이는 옆집 사는 피아노 선생님 매기의 옷을 입고 있었다. 그날 아침에 헤어진 첫째를 마치 며칠 만에 만나는 기분이었다.


토네이도 사이렌이 울리면 스쿨버스 운행은 중단되거나 지연된다. 그러나 운전기사의 착오로 운행을 시작한 버스는 첫째가 늘 내리는 정류장에 아이들을 내려주고 말았다.

비바람 속에 버스에서 내린 첫째가 몸이 날아갈 듯한 바람을 맞으며 집을 향해 걷고 있는데, 차 한 대가 옆에 와 멈췄다고 한다. 지나던 학부모가 강풍 속을 쓰러질 듯 걷고 있던 첫째를 발견하고 다가온 것이었다.

"모르는 차에 올라타면 안 되잖아. 왜 그랬어!" 또 한 번 가슴이 철렁한 내가 묻자, 아이가 말했다. "학교에서 몇 번 봤던 아줌마야. 뒷자리에 아줌마 딸도 타고 있었고."

이런 날씨에 걸어 다니면 위험하니 빨리 차에 타라고 한 그녀는 첫째를 우리 집 앞에 무사히 내려주었다고 한다. 그녀를 찾아 꼭 고맙다는 말을 전하고 싶었지만 웬일인지 아이가 졸업할 때까지 학교에서도 동네에서도 나는 그녀를 만나지 못했다. 그날 스쿨버스를 운행했던 기사도 징계를 받은 후 다시 볼 수 없었다.

나와 엇갈린 채 집에 온 첫째는 열쇠가 없어 집안으로 들어갈 수 없자 매기의 집 문을 두드렸다 한다. 매기는 비에 젖은 아이의 옷을 갈아입혀 주고 머리도 말려주었다.

매기는 첫째의 피아노 선생님, 둘째의 첼로 선생님으로 우리 아이들이 고등학교를 모두 졸업하는 날까지 가르쳤고, 나와는 지금까지 둘도 없는 친구 사이다.

그날의 가슴 졸였던 기억이 괴로움으로 남지 않은 건 따뜻한 이웃들 덕분이었다. 누군가 베풀어준 마음씀이 오랜 기억으로 남는 것, 그리고 그 마음씀과 도움이 나를 통해 다른 이에게도 전해지는 것, 살면서 받게 되는 귀한 선물이다.

keyword